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원전 거인 ‘웨스팅하우스’의 추락

김홍수 논설위원 2024. 8. 2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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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조지 웨스팅하우스는 ‘전기 혁명’ 선두 주자 자리를 놓고 토머스 에디슨과 싸운 경쟁자였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 참전 용사였던 웨스팅하우스는 기차용 공기 브레이크를 발명해 돈을 번 다음, ‘전기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천재 기술자 테슬라를 영입해 교류 전기 시스템을 개발, 직류 전기를 고집한 에디슨과 경쟁했다. 1886년 에디슨을 물리치고 시카고 만국박람회 점등 계약도 따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발전소를 세워 전기 대중화 시대를 연 것도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였다.

▶1957년 웨스팅하우스 전기 회사는 세계 최초로 원자력 발전소를 선보였다. 이후 전 세계 원전의 절반 이상을 건설한 원전 거인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첫 원전, 고리 1호기도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전수로 이뤄졌다. 승승장구하던 웨스팅하우스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위기를 맞는다. 미국 정부가 30년 이상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자 경영난에 빠진다. 2005년 일본 도시바가 54억달러를 주고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다.

▶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일본은 가동 중인 원전 50기를 폐쇄하고, 다른 나라들도 원전 건설 계획을 속속 백지화했다. 원전 사업은 도시바에 7조원 이상 손실을 안겼다. 도시바는 2015년 막대한 부실을 감추려 분식 회계를 하다 들통나 그룹이 공중분해되는 지경으로 내몰린다. 도시바 의료기기 사업은 캐논에, 백색가전은 중국 기업에, 반도체 사업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다국적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모기업 도시바가 손을 들자,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미국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1년 뒤 캐나다의 투자펀드가 46억달러에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다. 4년 뒤인 2022년 웨스팅하우스는 캐나다의 우라늄 채굴 기업 컨소시엄에 78억달러에 재매각됐다. 130년 전통의 원전 원조 기업이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투자펀드의 돈벌이 수단이 된 꼴이다.

▶2009년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할 때, 웨스팅하우스가 특허권 침해 운운하며 막대한 기술료를 요구한 바 있다. 당시 한국은 법정 다툼을 벌이지 않고 웨스팅하우스와 도시바의 설비를 구매해 주는 방법으로 체면을 세워 주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이 독자 개발한 ‘K원전 모델’로 24조원 규모 체코 원전을 수주하자, 웨스팅하우스가 또 ‘기술 침해’를 이유로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원전 거인이 자릿세 뜯는 조폭 같은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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