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면' 섭취 조금씩 늘렸더니…'밀 알레르기' 81% 뚝
집에서 ‘삶은 면’ 이용 먹는 양 서서히 늘려
천식·혈액검사 부적합 등 전문가 상담 필수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빵이나 면, 과자 등을 먹은 후 유발되는 밀 알레르기가 있을 경우 삶은 면 섭취량을 서서히 늘리는 '경구면역 요법'으로 안전하게 극복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밀 알레르기는 밀에 포함된 단백질 성분으로 발진, 가려움증, 호흡곤란 등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심한 경우 쇼크(아나필락시스)가 나타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지현 교수, 세종충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민지 ·김지원 교수, 고신대복음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민영 교수 공동 연구팀은 밀 알레르기가 있더라도 잘 준비한 경구면역 요법을 이용하면 효과적이면서 안전하게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26일 밝혔다.
연구팀은 2015년 10월에서 2022년 7월 사이 밀 알레르기 진단을 받은 3세에서 17세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50명에게는 경구면역 요법을 시행하고, 나머지 22명은 대조군으로 선정해 밀 알레르기 반응의 완화 정도를 관찰했다.
경구면역 요법이란 삶은 면 유발 검사를 통해 밀 단백질 섭취량에 따른 알레르기 반응 정도를 신중하게 살피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면 섭취량을 바탕으로 초기 섭취량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면은 끓는 물에 5분 동안 충분히 익히고, 소수점 아래 두 단위까지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저울을 사용해 먹는 양을 철저히 계량하도록 교육했다.
이후 같은 방법으로 조리한 면을 3g(밀 단백질 기준 90mg)에 도달할 때까지 3~7일 간격으로 신중하게 증가시켰다. 최종 목표 섭취량인 삶은 면 80g(밀 단백질 2,400mg)까지 기존 용량보다 매일 5% 또는 매주 25%씩 더 먹도록 했다. 밀 단백질 섭취 목표량 2400mg이 넘어서면 유지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보고, 최소 12개월 동안 일주일에 4번 이상 1회 밀이 포함된 음식을 꾸준히 먹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참가자의 안전을 위해 보호자에게 아나필락시스에 대한 주의와 증상 관리, 응급 대처에 필요한 에피네프린 주사 방법을 교육하고, 증상 일지를 작성하면서 필요하면 의료진과 상의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경구면역 요법을 받은 소아청소년 50명 중 41명(82%)에서 알레르기 증상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됐다. 경구면역 요법을 한 지 9개월(중앙값)만에 거둔 성과다. 반면 대조군에서는 22명 중 1명(4.5%)만 알레르기 증상이 자연적으로 소실됐다.
경구면역 요법 시작 당시와 섭취량 증가를 모두 달성한 시점에 시행한 혈액 검사를 비교했더니 참가자들의 면역 관련 수치가 개선됐다. 지속적인 밀 섭취로 면역글로불린(IgG4) 수치가 증가해 밀에 대한 항체가 생성돼 알레르기 반응을 완화시킨 것으로 보였고, 호산구 수치도 감소해 면역 체계가 적응한 것을 확인했다.
대조군에서는 반대로 알레르기 반응과 관련 있는 수치(IgE)가 오히려 증가하고, 다른 지표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경구면역 요법에 따른 알레르기 반응은 안정적으로 관리가 됐다. 알레르기 반응 보고 회수는 인당 2번 정도로, 가려움증과 같은 피부 증상이 가장 많았다.
경구면역 요법 이후 참가자들의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삶은 면을 늘려 먹는 단계가 끝나고 안정화, 유지 단계를 거친 참가자의 대부분(44명, 88%)은 밀의 형태나 종류와 상관없이 용량 제한을 두지 않고 섭취가 가능했다.
대조군은 여전히 90%(20명) 가량이 밀 섭취를 제한받고, 부지불식간에 섭취했을 때 발생 가능한 알레르기 반응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했다.
연구팀은 “고무적”이라면서도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 없이 임의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에서도 천식이 동반된 경우나 면역혈청학적 검사가 부적합한 경우 경구면역 요법의 실패 가능성이 높고, 환자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특히 참가자 50명 중 15명(30%)에서 아나필락시스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돼 전문적인 경험에 기반한 의료진의 교육과 초기 대처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주관한 김지현 교수는 “식품 알레르기는 오랜 기간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문제로, 단순히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언제 어떤 식으로 응급상황이 발생할 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진과의 충분한 상담과 전문적인 교육에 따라 집에서 편안한 방법으로 밀 알레르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되면 최소한 알레르기 반응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연구 결과는 ‘아시아 태평양 알레르기 면역 학술지(ASIAN PACIFIC JOURNAL OF ALLERGY AND IMMUNOLOGY, IF=5)’ 최근호에 실렸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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