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텍스트 힙’은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강동훈 서점 크레타 대표 2024. 8. 2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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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훈 서점 크레타 대표

몇 달 전, 유명 독립서점에서 SNS에 올린 게시물 하나가 화제가 됐다. 게시물은 감각적인 사진을 앞에 내세웠는데, 사진 이면에 담긴 글에는 책방지기의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하루에 100명이 넘게 방문했지만, 사진과 영상만 열심히 찍고 아무도 책을 사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례에 대한 성토의 장이 열렸다. 자연스레 다양한 책방지기들이 등장하며 공감과 위로, 응원과 격려가 이어졌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결이 다른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입장료를 받아야 한다’, ‘비닐 포장을 해야 하는 이유다’, ‘방문객의 구입을 유도하기 위한 별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등 조언과 지적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댓글이 달렸고, 지나가다 호기심에 들를 수도 있지 사지 않고 나가는 손님들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책방지기의 태도를 문제 삼는 내용도 있었다. 부정적인 의견이 조금 더 많아지려는 찰나 ‘저는 그래서 서점에 들르면 한 권씩은 사서 나와요’라는 선한 마음이 맞불을 놓기도 했다.

한 대형서점 창업주가 당부한 직원 금기사항이 떠올랐다. ‘책을 한 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 것, 앉아서 책을 노트에 베끼더라도 그냥 둘 것’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임원들이 금싸라기 땅에 돈이 안 되는 서점을 연다고 반대했지만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창업주의 정신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서점은 도서관이 아니다. 도서 판매를 통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상업공간이다. 그리고 동네서점은 대형서점과는 상황이 판이하다. 대형서점은 매장에서 책을 바로 사지 않더라도 인터넷 주문을 통해 매출로 연결할 수 있지만, 동네서점은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있다 하더라도 대형서점과 같은 할인과 적립 혜택이 부족하니 전환율도 떨어진다. 의도치 않게 수많은 동네서점이 대형 인터넷 서점의 쇼룸 역할을 하는 실정이다.

요즘 ‘텍스트 힙(Text Hip)’이라는 단어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와 ‘개성 있다, 멋있다’는 의미의 ‘힙하다’를 합친 용어다. 짧고 강렬한 영상을 즐기는 트렌드와 함께 길고 느슨한 텍스트를 원하는 반대 욕구도 같이 올라오는 것이다. 게다가 독서 문화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인식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특히 유명 아이돌이 대기실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공개하거나 팬 커뮤니티에 독서 리스트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팬덤 문화 중 하나로 독서가 자리 잡고 있으며, 허윤진은 공항에 책을 들고 나타나 ‘공항 패션’ 대신 ‘공항 책’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책덕후’, ‘책방투어’와 같은 해시태그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과연 동네서점에도 긍정적인지 물어보면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들이 SNS상에서 책을 즐기고 과시하기 위해, 누군가에게는 삶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영업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 무료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한 손님이 3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열심히 사진도 찍어가며 독서를 즐긴 뒤 “사장님 책 잘 보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하고 웃으며 떠났다. 그는 이 공간을 3시간 동안 이용했지만 내가 얻은 이익은 없다.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책방지기는 허탈감을 느끼고, 더 나아가서는 모멸감까지 느끼게 된다. 이미 많은 동네서점이 입장료를 받은 뒤 책을 사게 되면 해당 금액만큼 차감해 주는 방식을 도입하거나 고려 중이다. 확실하게 책을 살 계획이 있거나, 동네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만 손님으로 받겠다는 것이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간 성인 종합독서율은 43%에 그쳤다. 이미 독서는 비주류 문화가 되었으며, 심지어 매니악한 취미로 보는 시선도 있다. 이런 흐름에서 ‘텍스트 힙’과 같은 신조어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 나타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하는 시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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