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국 세우려 중남미 4국 침략한 워커의 폭주, 36세에 총살로 끝[권오상의 전쟁으로 읽는 경제]
의대 졸업한 워커, 29세때 침공 시작… 일제 만주국 같은 괴뢰국 건설 노려
멕시코 영토서 수도 선포후 美 귀국… 니카라과선 스스로 대통령 자리 올라
코스타리카 침략했다가 격퇴 당하고… 1860년 온두라스서 붙잡혀 처형당해
1854년 니카라과는 보수당과 자유당 사이의 내전에 휩싸였다. 자유당은 워커의 부대를 용병으로 불러들였다. 1855년 10월 워커의 무리는 보수당의 중심 도시인 그라나다를 점령했다. 워커는 1856년 7월 스스로 니카라과의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후 워커의 첫 번째 정책은 노예제의 재합법화였다.
두 번의 전쟁을 통해 워커는 배운 게 있었다. 육로로 연결된 땅을 지키는 건 쉽지 않았다. 워커는 영국의 전술을 본받으려 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영국이 다른 나라의 영토 전체를 점령하는 건 무리였다. 영국은 섬을 빼앗아 공격과 지배의 발판으로 삼았다. 일례로 1839년 영국은 마약의 자유로운 수출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청을 침공했다. 1842년 전쟁이 끝났을 때 영국은 홍콩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영국은 1885년부터 전남 여수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거문도를 2년간 무단 점령하기도 했다.
필리버스터들의 국가 선포는 영국에도 영감이 되었다. 이미 잉글랜드의 상인 귀족들은 왕의 실권을 없애 명목상의 상징으로 만들고 국가의 화폐를 독점 발행하는 발권력을 확보해 국가를 사유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단적으로 1714년에 영국 왕이 된 조지 1세는 독일에서 수입해 온 사람으로서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일례로, ‘검은 해안’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잔지바르는 아프리카의 동부 해안 지역이었다. 1890년 영국은 독일과 협정을 맺어 잔지바르의 두 섬인 웅구자와 펨바를 자신의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1896년 두 섬의 새로운 술탄이 마음에 들지 않자 영국은 전쟁을 선포했다. 다섯 척으로 구성된 영국 함대의 일방적인 포격 끝에 전쟁은 38분 만에 끝났다. 이후 영국은 웅구자와 펨바를 포괄하는 괴뢰국을 세웠다.
영국에 투기를 가르쳐 준 네덜란드도 거꾸로 배운 게 생겼다. 2차 대전 후 여전히 식민지를 유지하고 싶었던 네덜란드는 십수 개의 국가를 인도네시아에 세웠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가 말한 이래로 “나누고 지배하라”는 서구의 지배 원리였다. 다수의 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는 각각의 국가를 세우기에 좋았다. 가령 1948년에 생긴 마두라국은 자바섬 동쪽의 마두라섬에 위치했다. 네덜란드의 기대가 무색하게 마두라국은 1950년 인도네시아와 합병했다.
이런 식의 국가 설립은 이후 내내 계속됐다. 1937년 탈퇴한 나라도 포함해 국제연맹의 회원국은 모두 58개였다. 2024년 국제연합(유엔)의 회원국은 193개다. 그중 1978년에 독립한 태평양의 투발루는 영토는 서울 강동구만 하지만 인구는 상일2동보다 적다. 또 1971년에 독립한 페르시아만의 바레인은 넓이는 부산, 인구는 광주 수준이다. 이 두 섬나라는 모두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다.
21세기 들어 새로운 시도가 나타났다. 2009년 스탠퍼드대의 폴 로머는 강연쇼 테드에 나와 일명 ‘헌장 도시’를 주장했다. 헌장 도시란 한 나라가 전권을 가지고 경제를 개발하는 다른 나라의 도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로머는 전자를 보증국, 후자를 주최국이라 불렀다. 즉 헌장 도시에서는 주최국의 법률이 아무런 효력을 지니지 못한다. 한 차례 창업 경험도 있는 로머는 헌장 도시를 스타트업에 비유했다.
시장지상주의 경제학의 본산인 시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로머는 이미 한 번 자신의 생각을 시험해 봤다. 2008년 로머는 초청 없이 마다가스카르에 찾아가 대통령 마르크 라발로마나나를 만났다. 로머에게 설득된 라발로마나나는 같은 해 11월 대우로지스틱스와 덜컥 계약을 맺었다. 마다가스카르 전체 농지의 절반인 1만3000㎢의 농지를 99년간 빌려주는 대가로 마다가스카르가 받을 돈은 약 530억 원이 전부였다. 이게 문제가 되어 2009년 라발로마나나는 중도 퇴임하고 망명했다.
헌장 도시에 열광한 건 두 부류였다. 하나는 무정부 자본주의자였다. 무정부 자본주의란 국가를 주식회사로, 헌법을 약관으로, 경찰은 사설 경비업체로, 국민은 유료 사용자로 재정의하려는 관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실리콘밸리였다. 일례로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은 1000개의 국가를 꿈꿨다. 틸에게 헌장 도시 같은 유사 국가의 증가는 곧 자유의 증대였다. 틸은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로머는 2011년 새로운 고객을 찾았다. 온두라스의 대통령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는 프로스페라라는 헌장 도시를 승인했다. 프로스페라의 투자자에는 틸과 마크 앤드리슨 등이 있었다. 2022년 온두라스의회는 만장일치로 프로스페라의 폐지를 결정했다. 프로스페라의 투자자들은 투자자 국가 분쟁 해결 제도를 통해 온두라스 정부에 약 15조 원의 배상을 청구 중이다. 헌장 도시의 주최국은 언제나 저개발국이다. 로머는 헌장 도시가 식민주의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프로스페라의 위치는 어딜까? 프로스페라는 온두라스의 로아탄섬에 있다. 로아탄에 가서 독립국을 선포하려던 워커의 세 번째 필리버스터 전쟁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워커를 트루히요에서 붙잡은 영국 해군은 그를 온두라스 정부에 인도했다. 1860년 9월 워커는 곧장 총살되었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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