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아이들 돕는 보람…‘학교보안관’ 만한 일이 있을까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8. 2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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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실 안에서 지나가는 학생들과 대화하는 이상인 학교보안관. 필자 제공

이상인 | 서울 원광초등학교 학교보안관

나는 초등학교 학교보안관이다. 아침 7시30분이면 보안관 복장에 멋진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교문에서 교통정리를 하면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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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학교로 등교 시간은 오전 8시50분까지지만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 교실이 있어서 이른 시간부터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다. 나머지 학생들은 대개 지척의 학교를 걸어서 8시30분부터 50분 사이에 집중적으로 등교를 한다.

이때 나는 인사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안녕”, “안녕하세요”, “○○ 왔구나”, 이름을 아는 아이는 가능하면 이름을 붙여서 인사를 하고, 모르는 아이도 아이가 인사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소리 내어 인사를 한다.

아이들과 늘 밝게 인사를 하다 보니 전직 경찰관인 내가 보안관이 된 뒤 달라진 게 있다. 얼굴에서 근엄한 표정이 사라지고 아이들처럼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면 입에서도 인사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동안 고개만 끄덕하던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도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아침 등교 맞이가 끝난 9시부터는 차 한잔을 할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잠시도 방심은 금물이다. 차를 마시거나 전화 통화를 할 때도 눈은 연신 정문·후문·모니터 이 세 방향을 교차하며 주시해야 한다. 외부 방문자가 오면 방문록을 작성하고 방문증을 패용시켜 교내로 들여보내고, 학생들도 조퇴를 하면 담임이 작성한 조퇴증을 확인하고 내보낸다. 보안관의 확인 없이는 누구도 학교를 들어가거나 나갈 수 없다.

얼마 전에는 2교시가 막 시작된 10시쯤 4학년 한 학생이 보안관실 앞을 ‘쓱’ 지나 정문 쪽으로 성큼성큼 가고 있었다. 그 학생은 발달장애가 있어서 특별히 잘 돌봐야 하는 친구다. 급히 뛰어가서 막무가내로 집에 가겠다는 아이를 달래놓고 담임선생님께 전화했더니 바로 뛰어 내려오셨다. 1교시 수학 시간에 산만하여 꾸지람을 좀 했더니 2교시 때 화장실을 가겠다 하고는 집으로 내뺀 모양이란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혼자 집으로 간다며 거리를 헤맸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선생님도 나도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교 시간이 되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급이 교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을 따라 보안관실 앞 공터까지 온다. 거기서 선생님은 간단한 알림 전달도 하시고 저학년은 손을 맞잡거나 안아주기로 인사를 하시고, 고학년은 하이파이브나 목례로 작별인사를 한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운동장과 교문 주위를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보안관에게도 중요한 시간이다. 학교보안관의 임무 중 하나가 학교폭력 예방이기 때문이다. 매일 작성하는 학교보안관 근무일지에도 폭력예방, 상담활동 등의 관련 항목이 있다.​

경찰에서 스쿨폴리스를 해본 내가 보기에 우리 학교는 아이들끼리 심한 폭력은 눈에 띄지 않지만, 장난이 심하여 친구에게 불편감을 주는 경우는 가끔 본다. 그래서 내 나름의 방식대로 예방책을 시행 중이다. 우선, 유난히 날뛰거나 장난이 심한 아이는 이름을 외운 뒤 눈에 뜨일 때마다 불러서 알은체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경미할 때 미리 개입하기다.

6학년의 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몇번 권투 흉내를 내며 빈주먹을 날리거나 툭툭 치는 모습을 보고 “○○야, 상대가 싫다고 하면 폭력이 되는 거야”라고 하는 식이다. 녀석이 요즘은 내 눈치를 은근히 본다. 성공하고 있다는 징조다.

초등학교의 학교보안관 제도는 서울과 강원도만 있는 제도로 학교별로 2~3명이 근무한다. 비슷한 제도로 중·고등학교의 배움터지킴이와 경찰의 아동안전지킴이가 있지만, 처우 면에서 4대 보험에 가입되고, 주 40시간 근무와 5년간 또는 70살까지의 근로가 보장되는 등으로 학교보안관이 좀 낫다. 특히 시니어 일자리 중에서 어린아이들과 대화하고 웃고 직접 도와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보람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당신은 1학년 꼬마들이 선생님을 따라서 병아리 떼처럼 재잘대며 졸졸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정겨운지. 손자·손녀 같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소리 지르며 신나게 공을 차는 모습은 또 어떤가? 물이라도 갖다주고 싶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학교보안관이면 매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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