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경제수다방]우리 안의 히키코모리
2007년 <88만원 세대>를 준비하면서 꼭 다루고 싶었는데, 못한 얘기가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문제였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다 결국 포기했다. 지금도 한국에 은둔형 외톨이가 몇명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일본은 이 문제를 풀려고 많이 고민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 일본에서는 청년 히키코모리도 나이를 먹어서 ‘8050’이라고 부르는 형태가 되었다. 80대 부모가 50대 자식을 돌보는 현상을 얘기한다. 일본 정부 발표로는 히키코모리가 약 146만명이다. 40세 이전에는 남성이 더 많다가, 40대 이후로는 여성이 약간 더 많다. 성별 차이가 크지는 않다.
서울이나 인천에서 은둔형 외톨이 현황 조사를 하는데, 법적인 근거가 약해 정확한 통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4년마다 하는 인구 총조사에 통합해서 하면 좀 더 간편하게 할 수 있는데, 아직 그렇게까지 논의가 가지는 않았다. 광주시나 은평구 등 지자체에서 통합지원센터 등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조례를 만들기는 하는데, 역시 법적 근거가 약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데에는 사회 구조의 문제와 문화적 문제 그리고 개인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취업에 연거푸 실패하다가 결국에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그렇다고 부모가 나서서 취업을 시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개인이 혼자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문제다.
은둔형 외톨이, 사회가 나서야
우리가 어려운 청년들의 문제에 잠시라도 눈을 돌리는 것은 그들이 고독사하는 경우 정도가 아닐까? 대략 청년 인구의 1~2% 정도를 은둔형 외톨이로 보는데, 생각보다 많다. 다른 많은 사회적 문제들은 빈곤과 연관이 있는데, 히키코모리 현상은 꼭 그렇지도 않다. 슈퍼 리치 집안에도 이런 사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산층 가정에서는 종종 발생한다. 집이 여러 채인데, 그중 한 채에 자식이 살면서 부모도 못 들어오게 하는 사례도 보았다. 또 다른 사례는 나름 넉넉한 집안인데, 부자 동네에 있는 교회에 다니다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면서 사회생활을 단절한 경우다. 박사 중에서 은둔형 외톨이를 보지는 못했는데, 대학원 졸업한 석사 중에서는 몇명 보았다. 마음의 상처와 취업 실패가 겹치면 나름 고학력이라도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경제 동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제적 요소가 중요하고, 사회안전망이 약하고, 약자에 대해 유독 잔인하다는 점일 것이다. 누구나 성공하고 누구나 번듯할 수는 없다. 어려운 취약 청년에 은둔형 외톨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고령화와 함께 아픈 부모를 돌봐야 하는 청년, 대략 10만명으로 추산된다. 일본 정부는 청년 대책으로 노인을 돌보게 돼 퇴사하는 인원을 ‘제로’로 만들겠다며 사회 돌봄 정책을 강하게 추진 중이다. 우린 아직 별 대책이 없다. 고령화 속도가 높아지면서 아픈 부모를 돌봐야 하는 청년들 숫자도 급증할 것이다.
평균 지능과 지적장애인 중간 정도인 경계성 지능 청년도 역시 우리가 돌봐야 하는 취약 청년이다. 이 숫자도 9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역시 복지 제도의 맹점에 놓인 사람들이다. 많은 청년들이 연거푸 취업에 실패하며 경제인구에서 빠지면서 “그냥 논다”는 상황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몇발만 더 가면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남의 문제가 아니다. 취업 활동을 중단하면 실업통계에서도 빠진다. 화려한 경제 통계 뒤에 이렇게 아프고 힘든 청년들이 숨겨져 있다.
매우 늦었지만 최근 국회에 취약청년지원법이 발의되었다. 각 지자체들이 조례에 의해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까,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았다. 일부 지자체가 먼저 시도하는 시범사업 수준이라고 보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 모든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사는 동네에 따른 편차가 크다. 또한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지자체 등 관련된 부처가 나뉘어 있어 통합 관리가 중요하다. 법안은 국무조정실이 총괄 조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총리가 많은 어려운 청년들을 돌보는 부모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취약청년지원법 국회 통과 필요
법이 모든 문제를 풀어주지는 못한다. 그래도 법이라도 있어야 통계 체계가 정비되고, 현황을 알아야 새로운 정책들을 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 국회 상황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야당은 법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이 ‘무한 도돌이’가 진행 중이다. 은둔형 외톨이를 비롯해 취약 청년의 문제는 진보·보수와는 크게 관련 없다. 최근 전세사기특별법과 일·가정 양립 지원법 등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취약청년지원법도 부디 무사히 국회를 통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안의 히키코모리, 그들이 문을 열고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 데 여야가 다른 입장일 게 뭐가 있겠는가.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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