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폭염 살인’ 저자 제프 구델] “폭염 살인… 에어컨이 지켜줄 거라는 착각은 버려라”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 2024. 8. 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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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구델 작가 컬럼비아대 영문학 석사, 현 ‘롤링스톤’ 객원 편집자, ‘물이 몰려온다’ ‘폭염 살인’ 저자 사진 제프 구델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오늘날 우리가 삶에서 만들어내는 열은 어딘가에 가둘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열은 세상 모든 것에 가닿는다.” -제프 구델의 ‘폭염 살인’ 중에서.

우리는 화염을 들이마시는 것 같은 뜨거운 세계에 들어섰다.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전국은 열대야로 몸살을 앓았다.

기록에 의하면 인간이 지구에서 지금껏 겪은 것 중 가장 뜨거운 한 해는 2023년이었다. 뉴욕에서는 더위로 발화한 캐나다 산불 연기 때문에 하늘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처럼 오렌지색으로 물들었고, 플로리다키스 제도에서는 물고기가 수온 38.5도로 치솟은 물속에서 익어버릴 정도였다. 브라질에서는 더위가 아마존강의 물을 빨아들여 열대우림의 상당 지대가 말라붙었다. 기후과학자들은 매해가 기록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이 말은 2024년 여름이 역사상 가장 더운 해이며 동시에 미래에서 보면 덜 더운 한 해로 기록될 거라는 얘기다.

숨 막히는 열탕에선 뛰쳐나갈 수 있지만, 지구라는 한증막에는 열고 나갈 문이 없다.

제프 구델의 폭염 르포르타주(현지 기록) ‘폭염 살인’을 읽는 내내 나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다른 버전인 ‘열국열차’를 타고 달궈진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남극에서 텍사스까지, 파키스탄에서 파리까지. 허덕이는 물고기, 말라버린 작물, 굶주린 곰, 쓰러지는 노동자, 졸도하는 도시의 산책자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마지막 화석연료를 태울 때까지 달리는 이 ‘열국열차’의 머리 칸과 꼬리 칸은 오싹한 한기를 즐기는 부자와 속수무책으로 익어가는 빈자로 나뉘어 대치 중이었다. 내가 만약 할리우드 제작자라면 당장 실내 온도가 계급이 된 이 현재 진행형의 풍경을 재난 블록버스터로 만들었을 것이다 .

정점을 찍은 이산화탄소 농도, 엘니뇨 그리고 급격히 뜨거워지는 바다 단테의 ‘신곡’ 을 읽듯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염의 지옥도를 읽다가 다급하게 제프 구델에게 구조 신호(SOS)를 보냈다. 덥다는 푸념 대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기 위해.

구델은 자신이 사는 텍사스주 오스틴이 2023년 섭씨 40.5도를 웃돈 날이 40일도 넘었다고 증언했다. 매시간 3000만t씩 녹는 그린란드 빙하 민물의 유입으로 미국 동부 연안의 해수면은 더 빨리 상승하고 유럽의 겨울은 더욱 추워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런 광대한 폭염 르포르타주를 시작할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때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기온이 섭씨 47.2도까지 오른 2018년 여름이었다. 시내 호텔에 머물고 있었고 20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서 미팅이 있었다. 택시나 우버를 타는 대신 걸어가기로 하고 늦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몸의 이상을 느꼈다.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고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다. 만약 내가 20블록을 더 걸어야 했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그 순간 더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했다. 벌레를 잡는 전기 포충기처럼 불볕더위가 사람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동안 10년 넘게 해수면 상승을 취재하며 기후변화 글을 썼지만, 피닉스에서 그 더위를 맞닥뜨리기 전까지 폭염의 시급성과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많은 사람은 더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구델은 폭염이 태풍이나 쓰나미처럼 한순간에 도시를 휩쓰는 순간을 그려낸다. 2021년 여름, 폭염이 미국 포틀랜드를 강타했다. 대양에서 발산되는 열이 한데 모여 ‘열돔’이 형성되자 24시간도 되지 않아 포틀랜드 시내 기온은 섭씨 24.4도에서 45.5도까지 치솟아 147년 관측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저기 사이렌이 울리고 응급실에는 헐떡이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산맥 꼭대기의 눈이 녹아 토사가 되고 따뜻한 강물이 불어나자, 거슬러 오르던 수만 마리의 연어 떼는 숨도 못 쉰 채 폐사했다. 음향 증폭기가 있다면 더위 때문에 둥지에서 뛰어내리는 어린 새, 파열된 나무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혀를 찼다.

열기는 동네마다 달랐다. 포틀랜드 최악의 빈민가인 렌츠의 측정 온도는 51.5도였지만, 녹지가 조성된 부자 동네 웰래밋 하이츠는 15도나 더 낮은 37.2도였다. 그렇게 실내 온도는 새로운 계급이 되고 더위는 더 많은 죽음과 더 잦은 전쟁을 몰고 온다고 구델은 쓰고 있다.

책에는 폭염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이 나온다. 특별히 캘리포니아주에서 하이킹하던 중 4시간 만에 열사병으로 사망한 젊은 가족을 앞부분에 배치한 이유가 있나.

“그들은 폭염의 위험이 얼마나 일상적인가를 보여준다. 폭염은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심장이 약한 노약자만 걱정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젊고 건강하고 부유한 선진국 사람이라도 더워서 죽을 수 있다.”

열역학 제1, 2 법칙이 우주의 이해를 돕는 토대인 동시에 폭염의 핵심 요인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열역학 제1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파괴될 수 없고 전환될 수만 있다. 발전소나 엔진은 바로 이 법칙을 활용해서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변환한다. 그러나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고립된 시스템에서는 엔트로피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다시 말해, 열이 혼동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높은 수준의 열은 우리 몸을 변형시켜 단백질을 분해하고 세포막을 녹인다. 열이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죽이는 방식이다. 생명은 조직적인데 열은 이 조직을 해체한다.”

열은 어떤 방식으로 생명을 앗아가나.

“열사병에 이르는 과정은 순식간이다. 해가 내뿜는 열기로 피가 따뜻해지면, 심장은열을 식히려고 최대한 많은 피를 피부 쪽으로 밀어낸다. 피와 산소가 부족해진 간과 신장과 뇌로 인해 시야가 멍해진다. 체온이 40.5도에 달하면 몸은 에어컨 꺼진 아궁이가 돼 팔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41.6도가 넘으면 세포가 망가지기 시작한다. 단백질의 매듭이 풀어지면서 몸의 내부가 녹아내리고 해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요즘은 도시가 열섬이 돼 한증막처럼 느껴진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은 무엇인가.

“정전이다. 정전과 폭염은 매우 위험한 조합이다. 옛날 사람들은 더운 지역에 자연 환기 시스템을 갖춘 건물을 짓기 위해 공기의 흐름, 태양의 위치, 심지어 건물 자체의 색까지 고려했다(멕시코나 그리스처럼 덥고 햇빛이 잘 드는 지역의 건물을 흰색으로 칠하는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식 건물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에어컨만으로 모든 작업이 수행되도록 만들어졌다. 전기가 끊기지 않는 한 괜찮다. 정전되는 순간 현대식 건물은 순식간에 치명적인 대류식 오븐이 된다. 내가 책에서 인용한 최신 연구에서 피닉스에서 극심한 불볕더위로 5일간 정전이 발생했을 때를 조사한 결과는 첫 48시간 동안 1만3000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에어컨의 인기는 무더운 기후로 외면받던 미국 남부로 북부 인구를 대거 이주시킬 정도였다. 1940~80년대 민주당 텃밭이었던 선벨트(sun belt)에 보수 성향의 은퇴자가 대거 몰려 대선 판도를 뒤엎기도 했다.

코카콜라처럼 에어컨은 미국의 발명품이다. 그리고 에어컨은 엄청난 전기를 잡아먹으며, 도시를 헤어 나올 수 없는 폭염의 블랙홀로 밀어 넣는다. 안락한 냉방 문화는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중독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월드컵을 개최한 카타르는 심지어 야외에서도 에어컨을 틀었다. 2050년 에어컨은 45억 대가 넘어 스마트폰을 따라잡을 것이다.

이제는 에어컨 없는 지구는 상상할 수 없다. 에어컨이 냉방 기술이 아니라 열기의 위치를 바꿔주는 도구일 뿐이라 해도, 과연 우리가 에어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나.

“그 누구도 에어컨 없이 살자고 주장할 수 없을 거다. 그러나 에어컨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사람이 에어컨을 극심한 더위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으로 간주해서 에어컨을 설치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단언컨대, 우리는 괜찮지 않을 것이다.

첫째, 전 세계 인구 중 7억5000만 명의 사람이 에어컨은커녕 전기조차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기온이 41도까지 오른 어느 날, 애리조나주 전기 회사는 51달러(약 6만9692원)의 연체금을 내지 못한 폴먼 집의 전기를 차단했다. 일주일 뒤 사망한 채 발견된 그의 사인은 ‘열 노출’이었다. 둘째, 에어컨을 가동하는 전력은 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화석연료에서 나온다. 셋째, 우리는 바다, 숲까지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다.”

/셔터스톡

구델은 에어컨이 우릴 지켜줄 거라는 착각은 버리라고 했다. 미국적 안락함에 중독돼서 다른 사람, 다른 종, 혹은 주변 세상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눈감으면 되겠느냐고 말이다.

한국에서도 폭염이 재난으로 선포되고 있다. 무더위에 대한 공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전 세계 폭염 지옥을 관통한 경험으로, 올여름 한국 상황이 예측 가능한가.

“올여름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하기 조심스럽다. 점점 더 단기 모델은 예측하기 어렵다. 날씨는 점점 더 혼란해져서 특정 지역, 특정 시간조차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분명한 건 우리가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늘어날 때마다 더 길고 극한적인 폭염의 위험은 커진다는 것이다. 장기 기후 모델은 매우 확실하며 지구는 더 뜨거워질 것이다.”

정작 가장 위험한 곳은 ‘끓는 바다’ ‘사막화 된 바다’라고 했다. 바닷속에서 산불이 일어난다는 묘사만으로 섬뜩하다.

“실제로 바다의 동식물군은 불에 타기라도 한 듯 죽어 나간다. 지중해만 해도 2012년, 2015년, 2017년, 2022년 폭염이 닥쳤다. 수온이 11도나 치솟았던 지중해의 폭염 사태는 수중 세계의 산불 그 자체였다. 2021년에는 뜨거운 물 덩어리가 1만㎡ 면적의 우루과이 앞바다에서 끓어올랐다. 바다는 지구에서발생하는 열의 90%를 흡수하는 일종의 방열판(heat sink) 역할과 지구 곳곳에 열을 재분배하는 열 수송 시스템 역할을 한다.

흡수된 열로 인해 수온이 매우 오랫동안 따뜻하게 유지된다. 뜨거운 바다는 특히 높은 고도에서 불며 공기를 순환시키는 강한 바람인 제트기류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경험한 열돔은 바로 이 제트기류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살면서 수많은 더위를 겪었으나 2003년 출장차 들른 파리에서 겪은 불볕더위는 끔찍했다. 당시에 몽마르트르 뒤편 에어컨 없는 스튜디오에 머무르다, 숨이 막힐 지경이 돼서 피레네산맥 쪽으로 피신했던 기억이 난다. 단 2주 만에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만 1만5000명이었다.

2003년 여름, 폭염 살인의 비극을 겪은 후, 파리는 어떻게 바뀌었나.

“함석지붕에 그린 루프를 덧대고, 나무를 기후 싸움의 슈퍼 영웅으로 일으켜 세우며 도시 정책을 세워나갔다. 물론 전 세계 도시에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새로 심는다 해도 화석연료의 연소로 인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을 막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그늘을 제공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주변 열을 식히고, 생물 다양성을 증가시킨다. 나무를 더 많이 심는 것은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일 중 하나다.”

한편 식량 공황 문제도 피부로 다가왔다. ‘인구 80억 명의 뜨거운 행성의 먹거리를 귀뚜라미와 실험실 단백질로만 충당할 수 없는 노릇이다’라는 문장에서 영화 ‘설국열차’의 끔찍한 ‘곤충바’가 떠올랐다. 옥수수 농가와 가축 농가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내가 방문했던 텍사스주 농장의 옥수수 42%가 절반만 알갱이가 맺혀있었다. 프랑스도 더위로 수확량이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옥수수와 가축도 생명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일정한 온도 범위에서 잘 자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추워지거나 너무 더워지면 적응하거나 죽어야 한다. 간단하다. 폭염은 글로벌 식량 공급 시스템에 엄청난 도전이 될 것이다. 옥수수 생산량이 감소하면 수많은 식료품값, 고깃값이 오를 것이고, 역사적으로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소련의 종말과 아랍의 봄 사태는 급격한 물가 상승에서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폭염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개인은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폭염의 위험성을 학습하라. 극단적 더위에 노출돼 체온이 40도를 넘어서면 우리 몸의 세포가 망가지거나 녹아내린다. 이 열의 소용돌이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집에 에어컨이 없다면 폭염 시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쳐서 햇빛과 열을 전부 차단하라. 폭염에 취약한 가족과 친지가 있지는 않은지 둘러보라. 나무를 심고 집을 단열하고 화석연료 소비를 줄여야 한다. 기후 위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정치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정치인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투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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