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땐 싸워도 물밑대화 지속… 존중·양보로 ‘협치’ 보여줬다[Leadership]

이은지 기자 2024. 8. 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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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22대 국회가 배울만한 역대 원내사령탑의 ‘협상력’
우상호·정진석·박지원
14일 만에 최단기 원구성 합의
원유철·이종걸
마라톤 협상 끝 상대법안 빅딜
황우여·김진표
의원 설득 국회선진화법 처리

22대 국회가 거야 폭주와 여야 정쟁으로 민생 법안을 방치해 ‘생산성 제로(0)’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양당 원내 사령탑 리더십에도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정치가 기본적으로 권력을 다투는 싸움이라는 점에서 여야의 대립은 불가피하지만, 권력 획득뿐 아니라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 이해를 조정하는 것 역시 정치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협력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양당 원내대표는 입법 과정에서 양당을 책임지는 자리인 만큼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입법부의 성과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원내대표들은 저마다의 리더십으로 정국의 위기를 돌파하거나 굵직한 성과를 낸 사례를 만들었다.

◇최단 기간 원 구성 이뤄낸 우상호·정진석·박지원 = 26일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역대 국회 가운데 여야 원내 지도부가 최단 기간에 원 구성을 완료한 것은 20대 국회다. 당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0대 국회 임기 시작 후 14일 만에 원 구성을 마쳤다. 범야권의 모든 계파와 잘 어울려 ‘전(全) 계파’로 불리는 우 원내대표, 여야 의원들과 두루 원만한 ‘정계 마당발’ 정 원내대표, ‘정치 9단’으로 유명한 박 원내대표가 이끈 협상은 지금까지도 ‘협치의 묘(妙)’를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우 원내대표는 2016년 4월 총선에서 123석을 얻은 민주당이 불과 1석 차이로 1당이 된 만큼 새누리당·국민의당의 협조를 얻으려면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인식했다. 이에 우 원내대표는 3당 원내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국회의장은 우리 당이 맡겠다”며 정 원내대표에게 “법제사법위원장 양보할 수 있어요, 없어요?”라고 물었다. 민주당 내에서 국회의장은 물론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내심 법사위원장은 새누리당에 내주기로 생각한 뒤 넌지시 떠본 것이다. 예상대로 정 원내대표는 “법사위원장 양보하면 나 사퇴해야 돼. 우리 집권당이야”라고 답했다. 대신 그는 “그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우리한테 달라”는 우 원내대표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지난 6월 출간한 저서 ‘민주당 1999∼2024’에 원 구성 협상 과정을 기록한 우 전 원내대표는 “법사위를 가져와도 123석으로는 법안을 단독 처리할 수 없는 만큼 ‘법안(법사위)’이 아닌 ‘민생(예결위)’을 챙기려 했다”고 돌아봤다. 민주당이 관례를 깨고 국회의장·법사위원장·운영위원장 독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파행을 거듭한 끝에 28일 만에야 원 구성이 완료된 22대 국회와 대비되는 장면이다.

◇경제활성화法·경제민주화法 ‘빅딜’ 합의한 원유철·이종걸 = 2015년 12월 여당의 경제활성화 법안과 야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이 함께 본회의 문턱을 넘은 것은 여야 원내 사령탑이 한 발씩 양보해 빅딜을 성사시킨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해 7월 취임한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퇴진이 촉발한 ‘당·청 갈등’을 무난히 잠재웠으나 ‘대야 협상력’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카운터파트’인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강성으로 분류되는 데다 9월 정기국회 시작과 동시에 “정부·여당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이행하라”고 압박한 탓이다. 당시 여권은 노동개혁·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비롯해 국제의료사업지원법·관광진흥법 등의 경제활성화 법안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대리점 거래 공정화법, 모자보건법,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법 등의 경제민주화 법안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원·이 원내대표는 수차례 물밑 논의를 거쳐 12월 2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 ‘심야 마라톤’ 협상 끝에 여당의 국제의료사업지원법·관광진흥법과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을 일괄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들 법안은 모두 3일 새벽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막판 협상에서 원 원내대표는 노동개혁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포기했고, 학교 주변에 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은 “수도권에 한정해 적용해야 한다”는 야당 요구를 수용했다.

정치권·노조·전문가 등이 참여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통해 공무원 연금개혁에 성공한 사례도 자주 거론된다. 2015년 5월 29일 본회의에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대타협 기구의 합의문을 바탕으로 보험료율을 7%에서 9%로 올리고, 연금 지급률을 1.9%에서 1.7%로 낮추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일이 전화 돌려 참석 독려”, 국회선진화법 산파 황우여·김진표 =‘동물국회’ 오명을 씻기 위해 2012년 5월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도 대표적 협치 사례다.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을 두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 다수결과 과반수 의결인데 이 대원칙이 무너진다”는 당내 반대 목소리와 분열 현상까지 감지되는 상황에서 직접 의원들을 찾아가며 설득에 나섰다.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표결을 앞둔 본회의 참석 여부가 불투명한 의원들을 파악, 오전부터 일일이 전화를 돌려 참석을 독려했다. 본회의 표결에서도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첨예한 입장 차가 드러났다. 본회의 표결 결과 재석의원 192명 중 25%인 48명의 의원이 반대표를 행사했다. 기권도 17표(8.85%)나 나왔다. 결과적으로 찬성 127표(66.15%)로 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은 황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확고한 의지 덕분이라는 평가다.

황 전 원내대표는 올해 5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18대 국회에서 김 전 원내대표와) 매일 만나 바라는 바를 놓치지 않고 다 챙겨드리고, 거꾸로 김 전 원내대표도 제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존중하고 그 뜻을 이뤄 여야가 모든 것을 협의하면서 큰 개혁을 많이 했다”며 국회선진화법을 거론, “(여야가) 다시 한 번 형제로 만났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원내 사령탑이 막히면 ‘비선 핫라인’ 활용…유인태·이재오가 ‘해결사’로 = 여야 지도부 간 협상이 막히면 비선 핫라인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기도 한다. 2008년 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두고 기싸움을 벌였다. ‘부처를 더 늘릴 수 없다’는 이 당선인과 ‘여성가족부·해양수산부 존치’를 주장하는 손 대표의 입장은 팽팽하게 갈렸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손 대표는 회의에서 장관 인선 명단이 실린 조간신문을 흔들며 “이게 정치(정부조직 개편안 협상)를 하자는 건지, 이게 야당을 대하는 신정부의 자세인지 모르겠다”고 격분하기도 했다.

감정싸움으로도 치달은 상황에서 유인태 통합민주당 의원과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 해결사로 나섰다. 이 둘은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이 결렬 수순에 들어갔던 상황에서도 연락을 이어가며 끈을 놓치지 않았다. 둘의 물밑 협상 덕에 해수부를 폐지하고 통일부와 여성가족부를 존치, 여성가족부는 그 명칭과 기능을 일부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안 합의가 이뤄졌다. 이와 관련, 유 전 의원은 당시 여야 합의문을 발표한 자리에서 “한나라당이 여성가족부에서 가족을 떼어 보건복지가족부로 하자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협상을 결렬시킬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쉽지 않았던 물밑협상 과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윤석·윤정선 기자

22대 여야 ‘강 대 강’ 대치 ‘전세사기 특별법’ 일단 합의

여 “국민 기본권에 책임 있게”
야 “추가 희생자 없도록 구제”
정국 경색 속 ‘민생 협치’ 이뤄

22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이룬 첫 법안인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여야 대치 정국 속에서도 여야 협치를 이끌어 낸 사례로 합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21일 전체회의를 열고 전날(20일)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매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주택을 경매로 낙찰받은 뒤 그 차익을 임대료로 피해자에게 해당 주택을 공공임대로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 범위를 넓혀 임차보증금 한도를 기존 3억∼5억 원에서 최대 7억 원까지 상향 조정했다.

야당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보증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의 ‘선 구제·후 회수’ 지원 입장이었지만 피해 지원을 더 늦출 수 없다는 판단으로 정부가 내놓은 ‘경매 차익 지원 방식’에 합의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 5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으로 22대 국회에서는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국토법안심사소위 위원인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법안이 소위를 통과한 후 페이스북에 “민주당 안을 고수할 경우 이미 한 번 거부권이 행사된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재의 절차 등으로 피해자 구제가 지연될 수 있고 빠르게 구제가 시작되어야 추가 희생자를 막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정부·여당안을 수용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며 “큰 틀의 구제방식은 수용하면서도 피해자 범위 확대와 전세임대 활용 등 구제 방식의 유연화 등 보완책을 반영해낸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토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인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은 “다른 사기 피해와 달리 기본권에서 정하고 있는 주거권 침해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당으로서도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는 점을 당내 의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호소했다”며 “야당 위원들도 현금 지원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정부 대안을 받아들여 합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야는 28일 본회의에서 합의처리하기로 한 다른 민생 법안도 협의에 들어갔다.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배제하는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은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간호법 개정안은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올려졌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해 계속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은지 기자 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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