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갈맷길 걷기와 ‘건강 관리’
거주지 주변 코스도 개발, 완주 기념품 제공 검토를
기록적인 더위가 8월의 끝 무렵까지 이어지지만 더디 오더라도 계절의 흐름은 속일 수 없다. 조만간 아침저녁 기온이 내려가고 이어 낮 기온도 차츰 낮아질 것이다. 여름 동안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안전안내 문자를 무수하게 받았으나 이제 단단히 채비를 갖추고 야외로 나갈 궁리를 할 시기가 됐다. 여름 동안 뜸했던 부산의 대표 트레킹 코스 갈맷길을 찾는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친목 또는 명상을 위해서 걷기에 나서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건강’일 것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인간에게 최고의 약이다’고 한 걷기는 건강을 위해 가장 쉽고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우리나라는 부산의 갈맷길을 비롯해 전국에 촘촘하게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이러한 둘레길 탐방의 주요한 참여자가 장노년층이다. 갈맷길의 지난해 완보자 통계를 보면 50대(27.0%)와 60대(37.1%)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70대 이상도 19.3%나 차지해 50대 이상이 83.4%로 절대 다수다. 이들의 완보 목적 중 첫 번째로 꼽는 것이 ‘건강 관리’다. 갈맷길과 길이가 비슷한 남해 바래길의 완보자 연령대도 비슷해 60대가 46%로 가장 높았고, 50대가 32.7%로 그 뒤를 이어 50~60대가 78%를 차지했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7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19.51%를 차지해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뒀다. 부산은 ‘노인과 바다’라는 반갑지 않은 별칭이 붙을 정도로 고령화 속도가 더 빠르다. 지난 7월 발표한 통계청의 ‘2023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부산의 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2.8%로 8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았다. 고령인구 자체도 2022년 70만2000명에서 지난해 73만4000명으로 4.5% 증가했다. 범위를 50세 이상으로 넓힌 장노년 인구는 전체 부산 인구의 절반에 육박한다. 지난 1월 부산시가 발표한 ‘2022년 기준 부산 장노년 통계’ 결과를 보면 부산의 전체 인구 중 신중년(50~64세)과 노인(65세 이상) 비율이 각각 25.2%와 21.3%로 전체 인구의 46.5%가 장노년 인구로 집계됐다. 내년에는 이 비율이 49.3%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고령화사회라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장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장수 사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생의 마지막까지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은 각각 2018년 82.7세와 70.4세에서 2030년(추계) 85.2세와 73.3세로 높아진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나란히 높아지는 추세지만 그 차이가 12년 정도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이는 생애 마지막 12년을 병을 앓으며 보낸다는 의미다. 이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1년가량 늘어난 것이기도 하다.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의 간극을 줄이는 데는 다양한 방안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걷기와 같은 꾸준한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다. 걷기는 우울증과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 대사증후군 당뇨 고혈압 등의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을 자극하며 치매 예방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일본 후생성 발표에서 ‘평균 수명’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오키나와를 대신해 새로운 장수 지역으로 떠오른 나가노현은 걷기가 건강수명을 늘리는 유용한 방편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나가노현은 평균수명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의료비 지출이 일본 최저 수준이다. 여기엔 뼈 건강 운동을 비롯해 꼼꼼하게 구성한 건강 증진 프로그램의 하나로 시행한 전 주민 걷기 운동이 한몫했다. 고령자들이 걸을 수 있는 둘레길 코스를 100곳 이상 개발하는 한편 정서 불안과 사회적 고독을 극복하도록 그룹별로 함께 걷게 했다. 의료비 지출이 적어 지역사회 재정도 안정적이다.
이처럼 어지간한 건강보조식품은 이름도 내밀기 어려울 만큼 걷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누구나 매일 걷지만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 걷기는 약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제 걷기와 이를 위한 지역의 길 관리를 보행 환경 차원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민 건강관리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장거리 트레일뿐만 아니라 거주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단거리 코스를 개발하고 걷기 동호회 운영을 지원하면 장노년의 걷기 참여를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이와 함께 걷기 코스 완주의 목표 의식을 심어줄 기념품과 같은 수단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갈맷길을 완보한 노부부가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트레일을 걷는 국민에 대한 지원을 늘렸으면 하는 바람을 밝힌 “건강 증진을 위해서 전국의 트레일을 국민이 걷도록 하는데 보건복지부가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겸 (사)걷고싶은부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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