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교토국제고의 우승
야구는 유독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경기장 외야를 감싸던 플라타너스 신록이 짙은 광채를 뿌릴 때 야구의 열정은 절정이었다. 국내 고교야구팀이 다 모인 봉황대기나 만화·영화로 접한 일본 야구 문화의 정수 고시엔(甲子園)이 여름에 열린 것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전교생 130여명의 작은 한국계 학교가 100년 전통 여름 고시엔에서 우승한 울림이 한·일 양국에서 작지 않다. 청춘의 열정 같은 고시엔의 서사는 기적을 갈망하기 마련이고, 이번엔 교토국제고가 주인공이다. 한때 폐교를 걱정하던 학교가 반전을 만들려 시작한 야구부가, 첫 경기 0-34의 참패 후 25년 만에 오른 고시엔 정상이다. 외야까지 60~70m의 정상적 타격·수비 연습조차 어려운 교정에서 이뤄낸 성취였다. 전국 3441개 학교 중에서 지역예선을 뚫고 49개교만 출전하니 본선에 나서는 것 자체가 이미 ‘작은 우승’이다.
교토국제고가 특히 화제가 된 것은 ‘동해바다 건너서…’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가 울려퍼질 때였다. 국내선 친근함으로 바라봤지만, 일본에선 혐한과 성찰이 엇갈렸다. 일부 우익 성향 일본 누리꾼들은 “일본 문화에 대한 모욕”으로 반감을 표시했고, “땡볕 아래서 필사적으로 싸워 이겨낸 두 학교에 박수로 마무리됐다면 좋았을 것”이란 반박도 작지 않았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이나 재학생들은 이미 그 안에서 벽을 두지 않는다. 2004년 일본인 학생 입학을 받은 후 학생 다수(70%)는 일본계이고, 우승한 야구 선수들도 다 일본계라고 한다. 많은 일본계 학생들은 한류에 대한 호감과 야구를 위해 이 학교로 진학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공통의 꿈, 희망, 미래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일본인 학생이 한국어 교가를 부르며 자긍심을 갖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 교가 논쟁엔 한·일 양국 간 ‘현재의 벽’이 겹쳐 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부상에도 선수 시절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조 디마지오를 생각하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듯, 지금 두 나라에서 먼저 볼 것은 불굴의 여름 야구 드라마이고, 그것이 만들 ‘벽 없는 미래’이다. 교토국제고 야구부 주장의 말이 오래 남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이 있다. 우리는 야구를 위해 이 학교에 들어왔다.”
김광호 논설위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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