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에… 제정조차 못 하는 가짜뉴스法 [심층기획-사회 혼란 빠뜨리는 가짜뉴스]
21대 42건 발의… 총선 관련 1건만 통과
“가짜뉴스 개념 모호” “허위 판단 어려워”
영향력 큰 유튜브 등 ‘법 사각지대’ 여전
22대 국회선 플랫폼 의무 강화법 발의
‘청담동 술자리’ ‘20억원 조폭 뇌물설’ 등
정치권선 표심 노리고 무분별 의혹 제기
집권당 이익 따라 규제 주장도 오락가락
가짜뉴스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사회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를 ‘악성 정보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전면전에 나섰고,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가짜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하는 무서운 흉기”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가짜뉴스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한 입법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1대 국회에서 가짜뉴스 관련 법안은 총 42건 발의됐고, 이 중 41건이 폐기됐다. 유일하게 통과된 1건은 선거 90일 전부터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으로, 4·10 총선을 앞둔 지난해 12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딥페이크를 활용한 가짜뉴스 확산이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커지자 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관련 법안 42건 중에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14건으로 가장 많았고, 정보통신망법 개정안(12건)과 언론중재법 개정안(12건) 등이 주를 이뤘다. 이 중 국민의힘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허위조작정보의 유통 방지 의무 등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가짜뉴스 방지법’으로 규정하고 지난해 9월 당론 발의했다.
언론중재법이나 방송법 등의 적용을 받지 않는 유튜브발(發)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미디어 환경 변화를 반영한 기존 법체계 개편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제22대 국회 입법정책 가이드북’에서 “21대 국회에서 허위정보 유포자나 인터넷 플랫폼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면서 “현행법상 특정 허위정보에 대해서는 게시자 및 해당 정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어 온라인상 가짜뉴스의 유통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이 6월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네이버·유튜브 등 플랫폼에 가짜뉴스 차단 의무를 부여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법안 역시 과잉 규제나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서 비켜나가긴 어렵다.
오히려 정치권은 가짜뉴스 근절이 아닌 확대재생산에 앞장서고 있다. 민주당 김의겸 전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30명이 청담동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김용판 전 의원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조직폭력배 20억원 뇌물 수수설’을 제기했다. 일부 정치인들이 제대로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자신의 SNS에 공유한 가짜뉴스가 순식간에 퍼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 속에서 강성 지지층의 표를 받기 위해 가짜뉴스를 활용한다는 분석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가짜뉴스 여부를 다르게 판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다. 야권은 오염수의 유해성을 주장하며 방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를 가짜뉴스라고 했다. 방류 1년을 앞둔 지난 22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민주당이 했던 말이 실현됐다면 지금 우리 바다는 오염되고, 수산업은 황폐해 있고, 국민 건강은 위협받고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고, 이에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시간이 지나도 별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니 안전하다고 우기는 혹세무민”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정치권의 진영 논리는 가짜뉴스 관련 입법을 가로막고 있다. 가짜뉴스 규제 강화를 주장하다가도 야당이 되면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등 공수가 뒤바뀌면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때는 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정부 들어서는 국민의힘이 앞장서 가짜뉴스 규제법을 발의하는 식이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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