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태풍 예측과 한국형수치예보모델
우리나라의 여름은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리며, 집중호우, 폭염 등 각종 위험기상이 빈번히 발생해 1년 중 기상재해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계절로 꼽힌다. 여름철 위험기상 중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초래하는 태풍은 따뜻한 열대 지역 바다에서 에너지와 수증기를 공급받아 발생하며, 해수면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고위도로 북상하면서 에너지를 잃고 소멸한다. 그 과정에서 저위도와 고위도의 열에너지 불균형이 해소되는 측면도 있지만, 태풍은 지나간 자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곤 한다.
우리나라는 통계적으로 연평균 3.3개의 태풍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그 시기는 7월에서 9월 사이에 집중된다. 태풍은 발생 초기에는 열대지방의 편동풍을 따라 북서진하다가, 위도 20-30도 근처의 편서풍을 따라 경로를 틀면서 속도가 빨라진다. 이렇게 태풍의 진로가 급격히 바뀌는 지점을 태풍의 전향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영향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전향 시점과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태풍의 경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되면, 기상청은 태풍의 진로, 예상 상륙 위치, 태풍에 동반된 강풍, 집중호우 등 위험기상 현상의 강도와 흐름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등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해 태풍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태풍정보를 기반으로 방재 관련 기관, 지자체, 학교 등은 체계적인 재난 대비 체계를 발동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하고 있다.
막대한 위력을 지닌 태풍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태풍정보가 시기적절하게 발표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위성과 레이더 등 다양한 관측기기로부터의 기상관측자료, 상세하고 정확한 수치예보모델, 예보관의 경험과 역량의 3박자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특히 우리 기술로 탄생하고 우리나라 기상·기후환경에 최적화되어 있는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은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 예측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작년 8월 9일 우리나라를 강타한 제9호 태풍 카눈의 경우를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의 강점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을 수 있다.
태풍 카눈은 발생부터 전향, 상륙까지 전례 없이 특이한 이동 경로를 보였다. 7월 26일 필리핀 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후 중국내륙으로 상륙할 것처럼 보이다가, 8월 3일 일본 오키나와 서쪽 해상으로 1차 전향, 다시 2차 전향을 한 후 결국 우리나라로 북진해 한반도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했다. 2주가 넘는 대장정 동안 카눈이 보인 특이한 행보는 주변 기압계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카눈보다 앞서 발생한 제5호 태풍 독수리가 중국에서 저기압으로 약화된 후 만들어진 바람이 카눈의 진로를 방해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는 보통의 태풍과 달리, 카눈은 북태평양고기압이 감싸는 구조를 보이면서 '갈지(之)자' 형태로 이동했다.
이러한 복잡한 주변 기압계와 태풍의 비전형적인 진로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한 모델이 바로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이다. 2023년 8월 1일에 발표된 수치예보모델들의 태풍 예측 진로를 비교해보면, 선진 수치예보모델로 손꼽히는 유럽 모델(ECMWF)이나 영국 모델(UM)은 카눈의 한반도 상륙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은 카눈의 '갈지(之)자' 형태의 진로와 한반도 상륙을 조기에 예측했다.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의 예측을 바탕으로 기상청 예보관들은 태풍 진로 예측을 조기에 발표할 수 있는 선행시간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방재 대응의 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관계기관들은 태풍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특히 기상청의 태풍 예측정보를 기반으로 정부는 긴급 대체 플랜을 발동해, 당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 중인 156개국 3만 6000여 명의 참가자들을 새만금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하고 서울, 수도권 등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이 안전을 위한 의사결정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상기술력으로 탄생한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은 오늘도 위험기상을 위한 예측 도구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예측 성능을 높여가고 있다. 남은 올 여름과 앞으로도 매년 찾아올 여름에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이 위험기상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든든한 수호자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장동언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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