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잠재력 증명해야 연구 지속 가능”
세계적 석학 등 10명 사흘간 평가… 29개 연구단 대상 심사 첫 공개
논문 편수보다 독창성 등 중시… 열띤 토의 거쳐 투표로 최종 결정
기준등급 이하 땐 연구단 종료
지난달 31일 성균관대 수원 자연과학캠퍼스 N센터의 한 대형 강의실에 100여 명의 연구원과 교수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앉았다. 이들은 기초과학연구원(IBS) 29개 연구단 중 하나인 ‘뇌과학이미징연구단’ 소속 연구자들로 연구단의 지속 여부에 직결되는 ‘11년 차 평가’를 받기 위해 모였다.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뇌를 이해하는 연구를 한다.
성과 발표가 끝나자 평가위원들이 손을 들며 질문을 쏟아냈다. “연구를 해외 다른 연구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연구단의 분석은 통증에 대한 좋은 치료법이나 좋은 약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되나” 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논문 수가 아닌 연구의 과학적 우수성과 독창성, 잠재성, 국제협력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2011년 한국의 기초과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IBS의 연구단 11년 차 평가 현장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평가위원 중 해외 석학은 50% 이상
IBS는 연구단을 대표하는 단장을 중심으로 연구단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최소 10년간 연구 기간도 보장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운다. 그만큼 평가도 까다롭다. 연구단 착수 5년 후 첫 성과 평가를 하고 이후 3년 단위로 평가를 실시한다. 8년차 성과 평가 이후 S, A, B, C 순으로 등급을 나누는데 연속으로 A등급 이하를 받은 연구단은 종료 혹은 규모 조정 등의 과감한 조치가 취해진다. 이전 평가에서 A를 받은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은 이번 11년 차 평가에서 S등급을 받아야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IBS 성과 평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세계적인 석학들로 이뤄진 평가위원회가 연구단의 과학적 우수성을 ‘정성평가’로 등급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연구단이 논문을 몇 편 펴냈는지가 아닌 과학적인 잠재력이 얼마나 되는지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등 세계 유수 연구소의 평가 방식에 착안해 공정성에 집중한다.
이날 진행된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의 평가는 1차 서면평가 후 진행된 ‘현장평가’로 2박 3일간 진행됐다. 첫 순서는 연구단 성과를 발표하는 ‘오픈 심포지엄’이다. 평가위원회 석학은 10명이다. 위원장, 공동위원장을 비롯해 6명의 평가위원과 2명의 공통참관위원이 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외국인 석학이 무려 6명이다. 평가위원회는 연구단과 연구분야는 같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외국인 석학을 50% 이상으로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들의 이름과 소속은 현장평가 당일 직전까지 비공개 원칙이다. 평가 날 연구단과도 초면인 셈이다.
IBS 연구단 평가에 참여한 바 있는 헤르베르트 예클레 독일 막스플랑크 융합연구소 명예소장은 “평가를 받는 연구원들과 학연, 지연 등이 없거나 아예 타 분야를 연구하는 석학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한다”며 “또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확인하는 ‘공통참관위원’도 둔다”고 말했다.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적 있는 김도한 광주과학기술원(GIST) 생명과학부 교수는 “공통참관위원 2명은 보통 여러 연구단 평가에 참여하기 때문에 각 평가 방식을 비교하며 다른 평가에 비해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한다”고 말했다.
● 막스플랑크보다 엄정한 평가
단장, 부단장 성과 발표 후 연구단 구성원들은 평가위원회와 4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평가위원회는 연구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연구단으로부터 어떤 동기부여를 받는지, 다른 연구원들과 어떻게 협력하는지 등도 묻는다. 이 자리에 단장과 부단장은 들어갈 수 없다.
과거 연구단 평가위원이었던 세계적 고체물리학자 임지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연구단의 수월성을 평가한다는 의미는 연구단이 국제 협력을 얼마나 하는지, 학문 후속 세대 양성을 위해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성원 인터뷰 뒤에는 ‘스왓(SWOT) 발표’가 진행됐다. 스왓은 강점(S), 약점(W), 가능성(O), 위협(T)의 약자로 스왓 발표는 단장이 연구단에 대한 자기성찰 결과를 발표하고 평가위원들과 토론하는 자리다. 개선점과 지적, 조언이 이어졌다. 이후 평가위원회는 열띤 토의를 거쳐 무기명 투표를 통해 등급을 제안한다. 절반 이상 표를 받은 등급으로 최종 결정된다.
평가위원회의 평가 결과는 이후 IBS 연구단선정평가위원회(SEC)로 넘어간다. SEC 위원장은 공정성 보장을 위해 반드시 외국인 석학이 맡는다. SEC는 무기명 투표 등 종합심의를 거쳐 등급 결과를 확정해 발표한다. 결과를 보고받은 IBS 원장은 등급에 따라 연구단을 조정한다.
평가 후 종료 수순을 밟는 연구단도 있다. 예클레 명예소장은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는 연구단이 문을 닫는 경우는 거의 없어 IBS 평가가 더 엄격하다”고 말했다. 노도영 IBS 원장은 “평가위원은 질문을 하며 연구단이 어떻게 답하는지 유심히 듣는다. 이들이 앞으로 혁신적인 과학지식을 발견할 수 있는지 평가하며 상호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채린 동아사이언스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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