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번의 현장 마다않은 유인촌 "문화 선진국 한국, 예산으로 힘 실어야"
"올림픽이 끝났기 때문에 체육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하겠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체육정책을 완전히 새로 정리하고 학교체육과 생활체육 그리고 엘리트체육을 확실하게 제대로 정상화시키겠다"고 관련정책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면서 올림픽 성과에 대해 축하받아야 할 선수들이 대한체육회나 각 협회의 잘못으로 위축돼 있는 것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유 장관은 "이전 (중국)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해단식을 세종문화회관에서 하고 거기서부터 걸어 시청 앞까지 퍼레이드도 했다"며 "이번에도 오랜만에 퍼레이드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고, 환영식도 시청 앞이나 광화문에서 하고 싶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우리 선수들이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운동선수 이후의 삶에 대해 걱정 없도록 정책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달 28일부터 시작될 파리 패럴림픽에서도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 장관은 취임 후 11개월 내내 수백번에 이르는 현장 간담회와 지방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소규모 시·군·구 단위 지역도 자주 방문해 문화·예술·체육·관광 분야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직접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문화 선진국' 초입에 들어선 한국이 '문화적인 업적'을 이뤄내고 한류의 인기를 지속하기 위해 문화 예산에 대한 중요성을 정부와 국회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도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 장관은 "항상 예산이 결정되는 마지막 순간에 문화 분야를 후순위로 밀어버리는 경우가 반복된다"며 "지금 예산으로 힘을 실어야 K-콘텐츠의 우위가 유지가 된다는 점을 우리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유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올림픽 이후 엘리트체육 정책 방향은.
▶더 나은 조건에서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각 종목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며 은퇴 후 삶에 대한 걱정을 줄일 수 있도록 정책적 대안을 마련 중이다.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엘리트체육 저변 확대와 우수선수 집중육성에 힘쓰고, 국민생활에 밀접한 지자체에서는 생활체육 활성화를 주도하는 등 스포츠 행정 주체 간 적절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목단체가 스스로 중장기 비전을 세우고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방식을 개편할 계획이다.
-현장에 많이 다니는데 체력적인 부분은 괜찮나.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항상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가 조금만 불편하면 여러 사람 마음이 편해지니까 가야한다. 많이 만나고 그렇게 가리지 않고 다 다니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부터 책임자들까지 직접 만났기 때문에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이런 자리에 현직 장관이 온 건 처음 봤다'는 것이다.
-이명박(MB)정부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그때도 많이 다녔는데 오히려 지금이 훨씬 많이 다니고 있다. 옛날보다 지역 콘텐츠가 훨씬 더 다양해져 그렇기도 하다. 지방행이 더 많아진 이유다. 어떤 분야에서는 취임 후에 장관을 벌써 여러 번 만났다는 이들도 있다.
-많이 만난다고 다 성과를 얻을 수는 없지 않나.
▶보통 2시간은 기본으로 만나는데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고 나면 불만이 있던 분들이라도 대부분 풀어진다. 현장에서 해줄 수 있는 건 그 자리에서 해주겠다고 답하고 시간이 걸리는 건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설명을 준다. 대부분은 지원을 요구하는 사항들이 많다. 15년 전 미술계에서 20여명이 찾아왔는데 (그간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한 뒤) 간담회 끝내고 악수하면서 한 관계자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좋다. 우리 얘기를 2시간 동안 들어준 것만 해도 만족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 걸 겪어보니 모두를 다 만나는게 어렵지만 꼭 해야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다니는 직원(공무원)들도 힘들텐데.
▶지역에 가면 문체부 관련 일은 종합적으로 다 본다. 그러다보니 부처 내 거의 모든 분야 담당자들이 다 같이 와야 하는 때가 대부분이다. 관광행사 등은 주말에도 행사가 이어지는데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광 분야도 중요해 주말 일정을 소화하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 산티아고 같은 '순례길'에 관심을 여러차례 표명했다.
▶지역 소멸 문제 등과 연결되는데 우리도 순례길 같은 걸 잘 만들어서 스페인 산티아고의 길처럼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키우고 싶다는 구상이 있다. 먼저 충남 공주 쪽에 '범종교 순례길'을 시범적으로 조성하려고 한다. 세계적 관광 트렌드가 직접 체험해보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몸으로 직접 뭔가를 하기를 원하고 있고 편하게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보행길을 많이 다니길 원한다. 우리도 충분히 그런 여건이 되는데 제대로 이어놓지 않아서 공주에 불교·카톨릭·기독교·유교를 다 이어주는 그런 순례길을 만들고자 한다. 공주 외에도 전국에 각 종교별로 순교길이 다 있는데 서로 연결이 안 돼 있다. 그런 것들을 연결만 시키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25전적지를 도는 자전거길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문체부 내 동아리 회원들과 같이 전적지를 다니고 있다. 업무때문에 토요일에 가고 있는데 강원도와 경기 북부의 주요 전적지, 유엔군 파견국가의 위령비 등을 답사하고 있다. 경기 포천에는 태국 참전비가 있는데 태국에서는 참전 용사들 얘기로 웹툰을 만들고 이를 연극으로 다시 만들어서 국내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캐나다에 갔더니 캐나다군이 활약했던 경기 가평전투를 다들 알고 있고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전적 기념물로 해외 사람들이 우리와 연결이 되는 것이다. 다녀보면 그런 기념물들이 그냥 방치된 곳도 있고 한데 정비가 필요한 곳은 이번에 관리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다부동 전투(경북 칠곡) 유적지를 마지막 답사 코스로 돌고난 뒤 (전국 전적지) 자전거길을 연결해 표시해주고 국내외 여행자들이 이 루트를 따라 여행 할 수 있도록 해주는게 목표다.
-자전거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
▶4대강 자전거길이 아주 잘 돼 있다. 자전거 타고 자동차를 만나지 않으면서 자전거길로만 서울에서 부산으로 갈 수 있다. 금강과 섬진강, 영산강, 남한강, 북한강 모두가 다 자전거길로 연결이 된다. 그런데 동호인들은 이미 4대강 길은 많이 타 봤다. 새로운 길을 찾아 해외로도 많이 가는데 우리도 그런 길을 계속 만들어줘야 한다. 유럽도 얼마 전에 10여개 국을 관통하는 자전거길을 발표했다. 그만큼 자전거 관광객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국내 전적지 자전거 순례길을 만들 필요가 있어 보였다. 스탬프도 찍어주고 근처 식당도 할인해주고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코스를 만들어주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다 오게 돼 있다.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문체부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도시 뿐 아니라 지역에서는 문화예술과 체육 콘텐츠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 갈증이 너무 많아 우리 국립단체들은 내년 첫 공연을 항상 세종시를 기점으로 시작하도록 했다. 먼저 세종에서 하고 그 다음에 서울을 가거나 지역으로 더 뻗어나가라는 것이다. 국립단체가 솔선수범하는게 굉장히 중요하다. 항상 서울에서 먼저 했는데 그걸 깨서 지역 먼저 공연을 해줘야 한다. 할리우드 영화도 이제는 한국에서 먼저 개봉한다. 그런게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올해도 이미 많이 지역을 돌았지만 내년부터 더 활발하게 지역을 다닐 것이다.
-지역 아이들의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한 예술 교육도 필요하다.
▶최근 알펜시아리조트(강원 평창)에서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이 ' 꿈의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사흘간 연습해 합주를 하는데 악기를 처음 만진 아이들이 배운지 3년차에 이렇게 합동으로 연주를 하는게 가능하다는 생각에 정말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각자 악기를 신주단지 모시듯 갖고 다니다는데 그애들에게 큰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배우고 싶어도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도 많았다는데 감동적이었다. 특히 '꿈의 오케스트라' 출신 아이들이 이미 음대 전공자로 진학해 현장에서 연주를 하는 것도 보여줬는데 저렇게 성장을 할 수 있다는게 놀라웠고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요즘 가장 고민이 많은 부분은 무엇인가.
▶어떤 정부가 됐든 문화적인 업적이 있어야 한다는게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항상 '문화가 중요하다'고 얘기는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항상 예산이 결정될 때는 후순위로 밀리는 걸 반복한다. '문화를 좀 해야 돼'라고 시작하다가도 마지막에는 뺀다. 문화는 결과물이 금방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표를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들이나 지자체장 입장에서는 지역에 눈에 보이는 건물 같은 걸 하고 싶어한다. 우리 문화의 현재 위치는 거의 선진국이다. 여기에서 힘을 실어야 유지가 되는건데 잘못하면 K-팝도 J-팝처럼 쇠락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일본도 한때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세계적 인기가 있었는데 이제 시들해졌다.
문화에서 '힘'을 실어주는 건 '예산'이다. 영역을 확장시켜주고 사람을 키우고 국제적으로 진출시키려면 정부가 (예산으로) 더 마중물을 줘야 한다. 문화예술 예산이 후순위로 밀리는 그런 부분이 좀 안타깝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만드는 것도 역대 정부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했던 사업이다. 어쨌든 결단과 추진력이 대통령의 의지와 맞물려서 해내야 하는 일이 그런 것들이다. 문화사업을 하다보면 이해충돌이 생기는 타 부처에서 관행적으로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정부에서도 문화적 업적이 필요하다. 남산 자유총연맹이 공연예술센터로 변신하는게 이 정부의 업적이 될 것으로 본다. 국립극장과 연결돼 있어 앞으로 거기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연극·무용·음악·국악이 함께 하는 공연의 메카가 될 것이다.
-내년 문체부 예산안의 큰 방향은.
▶큰 틀에서 문화의 산업적 역량을 극대화하고 국민 삶의 질 제고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예산안 마련에 방점을 두고 협의 중이다. K-컬처의 원류인 예술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되 예술시장을 만들고 창업과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혁신하고 문화의 경제적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콘텐츠 수출과 방한 관광시장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부처 협업사업도 확대하면서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 지원을 통한 문화향유 격차를 완화하고, 지역문화 균형 발전도 계속 지원할 예정이다.
대담=최석환 문화부장 겸 정책사회부장 neokism@mt.co.kr 정리=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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