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응급실 마비에, 문밖 밀려나는 요양병원 환자들

김소영 기자 2024. 8.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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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에 기저질환 악화 고위험군… 하루 수십명 실려와 하염없이 대기
‘피할 수 있었던 죽음’ 늘어날 우려… 정부, 대책 없이 “환자 더 받으라”
간호사 등 노조 파업 찬성 91% 가결
25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고령의 환자가 이동식 침대에 실려 들어가고 있다. 최근 의료진 부족으로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자 요양병원에서 실려온 환자들이 응급 우선순위에서 밀려 수용되지 않고 있다. 요양병원 환자들은 건강 상태가 갑작스럽게 악화할 수 있는 고위험군이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요새 매일 요양병원에서 실려 온 환자들이 응급실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이런 일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의료진 부족으로 전국 대학병원 응급실 곳곳에서 운영에 차질이 생기자,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된 고령의 요양병원 환자와 요양병원 관계자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보통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을 인근의 큰 병원 응급실로 옮길 때는 ‘수용이 가능하냐’고 먼저 묻는 게 순서인데, 지금은 전화해도 어차피 병원에서 받아주지 못하니 일단 찾아오고 있다”며 “하루에 많을 때는 수십 명씩 응급실 앞에서 기다린다”고 전했다.

요양병원 환자들이 6개월 넘게 이어진 ‘응급실 운영 파행’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고령에 기저질환이 있는 요양병원 환자들은 건강 상태가 갑작스럽게 악화될 수 있는 고위험군이다. 응급 상황에서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국 요양병원은 올 2월 기준 1373개, 입원 환자는 약 38만8000명(2022년 기준)에 이른다.

의료 현장에선 장기간 의료공백으로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의 ‘피할 수 있었던 죽음’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경남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지역 내 요양병원 환자 중에 응급 상황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돌아가신 분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며 “이런 분들은 통계에선 ‘의료공백 영향으로 사망했다’고 집계되지 않지만 현장에선 다들 의료공백의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요양병원 환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당장 응급실 의료진을 늘릴 마땅한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응급실에서 거부당한 요양병원 환자들이 숨질 수 있어 정부가 최근 대학병원 경영진에 요양병원 환자들을 적극 수용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응급실뿐 아니라 배후 진료과까지 병원마다 수용 능력이 반 토막 났는데 대책은 내놓지 않고 환자만 더 받으라고 한다”고 했다.

한편 간호사, 의료기사 등이 29일 오전 7시부터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의료공백이 더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19∼23일 국립중앙의료원, 강동경희대병원 등 61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률 91%로 가결됐다고 24일 밝혔다. 정부는 25일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열고 “파업 시 응급 환자의 차질 없는 진료를 위해 권역·지역응급센터 등의 24시간 비상 진료 체계를 유지하고, 공공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상 진료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응급실 곳곳 “요양병원 환자 못받아”… 정부는 “일시적 제한” 반복

[의료공백 6개월]
고령 기저질환 악화에도 문밖 밀려나
요양병원 환자 위급 상황 잦지만… 응급실 “기존 내원 환자 위주로 수용”
‘막을 수 있었던 사망’ 늘어날 수도… 정부는 “응급실 408곳중 파행 5곳뿐”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부산 지역 요양병원에 모신 김모 씨(62)는 최근 아버지 상태가 악화돼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옮길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요양병원과 가까운 한 대학병원에선 전문의가 없어 거부했고 결국 2차 병원까지 수소문하다 경남의 한 대형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김 씨는 “가까스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며 “요양병원이 대처하지 못하는 응급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데 병원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 “응급실은 기존 환자들만 수용”

2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입구에서 휠체어를 탄 고령의 환자가 한 시간 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요양병원에도 상주 의사가 근무하지만 모든 진료과 전문의들이 근무하는 것은 아니다. 야간에 근무하는 의사는 대부분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GP)들이다. 이 때문에 응급 상황에선 인근 병원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의료공백 사태로 응급실 운영이 원활하지 않아 ‘표류’하거나 결국 다시 요양병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전남 지역의 한 암 환자 전문 요양병원장은 “우리 병원은 암 환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부작용이 아니라 다른 질환이 발생하면 진단 장비나 의료진이 부족하다”며 “평소 인근 대형병원들이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응급환자들을 받아줬는데 현재는 수용 기준이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고 전했다.

고령 환자들에겐 낙상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골반 골절’을 치료하는 지방 병원은 많지 않다. 배변 장애가 장폐색으로 이어지거나, 전립샘 등 비뇨기질환을 앓다가 응급실을 찾을 경우 협력 진료가 여의치 않아 응급실에서 거부당하기도 한다. 일반인에겐 평범한 질환이거나 한동안 버틸 수 있는 상황도 고령 환자에겐 혈압 등 징후를 급격히 악화시켜 ‘응급’ 상황으로 바뀌는 사례가 흔하다. 호남권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의는 “요양병원 환자들은 한 곳만 나쁜 게 아니라 여러 진료과와의 협력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가령 콩팥과 폐를 다 봐야 하는 상황에서 한 진료과라도 의료진이 없으면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공백으로 기존 내원 및 입원 환자 위주로 응급환자를 받는 대형병원도 적지 않다. 25일 부산대병원은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을 통해 ‘감염내과, 순환기내과, 혈액종양내과, 신장내과, 신경외과 등의 진료 인력 부족으로 기존 내원 환자만 진료 가능하다’고 공지했다. 모두 심혈관질환, 암 등 고령 환자의 발생 빈도가 높은 질환을 다루는 진료과들이다. 한양대병원도 이날 ‘기존 환자 외엔 전원(轉院)이 불가능하고, 심장내과 인력 부재로 관상동맥조영술 환자 수용 불가’라고 밝혔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요양병원에 오래 있던 분들은 원래 다니던 병원이 없는 경우가 많아 더 전원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드러나지 않은 요양병원 ‘초과 사망’ 많을 것”

현장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초기처럼 요양병원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숨겨진 ‘초과 사망’이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초과 사망은 재난, 감염병, 이상 기후 등의 영향으로 일정 기간 동안 통상적인 수준보다 숨지는 사람이 많은 것을 뜻한다. ‘예방이나 회피 가능했던 사망’이라는 의미로 현재와 같은 의료공백이 아니었다면 ‘숨지지 않았을 환자’라는 의미다.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한 흉부외과 교수는 “예전엔 요양병원에서 위급해지면 대형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고 수년씩 생명을 연장하곤 했다. 지금은 그런 시도조차 못 하는 고령 환자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다음 달 추석 연휴까지 겹치면서 응급실 운영은 더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통상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내원 환자는 평상시의 2배 정도다. 이 회장은 “위기 상황에서는 항상 제일 취약한 사람부터 타격을 입는데 이번 의료공백 사태에서 요양병원 환자들이 겪는 일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부는 응급의료 붕괴 위험에도 여전히 “일시적 진료 제한일 뿐 정상화 과정에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일 응급실 운영 관련 브리핑에서 “전국 408곳 중 파행을 빚은 곳은 1.2%에 불과한 5곳이고, 병상 축소도 3%에 불과하다”며 응급실 대란 우려에 선을 그었다. 경기 남부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부는 숫자로만 응급실 위기가 없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했다.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때 진료비 부담을 50∼60%에서 90%로 올리는 등의 응급실 대책을 두고도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이 본인 증상만으로 경증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중증도 판단을 환자에게 맡길 경우 치료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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