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파업 비상벨’까지 울린 응급의료, 이대로면 공멸이다
한국 의료는 지금 공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수도권·지방 가릴 것 없이 병원마다 전공의 미복귀에 피로가 누적된 전문의 이탈까지 늘어 응급의료 붕괴가 시작됐다. 오죽하면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 ‘골든타임’을 놓친 환자들의 잇단 사망에 119 구급대원들이 지난 23일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겠는가. 오는 29일엔 간호사 등이 속한 보건의료노조도 파업 돌입을 예고했다. 전공의 업무까지 떠안아 사실상 불법의료 행위를 강요받고 있는 간호사들이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결의한 것이다. 말 그대로, 나라 전체의 응급의료가 경각에 처했다.
이 모든 사태는 남아 있는 인력의 번아웃이 뻔한데도 6개월째 어떤 출구도 찾지 못한 정부 책임이 크다. 정부는 여러 유화책을 내밀었음에도 불응한 의료계 책임이며, 의대 증원 방향 자체는 옳으니 혼란을 감수하고 이대로 밀어붙이겠다는 각오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향이 옳아도 실행 방법이 틀리면 정책은 추동력을 잃고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간 의료전달체계 개혁, 의료수가 조정, 의대 교육환경 확충, 내후년 의대 정원을 논의할 사회적 협의체 구성 등을 거론했지만, 무엇 하나 매듭된 게 없다. 엄청난 재정이 소요될 정책들이지만, 재원을 어디서 충당할지는 명확한 설명이 없다. 집단휴학 중인 의대생들이 유급되면 당장 내년부터 증원된 신입생까지 합쳐 7500명이 6년간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의대 교수와 시설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도 구체적 계획이 없다. 일방적인 의대 증원 강행으로 의·정 간 불신이 커진 터에, 이래서야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겠는가.
의료계도 자신들의 집단 행동으로 인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고를 무시한 탓’이라며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 된다. 시민과 환자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은 의료계도 정부와 다를 것 없다. 과로와 고용 위기를 겪는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 결의엔 의료진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언제까지 원점 재논의 요구만 되풀이하고, 이 파국을 방치할 것인가. 의료계는 명확하고 통일된 개혁 로드맵과 차선·차악을 포함한 요구안을 제시하고, 의대 교수들과 의협 모두 중재 물꼬를 트기 위해 마지막 힘과 지혜를 다시 모아야 한다.
대한민국 의료는 끓는 물속의 개구리 신세에 놓여 있다. 의·정 양쪽 다 네 탓만 하는 중에 응급·필수 의료부터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아픈 사람을 받아줄 병원조차 없는 나라를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절체절명의 비상사태에 준하는 위기의식은 어디에도 없다. 의·정은 당장 치킨게임을 멈추고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이대로 가면 공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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