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호텔 화재’ 사상자 키운 결정적 장면 셋 [뉴스분석]
화재 취약시설 대응 매뉴얼 정비 요구
지난 22일 경기 부천시의 신도시 내 숙박시설에서 발생한 불로 7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을 당했다. 화재 신고 접수 4분만에 소방 장비·인력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유독가스가 객실과 복도로 급속도로 확산하며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갔다. 객실 내 전기적 요인을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고 알린 소방당국은 에어컨에서 튄 스파크가 먼지, 침구류 등과 만나 순식간에 화마가 덮친 것으로 추정 중이다. 호텔 측은 “탄 냄새가 난다”는 투숙객 지적에도 안전불감증을 드러냈다.
인명 피해를 키운 또 다른 요인으로 스프링클러가 지목된다. 천장에 달려 고온에 반응해 물을 뿌리는 장치로 초기 진화를 돕고 불길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는 데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사망자는 구조 당국이 설치한 에어매트에 몸을 던지는 과정에서 크게 다쳤고 끝내 숨졌다. 소방 당국의 총체적 대응 부실이 지적되는 대목이다. 당국이 화재에 취약한 다중이용시설의 예방 조치 강화 및 화재 시 대응 매뉴얼 정비에 다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참사가 벌어진 총 64개의 객실을 가진 원미구 코보스호텔은 4층이 없어 사실상 8층짜리 건물이다. 7층의 810호에서 불이 시작됐다. 2003년 3월 건축허가, 2004년 10월 사용승인을 각각 받았다. 스프링클러가 관련법 개정으로 2017년부터 6층 이상 모든 신축 건물에 층마다 설치하도록 의무화된 탓에 의무적인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이 같은 제도적 허점은 비단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근으로 유사한 규모 업소들도 둘러본 결과, 여러 곳이 객실층 전체에 해당 장치를 아예 갖추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한 곳에 들어가 물어보니 “그런 것 없다”라는 답변이 바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일대의 관련 건물들은 대부분 20년이 넘은 게 많다”고 말했다.
주위 3곳 가운데 2000년 12월과 2004년 10월 사용승인이 난 곳은 지하주차장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했을 뿐 지상의 건물 내부에는 전혀 없는 것으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측이 확인했다. 주차타워를 별도 공간으로 둔 다른 한 곳은 지상·지하 모두에 전무했다.
전문가들은 관련법 개정 이전 건물에도 의무 설치 규정을 소급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공통적인 목소리를 낸다. 병원이나 노인시설 같은 피난약자가 있는 곳에 보통 소급해 적용, 건물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숙박업소 투숙자도 동일하게 피난약자로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숙박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는 1843건으로, 32명이 숨지고 355명은 다쳤다. 연도별로는 2019년 365건, 2020년 344건, 2021년 375건, 2022년 382건, 2023년 377건으로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일어났다.
광주시는 2019년 발생한 모텔 화재를 계기로 국토교통부에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건의했다. 6층 이상으로 조건을 둔 배연설비 설치 의무 대상을 5층 이하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그해 12월 북구 두암동 한 모텔에서 30대 남성이 별다른 이유 없이 방화해 3명이 죽고 30명이 다친 사건이 계기였다. ‘큰 사회적 비용’을 이유로 5년째 진전이 없다.
생명을 구해줄 최후 보루 에어매트의 안전성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사건 당일 오후 7시39분쯤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호텔 1층 외부에 에어매트를 설치했다. 가로 7.5m·세로 4.5m·높이 3m 크기다. 오후 7시55분쯤 807호 객실에서 먼저 뛰어내린 여성은 장비 모서리 부분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뒤집히는 과정에서 3초 간격을 두고 낙하한 남성은 곧장 바닥과 충격했다.
“골든타임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골든액션이다. 골든액션이 미진했다.”
이번 추락사를 둘러싸고 소방당국의 지휘통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꼬집는다. 매뉴얼상 한 사람씩 매트 중앙으로 떨어져야 했지만 이런 수칙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초 대피자는 공기 주입이 덜 된 상태로 떨어졌고, 뒤이어 사망자에게도 안전한 낙하 요령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유도조차 못했다는 판단이다. 다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에어매트를 소방대원 등 사람이 직접 잡거나 고정해야 할 규정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층에서 에어매트로 뛰어내리는 행위 자체가 위험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8층에서 떨어지는 에너지를 봤을 때 충분히 넘어가고도 남을 수 있다”면서 “피난기구의 일환이라 그만큼 위험을 내포해 소방대원들이 수평을 맞춰서 잘 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뒤집히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부상을 감수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담당자들의 과실로 연결될 수 있는 공기의 과다 주입, 바닥에 경사진 곳 배치 등 설치 시 문제가 없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사다리차 등 다른 수단을 먼저 활용하는 게 옳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8층 이상에선 사다리차 투입이 우선 검토돼야 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부천소방서 관계자는 “도로 폭이 확보되지 않았다. 주변에 지정 주차구역과 불법주차 차량들로 고가 사다리차 배치가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부실 장비에 대한 의혹도 나온다. 이번에 쓰인 에어매트는 18년 전인 2006년 지급돼 사용가능 기한인 7년을 훌쩍 넘겼다. 다만 이 연수가 지나더라도 심의를 거쳐 재사용할 수는 있지만, 노후화로 기능이 저하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보는 이들도 있다. 현재 합동감식을 거쳐 810호 에어컨에서 나타난 스파크가 화재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이 객실을 예약했던 투숙객은 상황을 지켜보고 곧 “에어컨 쪽에서 ‘탁탁’ 소리가 나고 탄 냄새가 난다”며 오후 7시35분쯤 빠져나와 1층 안내데스로 내려와 방 교체를 요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날 근무하던 직원이 점검을 가던 중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이후 약 83초만에 빠르게 연기가 확산되며 대규모 사상자를 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대피를 안내하는 직원이 없었다고 한다.
이 호텔은 불과 4개월 전 민간 소방시설관리업체에 맡긴 자체적 점검 때 아무런 지적 사항이 나오지 않았다. 소방시설법에 따라 1년에 두 차례 알리는데 지난 4월 “양호하다”는 결과를 부천소방서에 통보했다. 형식적으로 자체 점검을 벌인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 만일 사실대로 지적하면 건물주가 다음 점검 땐 다른 업체와 계약할 수 있어 큰 하자를 드러내기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행이다.
처음 불이 날 당시 침대 매트리스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810호 에어컨은 벽걸이형으로 그 아래에는 소파가 있었고, 바로 옆에 침대 매트리스가 놓여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에어컨에서 불똥이 떨어져 소파 및 침대에 옮겨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숙박업소의 매트리스는 방염 성능 기준을 적용해 난연 제품을 써야 할 것을 조언한다.
부천=강승훈 기자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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