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퇴임 전 12번째 한·일 정상회담?…이번엔 ‘물 반잔’ 채울까
실익 챙긴 기시다, 외교적 성과 부각시키려는 의도?
‘중일마’ 발언 등에 악화 여론 뚫고 반전 계기 만들까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내달 27일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조만간 방한할 전망이다. 퇴임을 앞두고 한·일 관계 발전과 한·미·일 3각 협력 강화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 재임 기간 '한국만 너무 양보한 것 아니냐'는 국내 비판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퇴임 전 자신의 외교적 성과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방한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더구나 최근 광복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사 관련 일본 언급이 전무했고, 대통령실의 '중일마(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발언이 나오는 등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의 방한이 우리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지막이자 세 번째 방한…기시다가 韓 찾는 이유는
대통령실은 25일 기시다 총리 쪽과 방한 일정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시다 총리 방한에 대해 일본과 협의 중"이라며 "추후 (일정이) 결정되면 공지하겠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 방한 관련 보도는 일본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20일 교도통신은 기시다 총리가 9월 초 한국을 찾아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튿날 요미우리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방한 일정을 다음달 6~7일로 조율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당시 대통령실은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라면서도 "윤 대통령은 한·일 간 셔틀외교 차원에서 언제든 기시다 총리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시다 총리가 방한할 경우 윤 대통령과는 약 한 달여 만에 만나게 된다. 두 정상은 지난 7월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양자 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이번 방한을 통해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양 정상은 국제회의 등에서의 대면회담을 포함해 12번째 회담을 하게 된다. 양 정상은 지난해 3월 윤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일을 계기로 12년 만에 셔틀외교를 복원했다. 이후에도 1년여 동안 양국을 두 번씩 방문하며 각별한 관계를 과시했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9월27일 자민당 총재 선거가 진행되면 퇴진한다. 지난 14일 자민당의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차기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연임을 포기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로, 한·일 관계 정상화를 더욱 확실한 것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임 3년간 성과로 '한·일관계 개선'을 꼽기도 했다. 이번 방한 역시 퇴임 전 외교적 성과를 부각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나머지 반을 채우는 것은 일본의 몫"…이번엔 다를까
그도 그럴 것이 재임 기간 기시다 총리는 상당한 외교적 실익을 챙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3월 우리 정부는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했다.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이 빠진 해당 변제안으로 기시다 총리는 큰 부담을 덜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이번 강제징용 해법으로 물 컵의 절반이 찼다"면서 "나머지 반을 채우는 것은 일본의 몫"이라며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기대했다.
이후 일본의 대응은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지난해 5월 방한한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개인 의견을 전제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을 뿐 '사죄'나 '사과'와 같은 표현은 없었다.
우리 정부의 대처도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전시공간을 마련했지만 강제적인 조선인 노동자 동원 실태를 직접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정부는 '전체 역사'를 반영한 일본의 이행조치를 보고 사도광산 등재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대통령실은 "세계유산 등재 전에 선제적으로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을 여는 등 선(先) 조치를 했다"며 "등재 전에 일본 측의 행동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태도도 논란을 계속 만들고 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놓고 광복회와 갈등을 빚었고, 윤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2차례 언급했을 뿐 과거사 관련해서는 꺼내지 않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광복절 연설에 과거사 언급이 없는 것이 이례적이라고도 했다.
'중일마' 발언에 여론 악화…분위기 반전 성공할까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김 차장은 지난 16일 KBS 뉴스에 나와 윤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서 일본과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며 "(사과할)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게 진정한가"라고 답했다.
이른바 '중일마(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 발언을 놓고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권 내 최다선인 조경태 의원은 "피해자가 왜 가해자 마음을 헤아려야 되느냐"며 "국민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최근에는 서울 지하철 역사 및 전쟁기념관에 있던 독도 조형물이 잇따라 철거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관련해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지시로 '독도 지우기 의혹' 진상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의 방한 결과에 따라 정부에 대한 여론 향배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가 과거사 등에 대해 전향적인 메시지를 내놓을 경우 분위기 반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원론적 입장을 반복하거나 자신의 외교적 성과를 부각시킬 경우 반일 역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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