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회의록 부실 생산, 이대로 좋은가
정치인과 공무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치인은 말로 일을 하고, 공무원은 기록으로 업무를 입증하는 것이다. 공무원은 출퇴근, 출장, 회의, 보고 등 모든 업무에 대해 기록을 남겨야 한다. 공공기록물법 제4조는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임직원은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기록물을 보호·관리할 의무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공무원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두 가지 예측이 가능하다. 업무를 하지 않았거나 잘못한 경우다. 잘못한 경우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비리에 접근했거나 무리하게 업무를 진행할 때이다. 이런 경우 정보공개청구를 해보면 ‘기록이 없다’고 답변한다. 기록은 작성했으나 무단 폐기하는 경우도 있다.
공공기록물법은 기록물 전문요원의 심사와 기록물 평가 심의를 거치지 않고 기록물을 폐기한 사람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정신을 훼손하는 발언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기록관리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지난 16일 국회 청문회에서 “배정심사위 회의 (참고)자료는 파기했고 회의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회의 결과를 회차별로 정리해 회의 결과 보고서로 정리한 자료가 있다”고 했다.
오석환 차관의 발언은 짧지만 너무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회의 자료를 파기했다고 하는데, 어떤 과정에서 그렇게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공공기록물법은 모든 자료는 1년 이상 보존하게 되어 있고, 폐기할 때도 심사와 심의를 거쳐야 한다. 참고자료라고 주장하는 기록물도 구체적인 보존기간과 어떤 과정에서 폐기했는지 밝혀야 한다.
회의록이 없다는 것도 믿기 힘들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서 “배정위는 법정 기구가 아니고 장관의 자문을 위한 임의기구”라 회의록을 생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18조에는 “주요 정책의 심의 또는 의견 조정을 목적으로 차관급 이상의 주요 직위자를 구성원으로 하여 운영하는 회의”는 반드시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의대 증원을 논의한 회의는 여기에 해당한다.
회의록에는 “회의의 명칭, 개최 기관, 일시 및 장소, 참석자 및 배석자 명단, 진행 순서, 상정 안건, 발언 요지, 결정 사항 및 표결 내용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법 규정 이외에도 수많은 정부 회의에 참여해봤지만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곳은 본 적 없다. 회의 결과에 맞게 행정을 집행해야 하는 공무원이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생산하지 않았다면 미리 결론을 내고 개최했다는 의심을 받기 충분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사례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2022년 전국 공무원 민방위복 교체TF 회의도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정보공개청구 회신에 “민방위복 복제 개편회의는 내부 업무협조를 위한 회의로 공공기록물법 관리에 관한 시행령 제18조에 규정한 회의록 작성 의무 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놀랍도록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회의록은 정부 기록 중 핵심적인 요소이다. 공공기록물법 시행령에 회의록, 조사연구검토서, 시청각 기록은 생산원칙부터 생산방법까지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는 후대에 중요한 증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의록이 없다면 정부의 설명 책임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ISO 15489(현용 및 준현용 기록 관리를 위한 국제 표준)는 기록의 4대 속성으로 진본성, 신뢰성, 무결성, 이용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중 신뢰성은 기록의 내용이 업무처리, 활동 혹은 사실을 충분히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과연 의대 증원과 관련한 회의록이 기록의 신뢰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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