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재명 여야대표 회담 생중계 논란… “민감 현안 거론-합의 가능하겠나”
野 “韓 정치쇼에 말려들면 안돼”
여야 대표 회담 생중계 전례 없어
《한동훈-이재명 회담 생중계 셈법
국내 정치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던 ‘여야 대표 회담 생중계’를 둘러싸고 여야 간 복잡한 셈법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제안을 먼저 내놓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측은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의제와 형식 모두에서 주도권 잡기를 시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측은 “생중계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TV토론이 될 것”이라며 생중계 시 오히려 실질적 협상이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대표의 코로나19 확진으로 25일로 예정됐던 회담이 연기되면서 이번 주 양측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회담이 이 대표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연기된 가운데, 회담 생중계 여부를 두고 여야의 물밑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먼저 이를 제안한 한 대표 측은 25일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 생중계를 계속해서 요구하겠다”고 했고, 이에 대해 이 대표 측은 “수용 못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결국 정치쇼를 하자는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 정치권에선 “생중계 시 양 진영의 대응 및 전략이 고스란히 외부로 노출되기 때문에 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신중론과 함께 “방식 때문에 회담 자체가 어그러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① 쟁점: 與 “투명한 공개” 野 “협상 어려워져”
여당이 생중계 회담을 요구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투명성’ 확보다. 한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금융투자세 폐지 등 민생 이슈와 관련해 양당 수장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여당은 지난해 6월 이 대표가 당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에게 “국회 로텐더홀에서 의자 하나, 책상 하나 놓고 만인이 보는 가운데에서 대화하자”고 제안했던 전례를 이번 생중계 회담 요구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반면 야당은 “생중계 시 회담이 아닌 토론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부정적 입장이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대선후보 간 TV 토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생중계 형식으로 협상을 하면 무슨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여야 대표 간 합의를 통한 이견 해소보다는 양 지지층 입맛에 맞춘 강성 발언이 경쟁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중계에선 김건희 여사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거론하기 힘들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② 속내: 與 “이면 합의 차단” 野 “韓에 왜 맞춰주나”
속내를 보면 여야 간 시각차는 더욱 분명하다. 여당은 생중계 회담을 해야 이면 합의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생중계를 해야 이 대표가 회담장 밖에서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올해 4월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 앞서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약 4500자 분량의 입장문을 15분간 읽어내려 간 점도 우려하고 있다. 여당은 민주당이 이번 여야 대표 회담을 영수회담을 끌어내기 위한 명분 차원에서 일종의 요식행위처럼 끝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생중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한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 제3자 추천안을 먼저 제안해 놓고도 당내 설득이 어려워지자 생중계를 제안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이 특검법에 대해 여전히 완강한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친윤(친윤석열)계의 집단 반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협상 재량권이 적은 한 대표가 의도적으로 생중계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 등 이면 합의 논란에 대한 부담감을 덜기 위해 생중계라는 잔머리를 쓰는 것”이라며 “TV로 쇼를 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한 대표가 실질적인 결과를 내는 협상보다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③ 여야 회담 생중계 전례는 없어
아직까지 여야 대표의 회담을 생중계한 전례는 없다. 2013년 9월 당시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의 3자 회담을 생중계로 하자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당시 김 대표 측은 “국정 전반의 문제와 현재의 문제점 등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화에 임하고자 한다”고 했지만 청와대는 “회담 내용을 조율 없이 제한 없이 다 공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 전 대표는 “필요한 얘기는 비공개로 마음껏 하되, 공개할 내용은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게 우리 정치권 관례였다”고 설명했다.
17대 총선 직후인 2004년 5월 열린우리당 의장 신분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회동했던 정동영 의원은 “실질적인 대화와 정치의 회복이 중요한 것이지 생중계는 본질이 아니다”라며 “당시 여야 대표 비서실장 간 사전 회동을 통해 의제를 조율을 충분히 한 뒤 회동을 했기에 부패 정치 절연 등을 담은 ‘새정치 협약’ 성과가 있을 수 있었다”고 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회담에서는 서로 양보할 마지노선을 정해서 진짜 못 할 얘기도 하고 그래야 한다”고 했다.
반면 한 대표 측은 “영국 국회에서 여당 대표인 총리가 국회에 나오면 야당 대표와 1 대 1 토론을 하고, 그 모습이 TV에도 생중계된다”면서 여야 대표 회담의 생중계가 이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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