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상훈]한국어 교가에 손뼉 쳐준 스포츠맨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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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 우승으로 막을 내린 제106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그라운드에서 얼싸안으며 환호의 순간을 즐긴 것도 잠시.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홈플레이트에 정렬해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불렀다.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를 두고도 일본에서는 "저런 학교를 제명해야 한다"는 글이, 한국에서는 "저런 혐한을 내버려둬야 하냐"는 글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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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 우승으로 막을 내린 제106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그라운드에서 얼싸안으며 환호의 순간을 즐긴 것도 잠시.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홈플레이트에 정렬해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불렀다. 그 순간, 상대 팀 간토다이이치고교 1루 응원석에서는 한국어 교가 박자를 맞추는 ‘손 박자’가 울려 퍼졌다. 상대 팀 응원단은 왜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에 맞춰 손뼉을 쳤을까.
승리한 상대에 경의 보내는 손 박자
8강전이 열린 19일 한신 고시엔 구장. 시마네현 대표 다이샤고교와 가고시마현 대표 가미무라가쿠엔고교가 맞붙었다. 다이샤고는 교토국제고가 우승기를 거머쥐기 전까지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팀이었다. ‘세기의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를 배출한 와세다실업고 등 야구 명문고를 줄줄이 격파하고 준준결승까지 올랐다.
93년 만의 8강 진출에 재학생, 동창, 지역 주민 등 수천 명이 다이샤고를 응원하러 고시엔 구장에 몰렸다. 구장이 떠나갈 듯한 이 학교의 매머드급 응원전은 올해 고시엔 최고 명물이었다.
결과는 2-8 다이샤고 패. 경기가 끝나고 상대 팀 교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이샤고 응원단이 상대 교가에 맞춰 손 박자를 쳐줬다. 상대 팀 감독은 “손뼉 소리를 들었을 때 다이샤 몫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느꼈다”며 승리를 다짐했다.
가미무라가쿠엔고는 21일 준결승전에서 간토다이이치고교에 1-2로 역전패했다. 그러자 이번엔 가미무라가쿠엔고 응원단에서 손뼉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승리한 간토다이이치고 교가에 맞춰 손 박자를 쳐 준 것이다. 막대풍선까지 치면서 상대 팀 교가에 보내는 박자 소리에 경기장이 울릴 정도였다. 이틀 뒤, 결승에서 이긴 교토국제고가 마지막 주인공으로 간토다이이치고 응원단의 손 박자를 받았다. 교가 제창 후 자신들을 응원해 준 3루 응원단에 달려와 인사한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곧바로 뒤로 돌았다. 교가에 박자를 맞춰준 1루 측 상대 팀 응원단을 향해 모자를 벗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인터넷 악플러는 이해 못할 스포츠정신
한일 관계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온라인에는 온갖 비방과 악성 댓글이 쏟아진다.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를 두고도 일본에서는 “저런 학교를 제명해야 한다”는 글이, 한국에서는 “저런 혐한을 내버려둬야 하냐”는 글이 달렸다. 이럴 때 팀은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교토국제고 안에서도 교가를 바꾸자는 제안이 많다고 한다. 이달 중순 한국에서는 광복절 프로야구 경기에 일본인 선수를 내보내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비방과 논란은 야구장 밖 얘기였다. 그라운드 안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시커멓게 그을린 선수들의 굵은 땀방울, 정정당당한 승부, 승리 팀에 경의를 보내고 상대 팀을 존중하는 스포츠 정신만 있었다. 8강전에서 시작된 상대 팀 교가를 향한 손 박자는 토너먼트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선 교토국제고에까지 전해졌다. 인터넷에서 상대를 공격하느라 손가락만 바쁜 ‘키보드 워리어’는 알지 못할 세계다.
경기가 끝난 뒤 한국어 교가 논란 질문에 교토국제고 주장 후지모토 하루키는 “(비난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지지 않고 우리를 응원해 주는 분들을 위해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기 후 상대 팀 응원석에서 터져 나오는 격려의 박수를 기자는 직접 들었다. 감동적인 스포츠맨십이었다.
―고시엔 구장에서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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