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 온 클라이밋’ 제도를 제안한다 [세상읽기]

한겨레 2024. 8. 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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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인근에 모인 4천여명의 시민이 정부에 기후정의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기후위기 대응 방안으로 세이 온 클라이밋 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세이 온 클라이밋은 기업이 단순히 탄소중립 목표연도를 제시하거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향후 5년간의 구체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대해 정기적으로 주주들의 권고적 찬반 표결을 받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20년 주주들의 요구로 스페인 공항 운영회사인 아에나가 처음 도입한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도입하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세이 온 클라이밋 제도가 도입되면, 주주가 감축 계획의 수립과 공개를 요구하는 안건을 주주총회에 제안할 필요가 없다. 이런 제안이 없더라도 감축안을 의무적으로 주총 안건으로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감축 계획 수립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계획이 공개되면 외부의 평가를 피할 수 없으며, 찬성률이 낮게 나오면 기업의 평판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업들은 감축 계획의 이행에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이행에 관한 연례보고서를 매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이 온 클라이밋은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을 직접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이에 버금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제도다. 그린워싱의 여지도 크게 줄어든다.

이 제도는 주주자본주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첫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화석연료의 생산이나 사용을 줄이면 단기적으로는 기업 이윤이 감소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이윤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현재의 주식 가치를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외 원청기업들이 자신의 스코프 3 감축을 위해 이미 우리나라 하도급 기업들에 스코프 1, 2 감축을 요구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가 2026년에 시행될 예정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둘째, 세이 온 클라이밋 제도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전문경영인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주주들이 이에 대해 평가하고 관여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주주자본주의에 매우 충실한 제도다. 전문경영인들은 재임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흑자 전환이 가능한 탈탄소 기술 개발에 과소 투자할 위험이 있다. 세이 온 클라이밋 제도는 주주들이 전문경영인들의 이러한 단기 성과주의를 직접 시정할 수 있는 유용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셋째, 세이 온 클라이밋에 따라 이루어진 온실가스 감축으로 인해 주식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경영자의 단독 결정이 아닌 주주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면, 이 또한 주주자본주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주식 가치는 극대화되지 못했을지라도, 주주가 추구하는 가치는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주주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만을 생각하지 않으며, 기후위기를 포함한 다양한 환경 문제와 사회적 이슈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해서라면 경제적 손실도 기꺼이 감수한다. 주가수익률이 낮아도 사회책임투자 펀드에 많은 투자자가 몰리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만약 투자한 회사가 온실가스 배출과 무관하다면,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대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환경단체 기부는 주주가 회사로부터 배당금을 받아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맞다. 회사가 직접 기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경영진의 성과지표만 모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이 회사의 생산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 회사가 배출량을 직접 줄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이 회사가 환경단체보다 비교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조처는 세이 온 클라이밋에 따라 주주로부터 동의를 받았을 때만 정당화된다.

세계 각국 정부가 합심하여 탄소세를 부과하고, 그 덕에 온실가스 배출의 외부 불경제가 내재화된다면 주주들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 회사를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기업이 탄소세 납부 금액을 고려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최적 배출량을 도출한 뒤 그만큼만 배출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각국 정부는 서로 비용을 부담하기보다는 다른 국가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집단행동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러한 규제 공백 상태에서는 세이 온 클라이밋 제도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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