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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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여름 하면 최고의 축제 중의 하나가 'MBC 강변가요제'였다.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보통 가요제 음반은 참가자 1인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데, 이 대회 음반에는 이상은이 메인 사진으로 배치된 것에서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여성이 남성처럼 옷을 입고 다닌다든가, 남성처럼 노래한다는 것은 좋게 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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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여름 하면 최고의 축제 중의 하나가 ‘MBC 강변가요제’였다.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강변유원지에서 열렸기 때문에 지금처럼 즐길거리가 다양하지 않던 당시엔 이런 가요제를 학수고대하며 놀러 다니는 일이 많았다.
당시 강변가요제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또 하나의 사건이 있는데 바로 1988년 열린 제9회 가요제다. 이 가요제에서 가수 이상은이 흥겨운 댄스곡 ‘담다디’를 불러 빅히트했다. 보통 가요제 음반은 참가자 1인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데, 이 대회 음반에는 이상은이 메인 사진으로 배치된 것에서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상은의 등장은 당시 한국 사회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1988년 서울은 올림픽과 함께 개방의 바람이 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유니섹스라는 단어가 생겨나더니 남녀공용으로 입는 옷이 등장해 인기를 얻었고, 가수 김범룡, 임병수 등 여성스러운 음색을 가진 가수들이 히트곡을 내면서 남자 가수의 여성화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여성이 남성처럼 옷을 입고 다닌다든가, 남성처럼 노래한다는 것은 좋게 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상은은 중성적인 캐릭터였다. 큰 키에 남성처럼 옷을 입고 노래 부르는 것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게다가 당시 팝 음악계는 영국 게이 가수 보이 조지가 컬처클럽이란 이름으로 ‘카르마 카멜레온’이라는 노래를 발표해 인기를 얻었는데, 마치 그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도 있었다. 이후 이상은은 곧바로 방송계에 진출해 라디오 디스크자키(DJ), 사회자(MC)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어느 날 가요계를 떠났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행과 미술 활동을 하며 살아갔다. 심지어 그는 철학자 니체에게 심취해 ‘리체’라는 예명도 만들어 사용했다.
이후 이상은은 ‘공무도하가’ ‘삶은 여행’ 같은 인간에 초점을 맞춘 노래들을 만들어 발표했고, 상업성이 아닌 진정한 예술가로 사는 삶을 찾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훗날 발표한 노래들은 마니아를 양산하며 사랑받고 있다. 아마도 지금의 이상은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과거 강변가요제의 예상하지 못한 모습에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이상은은 전기요금 아껴야 한다며 에어컨도 쉽게 틀 수 없었던 시절 한 줄기 시원한 강바람이었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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