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실험 외길…'젊은 그대' 김수철의 45년[임진모의 樂카페]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지난 1979년 당시 동양방송 주최의 대학축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밴드 ‘작은 거인’ 활동부터 올해 8월 폭염 한복판에 발표한 앨범 ‘너는 어디에’까지, 김수철은 장장 45년의 세월을 음악과 함께했다. KBS 라디오 ‘젊음의 찬가’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면서 데뷔한 시기를 따지면 47년으로 늘어난다. 그 긴 세월을 관통하면서 남기고 되새김을 반복한 김수철의 음악 궤적은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로큰롤이 그 격렬함 옆의 땅에 구축한 전혀 다른 정서인 차분한 서정성이다. 과거의 골든 레퍼토리인 ‘내일’과 신보의 ‘나무’, ‘나무사랑’은 성찰에 따른 관대와 탐미 의식이 교차하면서 가슴 벅차오르는 공감을 선사한다. 1984년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하면서 그의 인기는 훗날 ‘1984년의 서태지’로 불릴 만큼 거대했다. 꽃길만 걷게 될 수 있었음에도 그때 그는 극심한 정신적 불균형에 시달렸다.
“왜 우린 허구한 날 서구음악만 해야 하나. 우리 것을 하면 안 되는 건가.” 끝없는 회의는 차츰 전통과 고유에 대한 호기심을 불렀고 끝내는 국악행을 재촉했다. 이것이 상기한 둘보다 더 중요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를 대중음악가들의 판테온에 정중히 모셔야 할 세 번째 궤적이다. 국악은 산재한 심정적 혼돈을 뿌리 뽑을 숨은 질서, 오래된 미래였다. 사람들은 인기가 정점을 찍고 있던 때에 가한 무모한 자기전복이라고 했지만 사실 국악에 대한 관심은 훨씬 이전인 작은 거인 시절부터였다. 작은 거인 2집 수록곡이자 애청곡인 ‘별리’가 증명한다.
승산이 없다, 돈 안 된다, 미련하다는 외부 시선은 괘념치 않았다. 국악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음악 언어가 필요했다. 여기서 전통의 소리를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하는 ‘기타산조’라는 음악 탯줄이 잉태됐다. 기타산조는 이번 신보에도 등장,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세계에 우리의 소리를 알려야 한다는 비전 아래 그것을 86 아시안게임, 87 대한민국 무용제, 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등 행사음악으로 풀어냈다.
1990년에는 가장 성공한 국악 앨범으로 평가받는 영화 ‘서편제’ 음악의 대성공으로 모처럼의 대중적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음반사에 줄기차게 “국악이 한번은 된다!”고 주장했다. 김수철의 또 다른 이름은 ‘실험’일 것이다. 잘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현대적 랩의 시작도 홍서범의 ‘김삿갓’이 아니라 그 이전 1987년 김수철이 음악을 맡은 영화 ‘칠수와 만수’의 ‘무엇이 변했나’였다.
그는 자신의 음악 지향이 한국 음악 대중에게 친근함과 자부를 전달하는 그 순간까지 창의를 거듭할 사람이다. 전적으로 자유적 창작에 매진한 ‘노마드’의 삶이 따로 없다. 그게 긴 세월을 외로이 써내려간 고단한 이력의 축약일 것이다. 전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난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는 것만 한다. 내가 국악하는 것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지만 난 단순해서 무언가를 기획할 줄 모른다. 국악을 싫어하는데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좋은 게 최선이다.”
그는 지금도 변방보다 더한 작업실의 고독 속에서 ‘우리만의’ 눈부신 소리를 향한 욕망과 자신을 갱신하는 열정의 환희로 살아간다. 고립을 스스로 강제했지만 대신 음악적 자립을 획득했다. 확실히 그는 순간의 빅 히트 뮤지션이 아닌 평생음악가이길 바란다. 이 점에서 그는 그 누구보다 성공했다.
김현식 (ssi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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