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기, 공급외엔 아무 대안 없어…그린벨트 과감히 풀어야"
강만수 前 기획재정부 장관
금리는 금통위 고유 권한 아냐
정부가 위임, 대통령이 최종 결정
그린벨트는 서민에겐 분노의 숲
非그린지역 다 풀어 공급 늘려야
세율 내릴수록 세입은 늘어나
저세율은 장기적인 증세 정책
종부세와 집값은 직접 관계 없어
세금으로 수요 억제는 방향 착오
만난 사람=주용석 논설위원
“높은 정도가 아니라 살인적이죠.”
‘지금 집값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인터뷰에서다. 그는 “공급 외에는 아무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상속세에 대해선 “없애는 게 맞지만 국민 정서상 어렵다면, 적어도 (상속세율을) 소득세율 이상으로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에 대통령실이 “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 고유 권한”이라고 한 데 대해선 “금리는 정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회고록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을 펴낸 강 전 장관을 지난 22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기재부 전신) 차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기재부 장관으로 위기에 맞섰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했습니다.
“딱히 잘했다, 잘못했다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경기가 위축돼 금리를 내리자니 물가 얘기가 나오고, 집값도 불안한 거죠. 한은이 굉장히 딜레마에 빠진 겁니다.”
▷대통령실에선 “아쉽다”고 했습니다.
“동결이 맞냐, 틀리냐와 별개로 대통령실이 ‘금리는 금통위 고유 권한’이라고 한 건 망발입니다. 금리는 정부의 고유 권한입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해 한은법을 개정할 때 금리 운용의 효율성을 위해 금통위에 권한을 위임했지만 한은법 92조2항에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결정한다’고 규정했어요.”
▷지금은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요.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 한은이 (미국만큼) 금리를 못 올렸어요. 그때 가계부채가 1000조원가량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두 배’가 됐어요. 가계부채가 많아진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처방은 거기서부터 나오는 거죠. 주택 공급 실패로 주택 가격이 오르니 가계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샀고 그러다 보니 소비가 줄고 경기는 위축되는데 금리를 내리려니 집값이 불안한 거죠. 엄밀히 얘기해서 한은 책임이 아니고 주택당국의 책임이죠.”
▷지금 집값이 굉장히 높습니다.
“높은 정도가 아니고 살인적이죠. 과거 IMF가 ‘PIR(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을 5 이하로 못 낮추면 모든 정책이 안 통한다’고 했어요. 그때 우리 PIR이 8, 9 정도였고 서울은 15, 16 정도였는데 최근 통계 보니 서울이 25까지 올라갔더군요. 25년간 월급 받아서 한 푼도 안 써야 집을 산다는 거예요.”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그린벨트를 풀었습니다.
“원래 그린벨트 제도 자체가 잘못 도입된 겁니다. 세계에 그런 제도가 없어요. ‘후손을 위해 보존한다’고 하는데, 당장 지금 세대가 살 집이 없는데 말이 되나요. 아파트값이 뛸 때 집 없는 서민에게 그린벨트는 분노의 숲입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서 내부적으로 그린벨트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는데 환경단체가 반대하니까 다는 못 풀고 일부만 풀었죠.”
▷수요 쪽에서 집값을 잡을 방법은 없나요. 정부는 대출 규제를 하는데요.
“과거에 보면 주택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 대책이 나와요. 지금 그런 대책이 있다는 건 주택 가격이 올라간다는 말이고, 시장에는 거꾸로 신호를 주죠. ‘집을 빨리 사야겠다’고. 부동산 불패론도 나오고요. 전에 부동산투기억제특별조치세란 것도 있었는데요. 수요 억제는 되는 게 아닙니다. 공급 외에는 아무 대안이 없어요.”
▷공급은 시간이 걸리잖아요.
“지금 공급하겠다고 해도 3년 뒤에나 분양이 되죠. 청약 제도는 당첨될지 안 될지도 모르니 효율성이 떨어지고요. 그래서 주문 주택 제도 같은 걸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예컨대 ‘내가 몇 년도에 결혼할 계획인데 어느 지역에 몇 평짜리 분양아파트를 사고 싶다’고 주문하면 정부가 책임지고 공급하는 거죠.”
▷그걸 어떻게 책임지나요.
“그러니 그린벨트를 안 풀면 안 돼요. 1차로 비(非)그린지역은 다 풀고 농지도 사실상 도시 가운데 들어 있는 건 다 풀어서 서민주택, 특히 신혼부부 주택을 공급해야 합니다. 그래야 출생률도 높아지죠.”
▷지난 정부나 현 정부나 신뢰성 있는 공급 대책을 못 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08년 위기 때 위기 대응 원칙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선제적으로, 둘째 결정적으로, 셋째 충분하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당시 대외지급 보증을 할 때 담당 국장이 300억달러면 충분하고 넉넉잡아도 500억달러면 된다고 했는데 내가 1000억달러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야 투자자들이 확실히 믿는 거죠. 그렇게 하니까 실제 (보증금으로) 우리 돈 10원 하나 안 들어갔어요. 주택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주택 젊은이들에게 ‘진짜 믿어도 되겠다’는 신뢰를 줘야 해요.”
▷정부가 세법 개정안에서 상속세 인하안을 냈습니다.
“세율을 내릴수록 세입이 늘어나는 건 통계가 말해줍니다. 사무관 시절 소득세와 상속세 최고세율이 70%였는데 내려갈수록 세입이 늘었습니다. 저세율은 장기적인 증세 정책입니다.”
▷야당은 ‘불로소득인 상속세율이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세율보다 낮으면 안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그런 이야기는 평생 처음 들었어요. 상속 재산은 평생 아버지가 근로소득세 다 내고 모은 건데 또 세금을 내야 하나요. 내가 소득이 생길 때, 즉 상속 재산을 팔아서 양도소득세 생기면 양도소득세 내는 거고 주식 배당이 나오면 배당세를 내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 다른 나라는 상속세를 없애잖아요. 그런 (야당의) 논리는 진짜 궤변이죠.”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건가요.
“없애는 게 맞는데 우리 국민 정서상 어렵다면 적어도 소득세율 이상은 하지 않는 것이 맞아요.”
▷금융투자소득세는 어떻게 봅니까.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해야 하니 경제적으론 당연한 건데 증권시장이 무섭잖아요. 정치적으로 못 견디는 거죠. 과장 때 주가가 떨어지니까 새벽 2시에 투자자가 장관 집 전화를 알아내 가지고 ‘우리 재산 다 날아갔는데 잠자고 있냐. ××야’ 한 적도 있어요.”
▷종합부동산세는 ‘정치 폭력’이라고 했는데, 올해 세법 개정에선 집값 불안 때문에 빠졌습니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종부세와 집값은 직접 관계가 없어요. 오히려 거꾸로 가기도 하죠. 세금으로 수요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 완전히 방향 착오예요.”
▷지금 세계 경제에서 우려되는 건 뭔가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미·중 갈등 어느 하나도 해결 전망이 보이질 않아요.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원인이 필요 없이 살이 많이 찐 거잖아요. 치료법은 당연히 덜 먹고 운동하고 체중을 빼야 하는 건데 거꾸로 했어요.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고 인류 최초로 은행이 보관료 받는 마이너스 금리로 갔고요. 그러니 그때보다 몸은 더 비대해졌죠.”
▷우리 경제에서 최우선 과제는 뭐라고 봅니까.
“저출생, 서민주택, 사교육 세 가지 아닌가 합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대응책을 만들고 추진했는데 모두 흐지부지돼 가슴 아팠습니다. 문제의 배후엔 어느 선진국에도 없는 그린벨트와 고교평준화가 있고 여성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치려고 했는데 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이해관계자의 반대를 넘기 어려웠다는 건가요.
“외환위기 때 (컨설팅 회사인) 부즈앨런해밀턴이 유명한 이야기를 했죠. ‘달러보다 더 부족한 것은 한국의 리더십이었다. 말만 있고 행동은 없다’고. 그러니까 위기가 오는 거죠. 국가 위기는 리더십 실종인 겁니다.”
▷지금은 여소야대여서 더 어려운 상황 아닌가요.
“옛날에는 소수 횡포 때문에 일이 안 됐어요. 다수당이 아무것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류 국가가 되려면 다수결이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회고록에 썼는데 요즘은 과거에 상상도 못한 다수의 횡포가 심하죠. 지금 쓴다면 다수결은 관철돼야 하지만 합리적 소수 의견도 존중돼야 한다고 쓰겠어요. 민주는 다수결이고 공화는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철학이잖아요. 민주도 중요하지만 공화도 중요하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요.”
외환·금융위기 맞섰던 韓 경제정책의 산증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누구보다 굴곡이 많은 관료였다. 1997년 재정경제원 차관 때 외환위기로 사표를 썼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땐 기재부 장관으로 위기와 맞서는 과정에서 고환율 정책으로 논란이 돼 쫓겨나듯 물러나야 했다. 이후 한국 경제가 ‘V자’ 반등에 성공하자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재정금융정책을 “교과서적 사례”라고 극찬했고 그의 경제정책도 재평가를 받았다. 2022년 이후 소설가로 등단해 첫사랑 얘기인 <동백꽃처럼>, 공무원 시절 고뇌를 담은 <세종로 블루스>를 썼다. 최근엔 40여 년간의 공직 생활을 정리한 회고록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을 펴냈다.
■ 약력
△1945년 경남 합천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제8회 행정고시 합격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원 차관
△기획재정부 장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산업은행금융지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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