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이 폭염보다 뜨거운 ‘정치 가을’이 다가온다

강경희 기자 2024. 8. 2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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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조장, 가짜 뉴스 남발하며
강력한 팬덤 형성한
트럼프 운명 가를 美 대선
비명계 쳐내고 민주당 장악한
이재명의 운명 첫 심판을 할
올가을 1심 선고
한미 트럼피즘의 주목되는 앞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럴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 연합뉴스

지난 두 달간 미국 정치는 급등락을 거듭하는 증시보다 더 요동치면서 스릴 넘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4년 만의 TV토론에서 바이든 참패와 트럼프 압승(6월 27일)→피습당해 피 흘리면서도 주먹 불끈 쥔 트럼프(7월 13일)→‘트럼프의 귀환’ 선언한 공화당 전당대회(7월 15~18일)→사흘 뒤 바이든의 대선 후보직 사퇴(7월 21일)→'해리스 대관식’ 치른 민주당 전당대회(8월 19~22일)가 급박하게 이어졌다. 이제 확정된 ‘트럼프 대 해리스’ 대결이 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까지 두 달여간 펼쳐진다.

지난주에 끝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는 스타 총출동의 ‘신년 버라이어티 쇼’ 같았다. 첫날 무대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올랐다. 고령에 실수 연발로 지지율이 낮았던 그 바이든 맞나 싶게 “생큐, 조”를 외치는 거대한 함성에 묻혀 연설을 시작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둘째 날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셋째 날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등장해 해리스 지지를 이어갔다. 마지막 날에 해리스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이 경쟁자인 공화당 전당대회의 트럼프 후보 수락 연설보다 시청자 수가 3.1% 많았다. 일단 전당대회 흥행에는 성공했다.

앞서 한 달 전 공화당 전당대회는 트럼프가 압도적 지지율로 후보가 됐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미국 보수를 상징하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비롯해 딕 체니 전 부통령, 댄 퀘일 전 부통령,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이 참석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은 역대 최장인 93분이나 됐다. 트럼프를 위한,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의 전당대회였다

이 ‘트럼프 단독 콘서트’에 맞서 ‘민주당 총출동쇼’가 벌어진 건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적인 ‘공화당 대 민주당’의 양당 구도이지만 내용은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로 치러진 2020년 대선의 재판이다. 트럼프에게 밀리자 바이든이 현역 대통령으로는 56년 만에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인기 없는 부통령이었던 해리스가 대선 후보로 지명되자 민주당 출신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인이 똘똘 뭉쳐 해리스를 띄우고 있다.

그만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귀환’이 주는 의미는 심상치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정치 이단아다. 내 편과 네 편을 갈라 진영을 구축하고 사법부와 선거 제도, 주류 매체를 공격해왔다. 임기 4년 동안 2만5000개 넘는 트윗 메시지를 날리며 대중적 지지를 모았다. 거짓말과 가짜 뉴스도 남발해왔다. 2020년 대선 패배에도 “미국 국민에 대한 사기”라며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2021년 1월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해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이를 배후 조정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 기소됐고, 주렁주렁 사법 리스크의 쇠사슬을 온 몸에 두른 채 대통령 재선에 도전한다.

8년 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세계의 정치학자들이 바빠졌다.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트럼프 때문에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썼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에서 두 학자는 “규범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이다. 규범이 무너질 때 용인 가능한 정치 행동 범위는 넓어지고 민주주의를 파멸로 몰아갈 주장과 행동이 시작된다”고 트럼프 현상을 분석했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자 후속 저서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고, 민주주의가 다시 균형을 회복했다고 결론을 내리고픈 마음이 든다”고 안도했는데 오는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두 학자가 다시 바빠질 수도 있다. 그만큼 트럼피즘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위기론은 세계적 화두가 됐다.

갈등과 분열의 정치사는 단연 우리가 앞섰는데 지금 한국의 정치 시계가 미국과 비슷한 일정으로 굴러간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와 비슷한 시기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블루페’(블루 페스티벌)라고 부르면서 록페스티벌 같은 축제로 치렀다. 이재명 대표의 포토카드나 민주당 굿즈도 팔아 아이돌 콘서트 같기도 했다. 미국 민주당과 당 상징색도 파란색으로 같아서 비슷해 보이는데 전당대회 성격은 ‘트럼프 독주’로 보수가 갈라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와 비슷하다. 전통의 민주당에서 비명계를 잘라내고 친명계로 당을 장악해 대표직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려고 정치와 당과 지지자를 도구로 사용하는 한국판 트럼피즘이다. 우리 상황이 더 심각한 건 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더 남았는데 거대 야당이 탄핵을 노래 부르며 대통령을 흔들고 사사건건 국정을 훼방 놓는데만 주력해 되는 게 없는 나라가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미국 대선이 치러지고, 이재명 대표 재판 4개 중 하나에 1심 선고가 내려질 올 가을은 한여름 폭염보다 더 뜨거울 정치의 계절이다. 무더위를 참고 버티면 청량한 가을이 오는 계절의 순리처럼, 우리 정치에 상식이 회복되는 첫 단추가 채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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