[박상길의 이슈잇슈]"집값 계속 오르는데 결혼이요?…다닐만한 직장도 없는데"

박상길 2024. 8. 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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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직장인들.<박상길 기자>
서울 시내 한 서점을 찾은 청년이 취업 관련 책을 찾고 있다.<연합뉴스>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다닐만한 직장은 없고, 어차피 애도 안 낳을 건데 결혼보단 연애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0대 초반인 이 모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을 1∼2년 단위로 자주 옮겨 다니다가 최근 두 달째 쉬고 있다. 그는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마냥 취업 준비에만 몰두할 수 없어 '스펙 쌓기'로 직장을 여러 군데 옮겼지만 비전도 없고 '꼰대 상사'와의 갈등, 동료와의 마찰 등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다른 30대의 유 모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 꽤 됐지만 최근까지도 이력서를 낼 만한 직장을 찾지 못했다. 유씨는 서울시에서 정한 '생활 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을 직장을 찾고 있지만 이런 곳은 근무환경이 꽤 안정적이다보니 경쟁자들이 많이 몰려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여러 어려움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쉬는' 청년들이 정부 통계상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층(15∼29세) 가운데 '쉬었음' 인구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만2000명 늘어난 44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쉬었음 청년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를 넘어서며 같은 달 기준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7월 쉬었음 청년은 2013∼2017년 20만명대였으나 2018년 30만명을 넘어섰다. 이후 계속 늘며 코로나 첫해인 2020년 44만1000명까지 증가했다가 2022년 36만1000명으로 줄었으나 작년(40만2000명)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도 많은 수준이다.

지난달 40대 쉬었음 인구는 28만4000명으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적었고, 30대는 28만8000명, 50대는 39만4000명을 각각 기록했다.

청년층 인구는 줄어드는데 쉬는 청년은 늘면서 그 비중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달 청년층 인구 815만명 가운데 쉬었음 청년(44만3000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5.4%였다. 7월 기준 가장 많은 수준이다. 청년층의 쉬었음 비중은 2019년 4.1%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2020년 5.0%로 늘었다가 2022년 4.2%까지 줄었지만, 작년(4.8%)부터 늘더니 올해 다시 5%대로 진입했다.

쉬는 청년은 단순히 양적으로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할 의사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쉬었음 청년(44만3000명) 가운데 일하기를 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 이들은 33만5000명에 달했다. 75.6%가 구직 의사가 없었다는 뜻이다.

나머지 일하기를 원했던 쉬었음 청년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찾지 않은 이유를 조사해보니 '원하는 일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왔다. 취업을 원했던 쉬었음 청년 가운데 42.9%는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로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조건이 맞는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를 꼽았다. 이어 '이전에 찾아보았지만 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에'(18.7%), '교육·기술 경험이 부족해서'(13.4%), '근처에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11.1%) 순이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청년들이 '배가 불러'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다는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이모씨는 "대기업을 다니는 청년들을 염두에 두고 배부르다고 비판하는데, 비정규직 청년들은 대기업 다니는 청년들과 비교해 임금 등 여러 면에서 격차가 크고 어려움도 많다"라며 "대기업 취업자와 비정규직 취업자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게 아니라 비정규직 청년들의 애로사항에 귀 기울이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모씨는 "기성세대와 현재의 청년세대는 살아온 환경이 달랐다. 집도 현재보다는 마련하기 쉬웠고 취업 준비도 현 세대보다는 치열하지 않았다"라며 "몸 쓰는 일을 찾아보더라도 청년세대보다는 기성세대를 더 많이 찾는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청년들의 구직 시기를 단축하거나 다양한 일자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일자리 예산 정책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지현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매년 고용동향 발표를 통해 '그냥 쉬었음' 청년이 증가추세임에도 정부는 2023년에 이어 올해도 일자리예산을 삭감했다"라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지출 규모가 클 수록 실업률 및 장기실업률 감소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은 OECD국가에서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지출이 적은 국가에 속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37%로 OECD 평균인 0.72%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라며 "일자리 정책의 예산 삭감이 아닌 고용서비스, 직접 일자리 정책, 구직수당 확대 적용 등 구직 시기를 단축하거나 이 시기에 다양한 일자리를 경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자리 정책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상길기자 sweats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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