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엷음·두터움

이홍렬 기자 2024. 8. 26.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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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24강전 제4국 <흑 6집반 공제·각 3시간>
白 이창석 九단 / 黑 구쯔하오 九단

<제11보>(127~134)=’두터움’과 ‘엷음’만큼 자주 등장하는 바둑 용어도 흔치 않다. 아군 돌들이 단단하고 효율적으로 배치돼 있어 공수(攻守) 양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때 ‘두텁다’란 표현을 쓴다. ‘엷다’는 건 그 반대의 경우를 뜻한다. 두터움의 가치는 패(覇)싸움이 났을 때도 빛을 발한다. 판을 엷게 짠 쪽은 패가 발생했을 때 두터움의 위력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백 △가 지난 보 마지막 수. 마치 탱크를 앞세워 적의 진지를 일직선으로 침공하는 모습이다. 백의 두터움과 흑의 엷음이 고스란히 교차하는 장면. 127로 ‘가’에 끊는 반격은 어떨까. 그것은 참고도 5까지 버티고 6 때 7로 따내 패가 된다. 하지만 이 패는 A를 비롯해 우상귀 일대가 백의 팻감 공장이어서 흑이 못 견딘다. 엷음의 설움이다.

고심을 거듭하던 흑이 127, 129의 강수를 들고 나왔다. 어찌 보면 승부를 포기한 마구잡이 수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가’의 노림이 깔린 타개 수단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백은 130의 1선 젖힘수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133까지 승부패가 발생했지만 문제는 팻감. 당장 134부터 안 받을 수 없는 팻감이다. 전국이 엷은 흑에게 종말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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