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계빚 3000조 돌파… 정부 경기부양 `무장해제`
곳간 빈 정부, 내수 부양 지출여력 제한
GDP 등 지표 빨간불… 금리 인하도 지체
대출규제해 금융 건전성 강화 목소리도
정부와 가계가 진 빚이 올해 2분기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돌파했다. 나라·가계 빚(가계신용)의 가파른 증가세는 고금리 장기화 기조와 맞물려 정부·민간 소비를 옥죄고 있다. 정부는 세수 부족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 없고 가계 역시 급증한 빚 탓에 쓸 돈이 부족해졌다. 정부와 가계 모두 경기 침체에 대응할 마땅한 '무기'가 없는 가운데, 향후 가계 빚이 더 늘어날 전망이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말 국가채무(지방정부 채무 제외)와 가계 빚은 총 3042조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명목 GDP(2401조원)의 127% 수준이다.
국가채무는 국채(국고채·국민주택채·외평채)·차입금·국고채무부담행위 등으로 구성되며 이중 국고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부채'다.
나라·가계 빚은 올 2분기에만 전 분기(2998조원)보다 44조원 늘었다. 이는 올 1분기 증가 폭(20조원)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이던 2021년 3분기(63조원) 이후 2년 3분기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올 2분기에는 국가채무와 가계신용 모두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2분기 말 국가채무는 전 분기보다 30조4000억원 증가한 1145조9000억원이다. 경기 부진 영향으로 2년째 세수 펑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상반기 재정 집중집행 기조까지 겹쳐 국고채 발행이 늘었고, 이는 결국 채무 급증으로 이어졌다. 뚜렷한 세수 기반 확충 없이 이어지는 감세 정책도 재정 기반을 취약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가채무가 큰 폭 증가하며 정부 곳간이 비어가면서 내수 진작을 위한 재정 카드를 쓰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 됐다.
내수 회복에 기여할 통화·재정정책 역량도 축소됐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올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불변)는 작년 같은 분기보다 2.9% 감소했다. 9개 분기 연속 줄어 역대 최장기간 내림세다. 2분기 감소 폭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분기(-4.5%) 이후 15년 만에 가장 컸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서도 민간소비는 재화 소비 부진으로 전 분기보다 0.2% 감소했고, 설비투자도 반도체 제조용장비 등 기계류를 중심으로 2.1% 줄었다. 결국 한은은 내수 지표가 감소한 점 등을 반영해 지난 22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0.1%포인트(p) 낮췄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예상보다 긴 고금리에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며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최근 수도권 집값이 상승세를 타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연기되고 있다. 가계부채가 다시 가파르게 늘어난 가운데 자칫 금리 인하가 '영끌' 투자 심리를 자극해 수도권 집값에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지난 22일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하면서 집값과 가계 부채 불안 등을 이유로 들었다. 정부도 빚에 시달리면서 가계 못지않게 이자비용 부담이 큰 상황이다. 작년 국고채·외평채·주택채 등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24조7000억원에 달했다.
가계신용은 1896조2000억원으로 2분기에만 13조8000억원 급증하면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주택 거래량 회복과 함께 관련 대출이 늘어난 탓이다. 실제로 가계신용 중 판매신용을 뺀 가계대출은 전 분기 말보다 13조5000억원 불었다. 특히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16조원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빚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5대 은행의 주담대 대출 증가 폭과 신규 취급액이 역대 최대 규모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7월 말 주담대 잔액은 559조7501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7조5975억원 증가했다. 이 증가 폭은 5대 은행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16년 1월 이후 시계열 가운데 월간 최대치다.
급증한 국가채무 탓에 내수를 부양할 정부 지출 여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까지 2년째 세수결손이 유력해지면서 내년 예산안에서도 총지출 증가율을 최대한 억제하는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국가채무가 늘어 재정건전성을 제약하면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유가 급등 등과 같은 대외 변수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지는 점도 문제다. 결국 자금이 없어 통화·재정정책 운용이 쉽지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로 금융 건전성을 강화하고, 의무지출 개혁으로 정부의 지출 여력을 늘리는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가계부채의 총량이 느는 것을 막는 게 아니라 가계부채의 건전성이 악화하는 것을 막는 데 정책 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KDI는 앞서 여러 차례 내수 진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밝혀왔다.
주형연·이민우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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