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스러움’이 통했다…산골 료칸, 역발상으로 만실의 기적

글= 김태훈 PD 2024. 8. 25. 18: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목욕탕 엘레지 <9> ‘온천 왕국’ 오이타현


- 원천 5000여 개 日 최대 온천지
- 벳푸·유후인 등 年 449만명 숙박

- 유노히라 마을은 명성 잃고 쇠락
- 50년 료칸 ‘야마시로야’도 타격
- 외국인 타깃으로 ‘전통미’ 어필
- 20대 여성 등 젊은 층 문전성시

- 벳푸는 치유관광으로 영역 확장
- 우리도 ‘한국스러움’ 고민해야

‘온천현 오이타’. 일본 오이타현의 별명이다. 한국인에게는 온천 관광지 ‘벳푸’와 ‘유후인’으로 잘 알려졌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원천 수(5000여 개)와 용출량을 자랑한다. 이름난 관광지는 대부분 온천지이기 때문에, 온천에 몸을 담그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일본 오이타현 유후시 유노히라 마을에 위치한 료칸(일본식 온천여관) ‘야마시로야의 내부 온천탕과 전경.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연일 외국인 관광객으로 만실을 이룬다. 김태훈 PD


연일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오이타현의 온천지는 북새통을 이룬다. 20, 30대 관광객들이 후끈한 온천 증기를 쐬며 족욕탕에 발을 담근다. 그야말로 ‘이열치열’이다. 료칸(일본식 온천여관)이 즐비한 거리에선 외국인들이 유카타(일본 전통의상)를 입은 채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해 449만 명의 숙박객(당일치기 제외)이 오이타현을 찾았다. 팬데믹 여파를 잊은 듯 2019년에 견줘 90% 이상 회복된 수치다.

반면 동래온천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다. 나이가 지긋한 동네주민 서너 명이 노천 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갈 뿐이다. 목욕객 역시 50, 60대가 대부분. 당연히 외국인은 더 찾아보기 힘들다. 해운대구의 온천도 사정은 비슷하다.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의 발길이 ‘K-찜질방’까지 드문드문 이어지지만, 온천탕을 찾는 목욕객은 주로 50, 60대 주민이다.

부산에서 오이타현으로 가려면 비행편으로 후쿠오카 공항까지 이동해 2시간 이상 고속버스나 열차를 타야 한다. 대기 시간까지 감안하면 한나절은 훌쩍 흐른다. 그런데도 이곳을 찾는 한국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오이타현을 찾은 외국인 숙박객(79만여 명)의 절반 이상(42만여 명)은 한국인이었다. 팬데믹 이전 2019년(34만여 명)보다도 늘었다. 지루한 건 못 참는 한국인이 국내의 온천을 마다하고 먼 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을 구하고자 ‘온천 왕국’ 일본 오이타현으로 향했다.

▮시골 료칸의 ‘만실 비결’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료칸 ‘야마시로야’는 하룻밤 묵으려는 외국인 손님으로 늘 만실을 이룬다. 교통이 불편한 시골에 자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신기하다. 소재지는 인기 관광지 유후인에서 15㎞ 정도 떨어진 ‘유노히라’. 관광객에겐 다소 생소한 마을이다. 이곳까지 닿는 도로는 차 한 두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험한 산길이다. 열차도 적어 1~2시간에 한 편 꼴로 운행한다. 이 때문에 야마시로야를 제외한 나머지 료칸은 손님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유노히라는 196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 최대 온천도시 벳푸에 버금가는 온천지로 여겨졌다. 당시 이 지역의 료칸은 55곳에 달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1975년 무렵이다. 바로 옆 마을 유후인에 미술관·카페 등이 들어서며 관광객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유후인은 오이타현을 대표하는 인기 온천지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유노히라는 쇠락을 면치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이곳 료칸은 19곳으로 줄었다. 야마시로야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관광객이 자취를 감추며 몇 안 되는 단골손님이 올려주는 수입에 경영을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만실의 기적은 10여 년 전 니노미야 켄지(63) 대표가 장인에게서 료칸을 물려받으며 시작됐다. 타깃층을 현지인에서 외국인으로 재설정한 것이다. 그는 “이곳은 지역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작고 오래된 료칸이다. 일본인에겐 특별한 매력이 없을 것이라 판단해 외국인 손님으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 잡지사에 료칸 취재를 제안했다. 요청에 응한 한국의 잡지사 두 곳을 시작으로 대만 언론사, 홍콩 잡지 등의 취재가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야마시로야가 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풍경을 이곳의 매력으로 꼽는다. 오래된 목조 건물 사이로 깔린 돌길과 붉은 등불, 하얗게 핀 온천 연기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한 장면 같다. 특히 20대 여성에게 인기다. 니노미야 대표는 “숙박객 절반 이상이 20대다. 여성이 전체 손님의 6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손님이 느낄 안도감’에 주목했다. 낯선 곳에서도 손님이 안심할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모토로 삼았다. 그의 홈페이지는 외국인 손님을 위해 4개 국어(일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를 제공한다. 손님의 내일 일정에 맞는 식사시간과 교통편 등도 짜준다.

교통 불편 해소에도 직접 나선다. 유노히라역은 역무원이 없어 손님이 제때 내리지 못하는 일이 잦다. 이런 불상사를 막고자 숙소까지 오는 법을 동영상으로 안내한다. 이 같은 노력 끝에 30여개 국 외국인이 야마시로야를 찾았다. 숙박객 90%가 외국인이며, 특히 한국인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일본 오이타현 벳푸시 전경. 김태훈 PD


▮‘오감’으로 즐기는 온천

오이타에서 최고의 온천도시를 꼽는다면 단연 벳푸다. 2019년에는 833만5773명의 관광객이 찾았는 데, 외국인 관광객 62만여 명 중 약 40%가 한국인이었다. 벳푸는 ‘지옥온천 순례’로 유명하다.

▷푸른 바닷빛 온천 ‘바다 지옥’ ▷붉은 핏빛 온천 ‘피의 연못 지옥’ ▷간헐적으로 온천수가 솟구치는 ‘소용돌이 지옥’ ▷청백색 온천 ‘흰 연못 지옥’ ▷진흙 속 온천 기포가 스님의 머리와 닮은 ‘스님 지옥’ ▷과거 온천 증기로 밥을 지었다고 해 이름 붙은 ‘가마솥 지옥’ ▷악어가 사는 것으로 유명한 ‘귀산 지옥’ 등 온천명소를 둘러보는 관광 코스를 일컫는다. 이른바 ‘눈으로 보는 온천’이다. 이곳 주민이 펄펄 끓는 탕과 그 열기를 보고 지옥을 떠올린 것에서 유래됐다.

입으로도 온천을 즐긴다. 채소·고기·해산물을 온천의 증기로 쪄 먹는 지역 전통요리 ‘지옥찜’이나 온천수로 익힌 달걀은 벳푸를 대표하는 먹거리다. 온천 증기를 코로 맡고 피부로 쐬거나, 온천수를 직접 마시는 체험도 인기다. 10여 년째 벳푸에서 ‘하나미즈키 료칸’을 운영하고 있는 신현욱(60) 대표는 “벳푸에서는 오감으로 온천을 즐기는 독특한 관광문화가 자리 잡았다. 온천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가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이곳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벳푸 온천 산업은 지금도 발전을 지향한다. 치유 관광으로의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 벳푸 칸나와 지역은 과거 온천으로 질병을 고치는 ‘탕치’ 명소로, 온천이 딸린 숙소에 한 달 이상 머물며 요양했다. 벳푸시 관광산업부 마키 코지 과장은 “요가 등 건강 프로그램 운영, 온천 효능 연구 사업 등 웰니스 요소를 제안해 나가고 있다. 이른바 ‘신 탕치’다. 1, 2박 머무르는 관광객의 체류기간을 좀더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스러워야’ 푹 빠진다

벳푸지역 전통요리 ‘지옥찜’. 지옥찜공방 칸나와 홈페이지


일본에 견줘 국내 온천은 아직 목욕시설로서의 역할에 그친다.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온천 문화’를 만들어낸 벳푸와 대조적이다. ‘목욕 원툴’ 한국온천의 관광 매력도가 점차 떨어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한국 온천만의 정체성을 찾아 관광자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미즈키 신 대표는 “일본식 료칸을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가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기에는 반짝 인기를 끌었겠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한국스러운’ 요소가 가미돼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일본 온천 관계자들은 일본온천의 인기 비결로 ‘일본스러움’을 꼽았다. 니노미야 대표는 “한국 잡지사 취재진으로부터 ‘유노히라의 풍경이 가장 일본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범한 시골 온천마을 풍경이 외국인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설명했다. 야마시로야는 숙박객에게 유카타와 일본식 우산을 무료 대여한다. 목욕을 마친 뒤 유카타를 입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게 이곳의 필수 코스다. 손님에게 내는 음식도 오이타현의 특산물 분고규(소고기)를 포함한 일본 가정식으로 준비한다. 방문객은 씻고, 입고, 먹으며 ‘일본스러운 정취’를 느낀다.

동서대 권장욱(관광·컨벤션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온천은 1990년대 이후 전통적인 온천 역사와는 동떨어진 대규모 스파 리조트·워터파크 위주로 발전해 독특한 온천 문화를 만들지 못했다”며 “오감적 부분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접객 태도·경관·수질과 온도·청각 요소·몸을 닦는 동안 느껴지는 수건의 향기까지 우리만의 고유 영역을 만들어내야 한다. 부산의 경우 온천지와 인접한 금정산과 해운대에서 유래되는 자원들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 김태훈 김진철 김채호 PD

※제작지원 : BNK 금융그룹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