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죽음의 통로, 비상계단
[더 보다 23회Ⅰ] 죽음의 통로, 비상계단
<부천 호텔 화재 현장>
지난 22일, 경기 부천시 중동
이른 저녁 시간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
소방대원
저희 좀 도와주세요. 옆으로 최대한 붙일게요.
객실의 불길은 3시간 만에 잡혔지만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습니다.
목격자
위에서도 (유독가스가) 막 나오네. 그러니까요 진짜 냄새가 심하네요.
불이 꺼진 뒤에도 창문 틈으로 유독가스가 새어나옵니다.
<부천 호텔 화재 합동 감식>
지난 23일, 경기 부천시 중동
사망자 일부는 계단과 복도에서
유독가스를 마셔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중앙소방학교>
지난 8일, 충남 공주시
아파트 주방에서 난 불.
맹렬한 기세로 방 안을 한순간에 집어삼킵니다.
정윤철/중앙소방학교 화재학 교수
초기 소화가 어렵기 때문에 일단 탈출 하는 게
아파트 구조를 그대로 옮겨놓은 화재 실험.
천장이 막혀있기 때문에 (화염과 연기가) 계속 올라가지 못하고 옆쪽으로 쭉 퍼져나가게 되는 거죠
유일한 탈출구인 비상계단은 생명을 살리는 통로가 될 수 있을까요?
<방학동 아파트 화재>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방학동
지난해 성탄절 새벽 서울 방학동의 한 아파트에서 난 불.
새벽 5시 무렵 시작된 진화 작업은 날이 밝은 뒤에도 계속됐습니다.
3층에서 시작된 불. 4층에 살던 30대 가장은 아이를 안고 뛰어내려 생명을 잃었습니다.
가족을 대피시키고 뒤늦게 탈출한 10층 주민은 11층 계단에서,
20층에 살던 70대 여성은 계단실 앞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장정애/서울 도봉소방서 재난관리과장
4층 분들이 아마 이제 대피하려고 밖으로 이렇게 뛰어내리셨는데 그게 이제 추락하시면서
3층에서 난 불이 불길이 미치지 않은 10층과 20층 주민의 목숨까지 앗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화재로 세상을 떠난 20층 주민의 아들 유수열 씨.
화재 이후 직접 촬영한 영상에는 화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한 층에 3세대가 있는 독특한 구조.
부모님 댁을 제외한 나머지 두 세대가 승강기를 이용하려면
매번 계단실 방화문을 열고 복도로 나와야 합니다.
이 때문에 방화문은 평상시 열려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수열/방학동 아파트 화재 유가족
방화문이 그 사고 당시에는 그냥 완전히 오픈돼 있었습니다. 고임목이 놓여져 있었고요.
화재 이후 대피 방송이 적절했느냐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화재 발생 10분 뒤 첫 대피 방송을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이후 13분 동안 모두 3차례 대피 방송을 했습니다.
계단실에는 이미 유독가스가 가득 들어찬 뒤였습니다.
유수열/방학동 아파트 화재 유가족
‘불이 났으니 빨리 대피해라‘라는 방송만 계속 몇 분 간격으로 계속 반복해서 방송에 나왔고. 연기가 확 나가자마자 몇 발짝 갔는데 연기가 갑자기 확 들이차더라. 그리고 이후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눈 떠보니 병원이라고 하셨어요.
다른 주민들이 기억하는 당시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파트 주민
딱 일어나서 보니까 대피하시라고 막 저 불 났다고 막 그러더라고. 현관문 여는 순간 새카만 게 확 들어오니까. 우리 아들이랑 베란다 가서 밑에 물수건으로 꽉 다 막고
화재 상황에 맞는 보다 유연하고 구체적인 대피 방송의 필요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공하성/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계단에 유독가스가 가득 찼기 때문에 대피를 하지 말고 세대에 머물러서 구조를 기다리라든지. 저층에서 불이 났기 때문에 계단을 통해서 1층으로 가지 말고 옥상으로 대피하라고 세부적으로 잘 체크해서 안내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파트 화재 재현 실험>
지난 1월 18일, 부산시 남구
소방관들이 분주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실제 건물에 불을 지릅니다.
현관 방화문을 열거나 닫았을 때 화염과 연기의 확산을 관찰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유독가스가 불과 15초 만에 거실 천장까지 가득 찹니다.
불기둥은 점점 거세게 치솟아 오르고 시커먼 유독가스는 현관문 밖으로 빠르게 확산됩니다.
불길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방화문을 닫지 않은 상태에서 화염과 유독가스는 불과 2분 10여초 만에 4층까지 확산됐습니다.
방화문 기능을 하는 현관문을 닫으면 어떻게 될까?
문틈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유독가스.
현관문을 열어놨을 때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제용기/부산소방재난본부 화재조사계장
현관문을 닫고 만약에 대피를 하면 연기가 위로 상층으로 거의 올라가지 않습니다. 문을 열어놓고 대피를 하게 되면 조금 전에 좌측에 있는 이 집처럼 열과 연기가 그대로 계단이라든지 외부로 분출한다는 거죠.
3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방학동 아파트 화재.
불이 시작된 3층 세대 거주자는 불이 나자 유독가스를 빼내기 위해
현관문을 열어둔 채 대피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1차 방화문인 현관문과 세대 밖 계단실 방화문까지 모두 열려 있다 보니
계단실로 연기가 확산돼 인명피해를 키웠습니다.
<부천 호텔 화재 현장>
지난 23일, 경기 부천시 중동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천 호텔 화재.
불길이 건물 전체로 번지지 않았는데도 왜 피해가 커졌을까?
조선호/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
810호 발화실 문을 닫고 나왔으면 괜찮은데 발화실 문을 열고 나왔고 연기가 급격하게 확산이 됐습니다.
공하성/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출입문을 열어놓고 대피를 하는 경우 그리고 계단과 복도 사이에 방화문을 평상시에 열어놓아서 세대 내에 불이 났을 때 그 세대 내에 화염과 연기가 복도를 통해서 계단으로 급격하게 유입이 되기 때문에 이미 계단 내에 연기가 가득 차 있는 상태인 거죠.
<수원 아파트 화재>
지난해 3월 6일, 수원 화서동
수원의 한 아파트 1층 세대 주방에서 난 불.
10층 주민이 15층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아파트 주민
비상계단을 이용하시라고 계속 방송이 나왔어요, 사이렌이 울리면서
불이 시작된 1층 세대 주민이 현관문을 열어놓고 대피해 순식간에 유독가스가 복도로 확산됐습니다.
아파트 주민
연기가 순식간에 차올라가지고 복도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차 가지고
아파트 1층 계단실 입구에는 방화문이 설치돼 있지도 않았습니다.
공하성/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2층에 있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 타잖아요. 걸어서 가요. 그러니까 방화문이 불편하다는 거지 그래서 그것 때문에 예전에 예외 규정을 줬어요. 건축법에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문에 한해서만큼은 방화문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14일, 경기도 고양시>
다른 아파트의 방화문 관리는 어떨까?
소방 전문가와 함께 한 아파트 단지를 둘러봤습니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계단실 방화문.
모두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건축법상 방화문을 열어놔도 문제가 없습니다.
화재 시 온도 상승에 반응해 자동으로 닫히는 방식이면
열어둘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김진수/한국소방기술인협회장
도어클로저라는 건 문을 열었다가 놓으면 저절로 닫히는 게 도어 클로저죠. 여기에 있는 요 납땜 한 (잠금장치가) 떨어지면 (방화문이) 자동적으로 닫히게 돼 있습니다. 화열이 나와서 (잠금장치를) 녹여야만이 비로소 닫히는 방식으로 돼 있는 겁니다.
문제는 연기의 확산 속도가 열기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입니다.
유독가스가 먼저 계단실로 빠져나간 뒤에야 방화문이 뒤늦게 닫히는 겁니다.
김진수/한국소방기술인협회장
집 안에서 불이 나 가지고 여기까지 와서 화염이 (방화문 잠금장치를) 녹이는 상황이 되면 이 계단실은 벌써 상황이 끝나는 것이죠. 이미 연기는 나와서 이 계단을 꽉 채울 것이고
문제를 인식한 소방 당국은 화재 감지기가 연기를 감지하면 자동으로 방화문이 닫히는
자동폐쇄장치를 사용하도록 규정을 바꿨습니다.
김진수/한국소방기술인협회장
지금 설치하는 전자식들은 자동 폐쇄 장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마는 그것들은 저절로 다 닫힙니다. 전자식이니까. 화재를 감지하면. 그런데 2010년도 이전의 건물들은 그게 없거든요. 그래서 꼭 열이 나와서 (잠금장치를) 녹여야 (방화문이) 닫힐 수가 있습니다.
2010년 이전에 지어진 수백만 채의 아파트 방화문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김진수/한국소방기술인협회장
대단히 중요한 안전 위해 사항이기 때문에 서둘러 개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만 잘 닫혀도 계단의 안전성은 대폭 강화됩니다.
<중앙소방학교>
지난8일, 충남 공주시
아파트 주방에서 불이 난 상황을 가정해 진행한 화재 실험.
정윤철/중앙소방학교 화재학 교수
부력 때문에 (화염과 연기가) 위쪽으로 올라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다 천장이 막혀있죠. 수평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유독가스를 가정한 연기가 계단실을 가득 채웁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10층에서 16층 옥상까지 탈출해야 합니다.
정윤철/중앙소방학교 화재학 교수
연기가 차 있을 때 이렇게 온다는 게 불가능하죠. 유독가스이기 때문에.
공하성/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유독가스가 이게 특징이 한 모금만 마셔도 몸이 경직이 되는 그런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대피 중 계단에서 사상자가 속출하자 소방 당국은
지난해 11월, 대폭 수정된 아파트 화재 피난 요령을 발표했습니다.
집에서 불이 났지만 대피가 가능한 경우 현관문을 닫고 계단을 통해 탈출하고,
대피가 어렵다면 젖은 수건으로 문 틈새를 막고 구조를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집에서 난 불이 내 집까지 번진다면화염과 연기를 확인해 대피할지 결정하고,
불이 번지지 않으면 집 안에서 대기하는 게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소방 당국은 권고합니다.
하지만 화염과 연기가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소방 당국의 지침대로 과연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공하성/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화재가 발생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패닉 현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너무 당황하다 보니까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빠진다는 것이죠.
대한민국 국민의 53%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안전한 대피 방법은 없을까?
송도훈/인천 검단소방서 소방민원팀
대부분 모르세요. 이게 감지기에요.
이렇게 발코니 쪽에 경량식 칸막이로 이렇게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은 거예요.
송도훈/인천 검단소방서 소방민원팀
다들 이렇게 (방화문을) 열어놓으시네. 제대로 고정을 해놓으셨네.
자동 개폐 장치가 있어요. 이렇게 열어놓고 싶으시면은 입주자대표회의를 열어가지고
(방화문 잠금장치를) 교체하자고 하세요
2년 전 입주한 비교적 새 아파트.
송도훈/인천 검단소방서 소방민원팀
열하고 연기를 차단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서는 60분까지는 버틸 수 있는 거예요.
계단을 통한 옥상으로의 대피 경로도 미리 확인해 둬야 합니다.
송도훈/인천 검단소방서 소방민원팀
엘리베이터 기계실이에요. 그래서 문이 닫혀 있어요. 여기까지 올라오시면 내가 대피를 못 해요
가장 높은 층에는 기계실이 있고, 정작 한층 아래에 옥상 출구가 있는 아파트들이 많습니다.
박훈일/아파트 주민
차라리 여기에 옥상은 이곳입니다 라는 사인을 주신다든지.
처음 올라오시는 분들은 절대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고 무조건 위에는 한번 갔다 오실 것 같습니다.
한 해 아파트에서만 2천 8백여 건이 넘는 화재가 발생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맞닥뜨릴 수 있는 화재.
보다 실질적인 피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죽음의 통로로 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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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명 기자 (investigat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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