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핵군축 깨진 틈 노리는 북한 [안호영의 실사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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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국제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러시아, 그리고 중국에 대하여 추진하고 있는 핵 군축 노력,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토로하면서, 두 나라가 핵무기 확산을 고집할 경우에는 미국도 이에 대응하여 배치된 핵무기 숫자를 늘려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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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제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0년간 현장을 지킨 외교전략가의 '실사구시' 시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레이건-고르비 합의' 뒤엎은 핵 확산
러·중 맞서, 미국도 핵탄두 추가 배치
러시아 업은 北 동향, 예의 주시해야
현직 외교관 시절에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미국 외교관들과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 중 군축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은 특별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그 이유는 군축이 깊은 전문적 식견이 필요하고, 90년대 이후 괄목할 성과를 이룬 분야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요즈음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성과에 역행하여 배치된 핵무기 숫자를 더 늘려야만 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축 노력에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0월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탈퇴를 시사한 때였다. 탈퇴 이유는 러시아가 협정을 위반하고 있고, 핵무기를 비약적으로 늘려 온 중국이 협정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편, 트럼프는 INF 이외에도 많은 다자 협정에서 탈퇴 결정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INF 탈퇴의 심각성을 그만큼 덜 느꼈다.
그런데, 다자 협력과 핵 군축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핵확산에 대한 우려와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도 배치된 핵무기를 늘려야만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러시아는 중거리 핵무기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바다 밑에서 장기간 잠행할 수 있는 핵 추진 핵 어뢰, 우주에서 인공위성을 공격하는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우려된다. 2022년 2월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그리고 나토 동맹국들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다.
중국이 핵무기 생산·배치를 가속화하고 있어, 미국은 냉전시대에 소련이라는 하나의 핵 맞상대와 대립하던 상황에서 이제는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개의 핵 맞상대(Twin Peers)와 대립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30년에 걸친 국제사회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더욱 집요하게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고, 이란의 핵 개발도 현재 진행형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군축 특보인 프레네 베디는 올해 6월 미국 군축 협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미국이 러시아, 그리고 중국에 대하여 추진하고 있는 핵 군축 노력,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토로하면서, 두 나라가 핵무기 확산을 고집할 경우에는 미국도 이에 대응하여 배치된 핵무기 숫자를 늘려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공화당 측도 마찬가지이다. 트럼프 캠프에 정책 제안을 해 온 헤리티지재단은 최근 미국이 2030년까지 80개의 핵탄두를 추가로 생산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내놓았다.
"핵 전쟁에는 승자가 있을 수 없다. 핵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1985년 제네바에서 만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성명에 포함된 유명한 문구이다. 이런 인식을 기초로 핵 군축이 꾸준히 이루어져 한때 수만 개에 달하던 미국과 러시아의 핵탄두가 현재 배치 기준 3,000여 개 수준으로 감축되었다.
이는 미국, 러시아 양국을 넘어서 국제사회 전체가 평가하고 축하해야 할 큰 공헌이었다. 반대로 이러한 성과의 역행은 핵 전쟁 위협과 국제사회 긴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동향에 편승한 북한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 한반도 안보 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미국, 러시아, 중국의 핵 무기 경쟁이 더 이상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할 문제인 이유이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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