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가 지분쪼개기···'투기벨트' 된 그린벨트

박형윤 기자 2024. 8. 2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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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발표 전에 기획부동산 활개
올 889억 거래, 작년 전체 추월
토지 수용 과정 등 진통 불가피
"조사강화" 불구 이미 세력 잠식
"해제 발표전 토허제 지정했어야"
[서울경제]

# 그린벨트 해제 후보지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 강동구 둔촌동 산 OO번지. 해당 토지의 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결과 지난달 30일 토지 소유자로 27명이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해당 토지는 한 업체가 2024년 6월 1억 7000만여 원에 사들인 땅이다. 이 업체는 ㎡당 20만 원 선에 토지를 구매한 뒤 지분을 쪼갠 후 ㎡당 61만 원, 총 5억 1000만여 원에 되팔았다. 한 달 만에 3억 4000만여 원의 차익을 거뒀다.

#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산 OO번지 일대도 상황은 똑같다. 동일한 업체는 올 3월 7일 하남시 감이동의 산 OO번지를 1억 6000만여 원(㎡당 15만 원)에 매입했다. 이들은 4일 뒤인 11일 30명에게 ㎡당 44만 5000원에 넘겼다. 3배 가까운 차익을 얻은 셈이다.

정부가 주택 공급 촉진을 위해 서울과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후보지로 떠오른 상당수 그린벨트 토지가 기획부동산의 지분 쪼개기에 잠식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토지 보유자가 급격히 증가해 보상 절차가 지연될 수밖에 없어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 활성화 계획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25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감소세를 보이던 서울 내 그린벨트 토지 거래가 올 초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 금액으로 보면 2022년 전체 1150억 원을 기록한 후 2023년 840억 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그린벨트 토지 거래 금액은 889억 원을 기록해 이미 지난해 전체 거래 금액을 추월했다.

그린벨트 토지 거래 방식의 상당수는 기획부동산의 토지 매매 형태인 ‘지분 쪼개기’로 이뤄졌다. 올해 거래된 서울시 167건의 그린벨트 토지 거래 중 125건이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분 쪼개기 방식은 전형적인 기획부동산 업체의 수법으로, 기획부동산 업체가 매입한 토지를 쪼개 수십 명에게 웃돈을 얹어 되파는 방식이다.

올해 그린벨트 토지 거래가 되살아난 것은 4월 총선 과정에서 여권이 그린벨트 해제 기조를 밝히면서 투기 수요가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2월 울산 민생 토론회에서 그린벨트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의힘도 “그린벨트 규제 혁신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국토균형발전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그린벨트 해제를 요구했다. 이에 더해 3월부터 서울 집값이 상승하면서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공급 확대 방안이 거론되기 시작하자 그린벨트 거래량은 급증했다. 서울의 경우 1월 7건에 그쳤던 그린벨트 거래 건수는 총선과 집값 상승기를 거치며 △5월 51건 △6월 31건 △7월 67건으로 늘어났다. 경기도의 경우 올해 2월 15건에 그쳤던 그린벨트 토지 거래 건수가 △3월 21건 △4월 65건 △6월 416건 △6월 438건 △7월 444건으로 점진적으로 폭증했다.

이처럼 그린벨트 토지 소유주들이 많아지면 저렴한 가격에 토지를 수용해 합리적 가격에 주택 공급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취지는 유명무실해진다. 이 때문에 국토연구원도 지난해 작성한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그린벨트 소유주가 시세 차익을 염두에 두고 매입한 만큼 규제를 풀어주면 투기 수요에 불이 붙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의 그린벨트(3751㎢) 132만 필지 가운데 사유지가 면적 기준으로는 70%로 집계됐고 이 중 1개 필지에 소유주가 2인 이상인 토지는 15만 필지에 달했다.

그린벨트 해제 후보지의 투기 거래가 극성을 부리면서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 이전부터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그린벨트를 해제하려고 했으면 해제 발표 이전에 상당한 기간을 두고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투기 세력 침투를 차단했어야 했다”며 “이미 기획부동산 등에 의해 잠식된 상황에서 높아진 토지 보상금 등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고 시세보다 저렴하게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8·8 공급 확대 대책 발표 당일에야 그린벨트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4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는 가격 띄우기 등 불법행위를 집중 조사하겠다”며 “투기 수요 차단을 위해 신규 택지 발표 시까지 서울 개발제한구역 및 인접 지역의 토지 이상거래에 대한 정밀 기획 조사도 실시하겠다”고 뒷북 조사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부동산 전문가는 “그린벨트를 매입한 소유주들은 나무를 심는 등의 행위로 많은 보상금을 받으려고 벌써부터 준비를 했을 것”이라며 “3기 신도시도 토지수용 절차로 인해 착공조차 못 하고 있는데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공급 계획 역시 상당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린벨트 해제로 당장 오른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대책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린벨트 해제로 주택이 공급되기까기는 그린벨트 해제→사업지 지정→택지 조성→인허가→착공→분양→입주 절차를 거치며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두 대표는 “택지가 부족해서 공급이 안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미 서울 강북 지역에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가 많은데 공사비 상승으로 추진되지 않는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로 단기간에 집값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시의적절하지 않은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박형윤 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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