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종주국' 프랑스가 흔들리고 있다…이유는? [스프]
홍지영 기자 2024. 8. 26. 09:03
[스프카세] 기후변화가 와인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처서가 지나도 열대야와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으면서 와인 산업도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와인용 포도 수확이 8월 초에 시작됐습니다. 이 지역의 포도 수확은 보통 9월 초나 빨라도 8월 중순쯤인데 1~2주 앞당긴 겁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포도가 이미 익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샴페인을 만드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는 지난해 9월 초 포도 수확 작업 중 열사병으로 인부 여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유럽 대륙이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빨리, 가장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구대륙 와인 생산국들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은 이 때문에 와인 산업에 변화와 타격이 커지고 있습니다. 더위가 일찍 시작되면서 포도 수확철이 갈수록 앞당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포도가 빨리 익어 당도가 높아지면서 와인의 알코올 도수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프랑스 레드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과거 11도에서 13도 정도였는데 요즘은 14, 15도짜리 와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와인 생산국들은 온난화에 대비해 어떻게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해야 하는지 연구와 시험에 돌입했습니다.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바로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히는 로마네 콩티(Romanee-Conti) 포도밭을 비롯해, 부르고뉴 지방에서도 가장 비싼 와인이 나오는 지역은 꼬뜨 도르(cote d'or)로 불립니다. 번역하면 '황금의 언덕'인데, 강을 바라보면서 햇살이 잘 드는 경사면에 포도밭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포도밭에 단풍이 들면 석양 무렵에는 포도밭 전체가 황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언덕에서 가장 비싼 와인들이 만들어져서 글자 그대로 '황금의 언덕'인 셈입니다. 여기서는 레드 와인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피노누아 한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어 냅니다. 한 병당 1천만 원을 훌쩍 넘는 로마네 콩티 포도밭도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죠. 한 가지 품종만으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토양과 기후, 이른바 떼루아(terroir)가 중요한데, 이 떼루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포도밭의 위치입니다.
피노누아는 빨리 익는 조생종으로 약간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랍니다. 서늘한 기후에서 천천히 숙성되면서 산딸기, 체리, 바이올렛 같은 풍미를 발현시킬 수 있습니다. 로마네 콩티 같은 경우, 포도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가능한 늦게 수확하면서 포도의 풍미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날씨가 좀 따뜻하면 포도가 빨리 익어 당도는 갖춰지지만, 페놀을 비롯한 다른 복합적인 풍미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수확을 빨리하면 와인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부르고뉴의 포도밭은 고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려합니다.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겁니다. 너무 뜨거운 햇살이 오래 쬐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포도밭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도 고려합니다. 이렇게 되면 최고급 와인이 나오는 이른바 <그랑 크뤼> 포도밭의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부르고뉴와 함께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인 보르도 지방에서는 피노누아 한 가지만으로 와인을 만드는 부르고뉴와 달리 몇 가지 품종을 블렌딩합니다. 대표적인 품종이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말벡 등입니다. 이 가운데 높은 온도에 가장 민감한 품종이 바로 메를로입니다. 메를로는 보르도를 관통하는 지롱드 강의 오른쪽, 우안에서 많이 재배됩니다. 대표적인 지역이 셍테밀리옹, 포므롤 등지이고 비싼 와인으로는 페트루스(Petrus), 슈발 블랑(Cheval Blanc) 등이 꼽힙니다.
특히 로마네 콩티와 함께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히는 페트루스의 경우, 메를로 100%만으로 만드는 와인입니다. 메를로는 빨리 익는 품종으로 알이 크고 과즙이 많아 부드럽고 산도는 낮은 편입니다. 그 때문에 날씨가 빨리 더워지면 제대로 풍미를 살릴 겨를 없이 당도만 높아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 보르도 우안에서는 메를로 대신 카베르네 소비뇽을 시험적으로 심어 보고 있습니다.
보르도 우안에서 메를로를 많이 재배하는 이유는 토양 때문인데,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재배하는 좌안과 달리 우안은 점토질이 많은 토양입니다. 때문에 아직은 우안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이 성공적으로 재배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더위에 강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은 기후 온난화로 점점 더 당분과 탄닌이 높아지면서 강한 맛을 내고 있어서 원래 보르도 와인의 맛을 잃어간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보르도 블렌딩에서 그동안 보조적인 역할을 해왔던 카베르네 프랑이나, 쁘띠 베르도, 말벡 같은 품종들의 비율을 높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양조업자들은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지에서 재배되는 투리가 나시오날 같은 새로운 품종들도 심어져 새로운 보르도 블렌딩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레드와인 품종, 템프라니요 역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품종입니다. '빨리 익는다'는 뜻의 템프라노(temprano)에서 품종 이름을 붙였다는데, 다른 품종보다 빨리 익는 만큼 더위에 취약합니다. 성숙과 개화 시기가 빨라지면서 산도를 비롯해, 안토시아닌 같은 주요 성분의 농도가 낮아져 결국 와인 품질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스페인은 특히 온난화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 세기말까지 와인 산지의 90%가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와인전문매체 디캔터지에 따르면 몇십 년 후에는 젊은 소믈리에들이 템프라니요와 그라시아노, 마수엘로등과 함께 베네딕토, 모리벨에 대해서도 배우게 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최근 가성비가 좋은 피노누아 와인을 마시려면 독일 와인을 찾으라는 말이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 하면 그동안 화이트 와인 생산지로만 알려져 왔는데 말이죠.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이 온난화로 점점 기온이 올라가면서 그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독일이 피노누아 산지로 적당해졌다는 겁니다. 독일에서는 피노 누아를 슈패트부르군더(spatburgunder)라고 부르는데요. 지구 온난화가 일부 서늘한 와인 산지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처서가 지나도 열대야와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으면서 와인 산업도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와인용 포도 수확이 8월 초에 시작됐습니다. 이 지역의 포도 수확은 보통 9월 초나 빨라도 8월 중순쯤인데 1~2주 앞당긴 겁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포도가 이미 익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샴페인을 만드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는 지난해 9월 초 포도 수확 작업 중 열사병으로 인부 여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유럽 대륙이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빨리, 가장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구대륙 와인 생산국들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은 이 때문에 와인 산업에 변화와 타격이 커지고 있습니다. 더위가 일찍 시작되면서 포도 수확철이 갈수록 앞당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포도가 빨리 익어 당도가 높아지면서 와인의 알코올 도수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프랑스 레드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과거 11도에서 13도 정도였는데 요즘은 14, 15도짜리 와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와인 생산국들은 온난화에 대비해 어떻게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해야 하는지 연구와 시험에 돌입했습니다.
1. 프랑스 부르고뉴 - 포도밭의 방향을 바꿔라
이 포도밭에 단풍이 들면 석양 무렵에는 포도밭 전체가 황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언덕에서 가장 비싼 와인들이 만들어져서 글자 그대로 '황금의 언덕'인 셈입니다. 여기서는 레드 와인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피노누아 한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어 냅니다. 한 병당 1천만 원을 훌쩍 넘는 로마네 콩티 포도밭도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죠. 한 가지 품종만으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토양과 기후, 이른바 떼루아(terroir)가 중요한데, 이 떼루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포도밭의 위치입니다.
피노누아는 빨리 익는 조생종으로 약간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랍니다. 서늘한 기후에서 천천히 숙성되면서 산딸기, 체리, 바이올렛 같은 풍미를 발현시킬 수 있습니다. 로마네 콩티 같은 경우, 포도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가능한 늦게 수확하면서 포도의 풍미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날씨가 좀 따뜻하면 포도가 빨리 익어 당도는 갖춰지지만, 페놀을 비롯한 다른 복합적인 풍미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수확을 빨리하면 와인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부르고뉴의 포도밭은 고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려합니다.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겁니다. 너무 뜨거운 햇살이 오래 쬐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포도밭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도 고려합니다. 이렇게 되면 최고급 와인이 나오는 이른바 <그랑 크뤼> 포도밭의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2. 프랑스 보르도, 스페인 리오하 - 품종을 바꿔라
특히 로마네 콩티와 함께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히는 페트루스의 경우, 메를로 100%만으로 만드는 와인입니다. 메를로는 빨리 익는 품종으로 알이 크고 과즙이 많아 부드럽고 산도는 낮은 편입니다. 그 때문에 날씨가 빨리 더워지면 제대로 풍미를 살릴 겨를 없이 당도만 높아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 보르도 우안에서는 메를로 대신 카베르네 소비뇽을 시험적으로 심어 보고 있습니다.
보르도 우안에서 메를로를 많이 재배하는 이유는 토양 때문인데,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재배하는 좌안과 달리 우안은 점토질이 많은 토양입니다. 때문에 아직은 우안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이 성공적으로 재배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더위에 강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은 기후 온난화로 점점 더 당분과 탄닌이 높아지면서 강한 맛을 내고 있어서 원래 보르도 와인의 맛을 잃어간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보르도 블렌딩에서 그동안 보조적인 역할을 해왔던 카베르네 프랑이나, 쁘띠 베르도, 말벡 같은 품종들의 비율을 높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양조업자들은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지에서 재배되는 투리가 나시오날 같은 새로운 품종들도 심어져 새로운 보르도 블렌딩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스페인 : 템프라니요를 대체할 품종은?
스페인은 특히 온난화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 세기말까지 와인 산지의 90%가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와인전문매체 디캔터지에 따르면 몇십 년 후에는 젊은 소믈리에들이 템프라니요와 그라시아노, 마수엘로등과 함께 베네딕토, 모리벨에 대해서도 배우게 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4. 와인 종주국 바뀌나? - 독일의 피노누아, 영국의 샴페인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홍지영 기자 scarle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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