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에 학위 따는 노인들 “이 나이에도 배울 게 너무 많아”

김진룡 기자 2024. 8. 2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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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 버스가 간다 <10> 만학도 노인대학생

- 문화·스포츠 분야 취미강좌부터
- 복지·영어교육 등 전공범위 방대
- 지역대학도 학령인구 감소 대비
- 성인 학습자 과정 개설 잇따라

- 새 친구 사귀고, 배움도 채우고
- “이제야 나 자신 위해 사는 기분”
- 평생학습 차원서 市 뒷받침 필요

“공부하는 데 나이가 있습니까. 학위를 따도 다 늙어서 써먹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배우는 열정은 젊은이 못지않습니다.” 국제신문 77번 버스가 마지막 목적지로 정한 곳은 공부하는 노인으로 가득 찬 노인대학이다. 여름방학 기간이라 이곳을 찾는 노인의 발길은 비교적 뜸했지만, 배움을 향한 노인의 열정은 끝이 없었다. 김갑진(75) 할아버지도 지난 3월부터 부산대 평생교육원이 운영하는 노인대학 ‘경헌실버아카데미’에서 생활법률 건강관리법 실버라인댄스 미술심리치료 등 여러 강의를 한 학기 동안 빠짐없이 들었다.

신라대 평생교육원이 운영하는 노인대학 ‘신라시니어스아카데미’에 참여한 노인이 메이커 교육을 받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신라시니어스아카데미에는 43명이 참여해 37명이 수료했다. 신라대 제공


▮석사 학위를 노리는 70대

경헌실버아카데미는 2001년 부산에서 처음 시작된 노인대학으로, 2017년 별세한 된 재일교포 사업가인 일본 낙서건설공업주식회사 김경헌 회장이 부산의 노인 교육을 위해 부산시에 성금을 기탁하면서 마련됐다. 수강 접수부터 강의를 듣기까지 경쟁률도 치열하다. 김 할아버지도 5년째 대기하다가 올해 처음 강의를 들었다. 한 학기 정원이 90명가량 되는데, 60세 이상 시민이 16개 구·군의 사회복지과로 접수하면 각 구·군이 추천을 통해 5명씩만 선발한다.

경쟁률이 높지만, 노인대학을 찾는 이유는 다양했다. 김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 외로움을 달랬다. 그는 “한 학기 동안 여러 학우를 만나 강의를 듣다 보니 우정이 생겨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늙어서 좋은 친구를 만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노인대학은 배움을 향한 열정에도 다시 불을 지폈다. 과거 화학공학을 전공했던 김 할아버지는 내친김에 한국방송통신대 대학원의 노인복지 석사 학위까지 노린다. “학위를 따서 돈을 벌거나 일자리를 찾기보다, 노인복지를 제대로 배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어요. 40대 때 장애인을 위한 이동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냥 육체적으로 힘들구나 정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오히려 제가 정신적으로 도움을 받았더군요. 봉사 활동을 하니 제 정신 건강이 무척 맑아졌습니다.”

신라대 평생교육원이 운영하는 노인대학 ‘신라시니어스아카데미’에도 배움을 즐기는 노인으로 가득했다. 김선희(65) 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주변의 권유로 노인대학에 관심을 가졌는데, 마침 아파트 단지 내 붙은 공고문도 봤다. 그가 이곳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일상에서 찾을 수 없는 ‘새로움’ 때문이었다. 이렇게 그는 지난 3월 다시 배움의 터로 나섰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오랜만에 무엇을 배우는 것이라 신선했습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동영상 편집도 하고,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박물관도 갔습니다. 동기들의 평균 나이가 74살이었는데, 가곡도 화음에 맞춰 함께 불러보니 정말 잘 맞았죠. 나에게는 모든 게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배움을 위해 인문학 강좌를 더 열심히 찾아볼 생각이다. 배우는 것 자체가 새롭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더 가까워지고 소통하도록 도울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인문학에서는 우리 사회 여러 방면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잘 모르는 역사 이야기나 새로운 세계관을 배워서 급변하는 시대에 젊은이를 좀 더 이해해 보고 싶어요. 노인도 젊은 사고방식으로 젊은 세대와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공부는 내 인생을 찾는 과정

노인대학의 전문 강좌 외에도 ‘부산시민대학’에서 배움을 이어가는 노인도 많다. 부산시민대학은 2019년부터 부산여성가족과평생교육진흥원이 마련한 성인 학습을 위한 교육 플랫폼이다. 온라인으로 제과제빵 전산회계 등 1000여 개의 다양한 주제의 강좌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15개 지역 대학·교육기관과 협업해 영어 부동산 생활디자인 등 여러 강좌를 무료로 진행한다.

강종순(72) 할머니도 지난해 가을학기 때 부산시민대학이 마련한 부산외대 시민실용영어학과를 다녔다. “평소에 영어를 좀 배우고 싶었는데, 대학에 가려니 나이도 들고 마땅한 과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노인 대상 강좌가 문화나 스포츠 같은 것에 집중돼 있었죠. 그런데 부산외대에서 영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무작정 찾았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원어민이 있어 화들짝 놀랐어요. 말문이 막히고 온몸이 얼어서 이거 잘못 왔다는 생각부터 들었죠.”

반세기 전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평생 주부로 살아왔던 그에게 영어는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영어가 안 돼 말이 안 통했고, 눈빛 교환으로 소통하는 날이 더 많았다. 영어단어를 외우더라도 말을 할 때 영어 어순대로 내뱉어야 하는데 앞뒤가 막히기 일쑤였다. 어디까지 주어이고 동사인지 감도 잘 안 왔다. 함께 수업을 듣는 ‘영어 고수’의 통역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차츰차츰 말문이 터졌고 귀가 트였습니다. 영어 단어도 외웠고, 자신감도 커졌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결석 없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4년간 부산예원중·고교에서 늦깎이 졸업장을 딴 뒤, 부산시민대학에서 영어를 배운 경험을 살려 올해 초 부산외대 시민영어교육학과에 정식으로 입학했다. 부산외대는 올해 처음 3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 학습자 과정인 시민영어교육학과를 만들었다. 이는 4년제 정규 과정으로, 졸업 후에는 영어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올해 첫 입학생은 총 15명이고, 이 중 3명이 부산시민대학 출신이다.

“생활이 바쁘다 보니 공부는 아예 생각하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 그냥 인생이 끝날 것 같았죠. 그때 내 자신을 찾고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정말 대학교에 갈 것이라 꿈도 못 꿨는데, 이렇게 대학교에 다녀 보니 내 자신을 위해 하나하나 배우는 게 너무 보람 있고 좋았습니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게 정말 감사합니다.”

부산외대 김용구 시민영어교육학과장은 “성인 학습자 과정은 여러 수준의 학생이 오기 때문에 강사나 교수 입장에서는 수준을 맞추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보다 이들의 열정은 더 큰 것 같다. 젊은 학생은 질문하는 걸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데, 성인 학습자는 궁금한 게 있으면 무조건 물어보니 교수나 강사 입장에서는 가르치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줄어드는 학령인구 탓에 각 대학이 벌써 노인 등 성인 학습자를 위한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평생교육이란 차원에서 정부나 부산시의 예산도 연속성 있게 투입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 올 상반기 부산 노인대학 수료 현황
노인대학명 입학 수료 수료율
경헌실버아카데미 90명 84명 93.3%
경성골드에이지 50명 42명 84%
신라시니어스아카데미 43명 37명 86%
부산뉴시니어스쿨 40명 36명 90%
동아청춘대학 30명 29명 96.6%
100+인생대학 32명 26명 81.2%
※자료 : 부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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