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과 음악’ 경험은 음악의 총체 “스스로 설득될 수 있는 음악이 목표” [인터뷰]
‘과학 영재’에서 K-클래식 대표 주자로
세종 솔로이스츠 30주년 ‘위드/아웃’ 위촉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3] ‘둥, 둥, 둥, 둥’
바이올린이 작은 북을 두드리듯 음악의 시작을 알린다. 현악기는 마치 현이 아닌 것처럼 예측 가능한 현의 선율을 초월한다. 현과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음들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가듯 진동과 파장으로 서로를 흡수한다. 세종솔로이스츠가 위촉,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는 김택수 작곡가의 ‘네 대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인 ‘위드/아웃(with/out)’. 세계 최정상 악단을 이끌고 있는 네 악장의 비르투오소적 면모가 빚어내는 소리들이 파형을 만들어 매혹적으로 얽힌다. ‘현대 사회의 사회적 거리’를 주제로 삼았다.
이 곡은 ‘세종 솔로이스츠’라는 단체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다. 현악 오케스트라인 세종 솔로이스츠의 30주년을 기념할 곡을 위촉받은 김택수 작곡가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악단의 정체성이었다”며 “세종 솔로이스츠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현악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단원 개개인이 솔리스트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출중한 기량을 갖춘 세종 솔로이스츠는 강효 줄리어드 음대 교수가 8개국 출신 11명의 제자와 함께 1994년 뉴욕에서 만든 현악 오케스트라다. 김택수는 “끈끈한 유대감, 반달형으로 둘러서서 서로를 바라보는 연주 대형, 다정하게 서로를 챙기는 방식이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했다.
‘위드, 아웃’을 위촉받고 그의 부담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연주자들의 무척이나 화려한 이력”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분들은 연주해보면 이 작곡가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곡을 쓸 수 있는지 바로 아시거든요.” 그런 이유로 김택수는 “이번 작업이 작곡가로서 시험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연주엔 세계 유수 악단에서 활약 중인 네 명의 악장이 협연자로 함께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데이비드 챈(51), 뉴욕 필하모닉의 프랭크 황(45), 몬트리올 심포니의 앤드류 완(41), 함부르크 국립 필하모닉의 대니얼 조(31) 등이다. 이들의 교집합은 ‘한국’과 ‘세종솔로이스츠’다. 현악 오케스트라 세종 솔로이스츠에 짧게는 3년, 길게는 14년까지 몸담았다. 이번엔 창립 30주년을 여는 세종 솔로이스츠가 여는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9월 2일까지)을 위해 미국, 캐나다, 독일에서 날아왔다.
김택수는 “솔리스트 중 한 분이 ‘어렵게 들리되 연주하기 어렵지 않게 써달라’고 했다”며 “흥미롭게도 부담이 커지다 보니 나중엔 ‘그냥 하고 싶은 걸 하자, 내가 가진 주제의힉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몇 년 사이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곡가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학창시절엔 ‘과학 영재’였다. 고교 땐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은메달을 땄다. 서울대에선 화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작곡을 공부한 뒤 2011년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택수의 음악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의 총체다.
김택수의 음악 세계에서 ‘한국적 일상’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소재다. 그것을 소재로 삼기 시작한 것은 2012년경이었다. 그는 “일상의 음악화를 좋아하고, 한국의 현대는 음악으로 담을 가치가 큰 작업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민체조’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아이들의 놀이를 음표로 옮긴 ‘국민학교 환상곡’(2013), 한겨울에 들려오는 그리운 소리 ‘찹쌀떡’(2013), 한국의 음주가무를 담아낸 ‘짠!!(Zzan!!)’까지 한국의 풍경이 김택수의 음악에 담겼다. 한국의 일상은 때론 한국적 소리와도 어우러졌다.
그는 “국악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2017년 경이다. 한국의 일상 생활과 그 속의 음악에 담긴 독특한 정서가 전통음악에서 온 것이라는 (제 생각으로는 꽤나 설득력있는) 가설을 세웠다”며 “그 요소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다양한 각도로 음악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국악의 산조에서 빨라지는 패턴을 가져온 ‘빨리빨리(Pali-Pali!!)’는 지난 2021년 미국 버를로우 작곡상(Barlow Prize)을 수상했다. 한국인 최초 수상이다.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담아낸 음악은 현대음악은 어렵다는 편견을 깼다. 그의 음악은 유머러스하고 재기발랄하다. 김택수가 음악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미’다. ‘재미’의 의미는 다양하다. 그는 “사람 사는 다양한 모습을 담다 보면 주제나 소재 자체가 항상 재밌기는 힘든 것 같다”며 “위드/아웃‘의 경우도 고독한 현대사회와 운명 공동체에 대한 고찰 등의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를 다룬다”고 했다. 진중한 주제이자 우리 사회의 현재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소재 자체의 재미(FUN)는 없다.
그는 “그런데 연주자들은 내 곡이 재미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연주자들 스스로 “연습하고 다듬어갔을 때 보답이 주어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만들어 갈수록 무언가 더 발견이 되는 음악도 일종의 ‘재미’를 주는 음악”이라는 생각이다.
“항상 뭔가를 ‘시도’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저에게는 과격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마치 이런 ‘짓’을 해도 되나? 싶은 느낌인데요. 이런 엉뚱함도 재미와 연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전 매력(?) 같은 것도 좋고요. 아, 그리고 아직도 물론 전형적으로 ‘재밌는’ 소재들도 구비해 놓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머물지 않는다. 변화하고 진화하며 커리어를 확장한다. 올해에도 다양한 활동이 예정돼있다. 다음 달엔 샌디에이고 심포니의 공연장 리노베이션 기념으로 작곡한 팡파르 ‘웰컴 홈!!’이 초연되고, 내년 6월엔 그의 스승인 진은숙 작곡가가 큐레이터로 참여하고 LA필하모닉이 주최하는 ‘서울 페스티벌’에서 비올라 협주곡 ‘코오’의 새 버전을 선보인다. 지휘는 한국의 차세대 지휘자 윤한결이 맡았다. 한국에선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서 그의 협주곡을 초연한다.
다양한 활동에서도 음악가로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작곡가로의 소신과 대중성 사이의 줄다리기다.
“궁극적으로 전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한다는 것, 그렇지만 대중성을 위해 작품성을 희생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자각하고 있어요.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 ‘제 스스로가 설득될 수 있는 (만화 ‘미생’ 한 구절)’ 음악을 쓰고 싶습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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