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왜 ‘친일 정책’ 계속하나

김규원 기자 2024. 8. 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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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오랑캐]끝없는 ‘친일 논란’ 부르는 윤석열 정부 정책… 국내·국제 정치적 이유만으론 설명 어려워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2024년 8월16일 한국방송(KBS)의 ‘뉴스라인더블유’에 출연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2024년 8월16일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한국방송(KBS)에 나와 일본의 과거사 사과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다. 마음 없는 사람을 억지로 다그쳐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가”라고 말했다.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 때 식민지 피해 국가가 제국주의 국가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는 궤변이었다. 특히 국가 관계를 인간관계에 비유해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으려면 먼저 일본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황당한 ‘중일마’ 발언 파문

이 발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비판을 쏟아냈고, 언론 매체들도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8월18일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해명한다며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이 관계자는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 수십 차례 걸쳐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다. 그런 사과가 (계속됨으로써 일본 정부에) 피로감이 많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이 아닐까 의심하게 하는 표현이었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충분히 사과했는데도 한국 정부가 계속 사과를 요구한다는 주장은 아베 신조와 같은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하던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김 차장의 발언은)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펴는 모습을 경외하게 만듦으로써 ‘일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 역시 김 차장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으려면 한국이 먼저 잘해서 일본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궤변이었다.

이 친일 발언에 앞서 8월6일 윤석열 대통령은 뉴라이트 성향으로 비판받는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했다. 김 관장은 이틀 뒤인 8월8일 기자회견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오류가 있다. 잘못된 기술에 의해 억울하게 친일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말해 논란을 폭발시켰다. 평소 그가 억울하게 친일로 매도됐다고 거론한 인물은 안익태와 백선엽이었다. 백선엽은 만주에서 조선과 중국의 항일 무장 세력을 토벌하는 만주국의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활동했다. 하등 억울할 것이 없는 사람이다.

2024년 8월14일 독립기념관에서 뉴라이트 성향으로 비판받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관장에 대한 뉴라이트 논란이 벌어지자 언론에선 역사·교육 관련 국가기관에 포진한 뉴라이트 성향 인물들을 조명했다. 대표적 인물은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등이었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뉴라이트들이 이명박 정부 때는 건국절 논란을 일으켰고, 박근혜 정부 때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 하는데, 아마도 윤석열 정부를 마지막 기회로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가 ‘친일 논란’을 일으킨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2023년 3월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방안 제시’, 2023년 8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방치’, 2023년 8월 ‘육군사관학교 안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 2024년 7월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찬성’ 등이 계속돼왔다.

이런 일련의 사건에서 윤석열 정부가 기대했듯 한국 정부가 절반을 채운 물잔의 나머지 절반을 일본 정부가 채운 일은 없었다. 오히려 독도 영유권 주장,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기존의 반역사적 행태를 지속,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윤 정부는 일방적으로 ‘일본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호주의가 보편 원리인 국제 관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이런 일방적인 윤 정부의 ‘친일 정책’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가장 먼저 국제 정치적 이유가 꼽힌다. 점점 심각해지는 미국-중국 간 대립 구도에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에 윤석열 정부가 충실히 따른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뉴라이트가 일본의 극우, 미국의 네오콘과 밀착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8월18일(현지시각) 워싱턴 디시 부근의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실 제공

“윤 정부, 신냉전 앞장선다”

조국혁신당의 김준형 의원(전 국립외교원장)은 이 동맹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을 고립시킬 수 없다. 지구적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보듯 에너지 강국인 러시아조차도 고립시키기 어렵다. 신냉전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데, 윤석열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일본과의 지나친 밀착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 정치적 이유는 그나마 이해할 만하지만, 국내 정치적으로는 거의 자해 행위에 가깝다. 쿠키뉴스와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8월17~19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여부를 물어보니 ‘임명 철회해야 한다’가 68.8%, ‘임명 철회하면 안 된다’가 23.7%로 나왔다. 심지어 국민의힘의 중심지인 대구·경북에서도 56.8%가 ‘임명 철회’에 동의했다.

물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으로 대표되는 ‘중도 보수’를 포기하고, 극우에 가까운 핵심 지지층을 잡고 가려는 ‘집토끼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20~30% 정도로 추정되는 핵심 지지층을 놓치지 않으면 ‘탄핵’과 같은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11월 넷째 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역사상 최저 지지율인 4%를 찍은 다음달인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됐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정치학)는 “4월 총선 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고 나서 오히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 떨어졌다. 그 뒤로 대통령실에서 보수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더 강해진 것 같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조윤선 청와대 전 정무수석,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특별사면한 것도 보수 대결집을 노린 것이다. 친일 정책 논란도 그런 연장선 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국내 정치적 이유만으로는 윤석열 정부의 선을 넘은 ‘친일 정책’을 설명하기 어렵다. 어쩌면 윤 대통령과 주변 인물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 주변 인물 가운데는 국가안보실 김태효 1차장이 가장 두드러진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과 같은 아파트인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살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 차장의 아버지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김경회 검사다.

김 차장은 윤석열 정부 안의 대표적 뉴라이트 성향 인물이며, 신냉전 흐름에 맞춰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대통령실 대외전략비서관으로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해 큰 논란을 일으킨 뒤 사퇴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3월16일 일본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대통령실 제공

김태효 차장이 그린 그림?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대외 관계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관점이 없어 보인다. 동시에 미국·일본에 대한 호감과, 북한·중국·러시아에 대한 혐오감이 드러난다. 그런 감정이 뉴라이트의 생각과 잘 맞 아떨어진다”고 말했다. 김준형 의원은 “윤 대통령은 외교안보나 이념 문제에서 거의 백지상태인데, 김 차장이 그림을 그려주는 것 같다. 개인적 친분도 상당해 보인다. 김 차장이 국정의 다른 분야에도 관여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한-일 관계에서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으로는 독도 영유권 변경, 군사 동맹 체결이 꼽힌다. 남은 임기 중에 윤 대통령이 이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시사 오랑캐’는 이번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수고하신 김규원 선임기자와 열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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