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테리를 위한 변명 [문정인 칼럼]

한겨레 2024. 8. 2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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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 테리에 대한 최종 판단은 미국의 사법부가 내리겠지만, 이번 사건이 남기는 함의는 여러 가지다. 우선 한·미 양국은 강력한 동맹이지만 각자의 국익과 제도가 있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미 공공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나 이는 미국의 법과 제도 안에서 전개해야 한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이 2017년 6월 뉴욕에서 열린 아시아 소사이어티 행사에 패널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곱씹어볼수록 기묘하다. 한동안 뜨거운 뉴스였던 수미 테리 사건 이야기다. 미국 정부에서 외교안보 요직을 거치고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에서 대표적인 한-미 동맹 중시론자로 활동해왔던 인물에 대한 미 연방 검찰의 기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의 기소 죄명은 비교적 간단하다. 미 법무부에 외국 정부 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에이전트 역할을 수행해 미국의 외국인대리인등록법(FARA)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수미 테리 변호인은 “북한 분석이 전문인 워싱턴의 학자로서 미국과 한국의 정부 당국자들과 교류”했지만, 그가 “한국 정부를 대리한 사실은 없다”고 항변한다. 유죄 여부는 법정에서 배심원들에 의해 결정되겠으나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공소장은 수미 테리가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하기 시작한 시점을 2014년으로 기술한다. 그해 7월 미국 시사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자유롭고 통일된 한반도’라는 제목의 글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 글에서 테리 박사는 북한 붕괴가 임박해 있고 북한에 대한 한국의 흡수통일은 모두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한·미의 정책결정자들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 군사 개입까지도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북한 체제 붕괴는 비용보다 이익이 더 크다는 단서를 달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동료 교수와 함께 북한 체제의 붕괴는 임박하지 않았고 체제 붕괴나 흡수통일이 모두에게 유리하지 않으며 한·미의 군사적 개입은 엄청난 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라는 반론을 같은 ‘포린어페어스’에 게재한 바 있다. 사실 수미 테리의 논지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초기 ‘통일 대박론’과도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공소장은 또한 수미 테리가 문재인 정부 재임 중 외교관 신분의 한국 정보요원으로부터 명품 가방을 수수하고 고급 음식점에서 향응을 받으면서 한국 정부를 위한 불법적 대리인 활동을 해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역시 이해되지 않는다. 당시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로 일했던 필자는 그를 워싱턴 인사들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일 정책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인물로 기억한다.

예컨대 한-일 역사 갈등 문제로 문재인 정부는 한-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 협정) 자동연장 유보를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었던 사람이 바로 수미 테리였다. 이외에도 그는 문재인 정부의 종전 선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미 동맹 정책 전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 정부로서는 그만큼 상대하기 어려웠던 한반도 전문가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둘 중 하나다. 한국 정부 관료들이 테리를 상대로 한 영향력 행사에 실패했거나, 아니면 그가 한국 정부와는 무관하게 자기 견해에 충실했다는 의미다. 어느 경우든 ‘불법적 대리인’과는 거리가 멀다.

미 검찰의 공소장은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2022년 5월 이후 수미 테리가 한국 정부의 시각을 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한 것으로 지적한다. 여기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워싱턴의 초당적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의 아시아담당 국장으로 재직했던 수미 테리는 2022년 12월8일 ‘제주 4·3 사건: 인권과 동맹’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제주4·3평화재단 및 미국의 한 비정부기구(NGO)와 공동 개최한 바 있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일반적 관행으로 볼 때 아주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1948년 미 군정 기간에 발생한 제주 4·3 사건에 대해, 오랜 기간 제주도민들은 미국의 역할과 책임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상응 조치를 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 심포지엄은 이를 미국 내에서 공론화하는 작업의 일환이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이 행사를 탐탁지 않아 하는 기류는 분명했다. 그러나 테리 박사는 이 심포지엄의 공동 개최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민주주의, 평화, 자유, 정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4·3의 비극에 대해 미 정부가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꼼꼼히 돌아볼수록 수미 테리를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믿는 미국적 가치와 국가 이익에 충실했다. 최종 판단은 미국의 사법부가 내리겠지만, 이번 사건이 남기는 함의는 여러 가지다. 우선 한·미 양국은 강력한 동맹이지만 각자의 국익과 제도가 있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미 공공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나 이는 미국의 법과 제도 안에서 전개해야 한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미국 내 친한 인사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도 결국은 공식외교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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