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입양기록①]10년을 했는데 엉터리?…복지부, 입양 기록 전산화 사업 감사 착수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전 중앙입양원)은 지난 2013년부터 각 민간기관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입양기록물을 한 데 모아 전산화하는 ‘입양 기록물 전산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간영역의 입양기록물을 공공기관이 통합 관리해 영구 보존하고, 입양인들의 정보 접근권도 높인다는 취지다.
그런데 최근 약 10년간 진행된 이 사업이 엉터리로 관리돼 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기본적인 기록물 스캔 작업부터 데이터를 온라인 시스템에 탑재하는 과정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처리돼 왔다는 것이다.보건복지부도 관련 문제를 파악하고, 아동권리보장원을 상대로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 관련 감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 개인정보, 시설 입소 경위, 친부모 정보 등이 담겨있는 입양 기록물은 해외 입양인들에게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다. 입양인들은 “문제가 있었다면 아동권리보장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보장원이) 빨리 나서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뉴스타파는 1970~1980년대 해외 입양의 구조적 문제를 규명하는 <해외입양과 돈> 프로젝트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입양 기관의 벽에 가로막혀 자신들의 정보를 찾지 못하는 해외 입양인들의 사례를 심층 보도한 바 있다. 입양인 뿌리 찾기에 도움이 되기 위해 시작된 것이 공공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의 입양기록물 전산화 작업인데, 역시나 엉터리로 진행돼 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 10년간 진행돼 온 입양기록물 전산화 사업의 실상을 추적, 연속 보도할 예정이다.
<해외입양과 돈> 프로젝트 모아보기
입양기록물 전산화 사업 10년…끝내 터져나온 의혹
입양인들은 대개 원가정에서 분리된 이후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기까지 한 기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1970~1980년대 해외 입양인들의 경우 과거 고아원으로 불리던 아동복지시설 등에 입소했다가, 홀트아동복지회 등 해외입양을 알선하는 기관으로 보내진 후 최종 입양됐다. 한 아동에 대해 여러 기관의 기록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복지시설, 입양 기관들은 각자 다른 형태로 기록을 생성한다. 입양인들이 자신의 기록을 찾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이처럼 개별 시설마다 흩어져있는 기록을 통합 관리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13년 중앙입양원에서 처음 시작됐다.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중앙입양원이 통합된 2019년 이후에는 아동권리보장원 주관으로 2022년까지 총 10년간 진행됐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아동권리보장원은 86개 폐업 아동복지시설 등의 기록을 전산화했다. 2023년과 2024년에는 사업이 시행되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홀트아동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등 입양 알선 기관의 기록이 의무적으로 보장원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그런데 내년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 알선 기관의 기록 의무 이관을 앞두고, 기존에 아동권리보장원이 10년 간 진행했던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에 총체적 부실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사업에 스캔 오류, 가이드라인 미준수, 시스템 업로드 미비 등 총체적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뉴스타파는 복수의 관계자 증언을 통해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10년간 진행된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 문제점이 언론에 의해 보도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백지를 왜 스캔?...원본도 없고, 시스템 탑재도 불분명
먼저 백지 스캔 의혹이다. 입양 기록 전산화 사업은 ‘스캔’ 작업, ‘데이터 구축’ 작업, 그리고 ‘업로드’ 작업 등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이중 사업의 첫 단추 격인 스캔 작업은, 개별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원자료를 일일이 스캔해 디지털 이미지 파일로 만드는 작업이다.
기록물을 스캔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내용이 있는 면을 스캔해야 하지만 아무런 내용이 없는 백지가 다량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가 아동권리보장원 안팎에서 나왔다. 복지부 관계자 역시 “백지가 스캔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어떤 해에는 이 같은 백지 스캔본이 전체 스캔 파일의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뉴스타파에 “백지로 된 스캔 자료가 너무 많다. 내용 정보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2020년, 2021년 같은 경우는 백지가 거의 절반”이라고 증언했다.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은 해마다 몇 건, 몇 장의 기록물을 스캔하고 전산화했는지 그 양적 지표가 사업 예산을 결정한다. 몇 장을 스캔했느냐에 따라 사업비가 책정되는 것이다. 만일 이처럼 백지가 다량 포함이 됐음에도 모두 스캔 면수로 책정돼 사업비가 집행됐다면 예산 부당 집행이 된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백지 스캔은) 결국 작업을 허위로 작업을 한 것이고, 수량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백지 스캔이 과업량으로 잡혔다면 문제가 될 수 있어서 관련 규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은 아동권리보장원의 용역 사업으로 진행됐다. 이때 실제 사업 수행을 했던 용역 업체는 입양 기록물 스캔 당시 지켜야 하는 가이드라인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테면 ‘면표시’다. 면 표시는 기록물 하단에 001, 002와 같이 쪽번호를 표기해 원본과 스캔본의 쪽수가 일치하고 누락된 것이 없는지, 원본의 진위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국가기록원 기록물 관리 지침에는 면표시 의무가 명시돼 있다. 2014년 아동권리보장원이 발주한 용역 제안요청서 상에도 이러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가이드라인을 반드시 지키도록 적시돼 있다. 그러나 관계자들 증언에 따르면, 사업이 수행된 총 기간인 10년 내내 면표시는 된 적이 없다.
문제가 더 까다로워지는 건, 아동권리보장원이 이 사업을 수행하는 동안 기록물 원본을 거의 확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스캔본을 이제 와 원본과 대조해 보는 것도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자연재해나 보관 미흡 등 원본 기록의 소실 가능성을 생각하면 아동권리보장원이 기록 원본을 먼저 확보하고, 그 후 스캔 작업과 전산화 작업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지금의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아동복지시설들이 아동권리보장원에 원본 기록물을 반드시 이관해야 한다는 법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보장원은 대부분의 원본을 확보하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아동권리보장원이 전산화 작업을 실시한 전체 86개 시설 중 원본을 갖고 있는 기관은 단 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81개 기관은 원본 기록은 없고 스캔본만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면표시 등이 되어있지 않아 스캔본이 원본과 정확히 일치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동권리보장원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뉴스타파가 접촉한 관계자들은 “면표시가 누락된 것이 가장 큰 오류다. 이 문서가 위변조됐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진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데이터 업로드도 뒤죽박죽…사람 이름과 정보 불일치”
기록물을 스캔하고 나면, 다음으로는 기록에서 데이터값을 뽑아낸다. 이 사업에서는 이를 '메타 데이터'라고 부른다. 아동의 이름, 생년월일, 친부모 이름 등 총 51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메타 데이터를 구축하면 마지막으로 입양정보통합관리시스템(ACMS)에 스캔 파일과 메타 데이터를 탑재해야 한다.
ACMS는 아동권리보장원과 입양 기관들이 함께 접속해 활용할 수 있는, 본래 의미대로라면 입양 관련 기록이 탑재돼 있는 온라인 시스템이다. 이렇게 되면, 입양인이 정보공개 청구를 해올 때 아동권리보장원이나 입양 기관 ACMS를 활용해 입양인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ACMS 시스템 업로드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2021년 아동권리보장원의 한 내부 회의록 문건에는 ‘미탑재 데이터’라는 말이 나온다. 이 회의록의 제목은 ‘입양기록물 전산화 구축 데이터 ACMS 업로드 관련 회의 보고’다. ACMS에 전산화 사업을 통해 구축된 데이터를 업로드 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 것이다.
회의록에는 ‘2020년도 구축 데이터’와, ‘2018년~2020년 구축된 데이터’가 탑재되지 않았다고 적혀있다. 2021년 기준으로 전년도, 즉 2020년에 확보된 입양 기록 데이터와, 2018년부터 2020년 사이 확보된 입양상담기록 데이터가 시스템에 탑재되지 않고 있었다는 의미다.
아동권리보장원 안팎에서는 회의록에 적시된 시기뿐 아니라 그 앞선 시기의 데이터도 ACMS 시스템에 제대로 탑재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후 2021년이 되어 아동권리보장원이 데이터를 시스템에 업로드했지만, 여전히 100% 업로드가 되어있는지 불분명하고, 몇 년 치를 뒤늦게 한꺼번에 하다 보니 ACMS 시스템상 아동의 정보가 뒤죽박죽이 되거나 같은 아동이 중복으로 업로드되어 동일 아동 이름이 7명, 8명이 된다는 것이다.
한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ACMS에서 아동을) 검색했을 때 업로드가 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았고, 동일인도 많다. (데이터가) 뒤죽박죽인 것”이라며 “심지어 ACMS 시스템상 검색되는 내용이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도 업로드가 다 되어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으로 최소 18억 원을 집행했다.
입양인들 “기록이 곧 우리이고, 전부인데…”
입양인들은 자신들의 기록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덴마크 한인 입양인들의 그룹인 DKRG(Danish Korean Rights Group) 한분영 공동대표는 “기록이 바로 우리다. 그게 우리가 가진 전부”라며 “만약 기록들이 부정확하거나 조작됐거나 완전하지 않다면,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다른 단서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입양기록은 입양인 개인의 일부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대표는 “아동권리보장원은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기록 보존을) 약속한 거고 그 일을 했다고 한 것”이라며 “그런데 아동권리보장원은 게으르고, 부주의하고, 무관심했던 것 같다”고 일갈했다.
DKRG 피터 뮐러 공동대표도 “아동권리보장원은 이 사업을 한 번만 한 게 아니라 10년을 했다. 그렇다면 후속 조치가 있었을 거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이런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겠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정말 책임을 져야 한다. 빨리 나서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뒤늦게 점검 나선 아동권리보장원·보건복지부 ‘분주’
입양인들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입양기록물의 전산화 작업이 왜 이렇게 부실하고, 허술하게 진행됐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업의 용역 업체였던 A사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시설들이 원본 기록을 제출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어 (우리는) 현장에서 스캔만 한 것”이라며 “현장감리를 받아가며 스캔 작업을 했고, 메타데이터도 감리를 받았다, ACMS 업로드도 했다”고 말했다.
백지 스캔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몰랐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보장원에서 연락이 왔을텐데 추후에라도 연락온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실수한 게 있다면 고쳐놓겠다”고 말했다.
아동권리보장원과 보건복지부는 모두 최근 입양기록물 전산화 사업 관련 문제점을 인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10년간의 사업 내용을 세밀하게 확인 조사하고 있다. 미흡한 내용이 발견될 경우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아동권리보장원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일부 문제점을 파악하고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 전반에 대해 감사를 진행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규정에 저촉되는 사항이 확인되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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