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여야 대표회담, 스몰딜로 시작을

신헌철 기자(shin.hunchul@mk.co.kr) 2024. 8. 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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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한 30년 전 1994년 여름, 한반도에 최악의 폭염이 닥쳤다.

여야 대표 회담은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오늘의 쟁점에 함몰될 일이 아니다.

연금이나 의료 개혁 등 구조적 이슈에 대해서도 여야 대표가 공론장을 만들기로 합의하면 큰 성과다.

여야 대표도 여의도를 벗어나 하루를 온전히 함께 지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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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정치양극화는 뉴노멀
그래도 합법적 경쟁자 인식을
韓·李 대표 만남은 좋은 기회
정치적 상징될 장소 택해보길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한 30년 전 1994년 여름, 한반도에 최악의 폭염이 닥쳤다.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일으킨 그는 죽던 해마저 또 다른 기억을 각인시켰다.

1994년의 폭염 일수와 열대야 기록은 2018년에야 깨졌는데 불과 6년 만인 올해 신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이 여름을 힘겹게 보내면서 동남아시아 같은 여름 날씨는 이제 '뉴 노멀(New normal)'이 됐음을 실감한다.

22대 국회와 거대 정당의 전당대회를 지켜보며 정치적 양극화도 뉴 노멀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 지난 4년에 이어 앞으로 4년간 국회를 장악하게 된 더불어민주당은 입법 권력을 최대치로 사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21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승만 대통령(45회)을 빼고 역대 대통령의 거부권 횟수를 모두 더한 것과 같다.

100m를 홀로 질주하면 다른 편이 바통을 받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의미한 게임을 국민은 비싼 관람료를 내고 지켜보고 있다.

여야는 상대 정파를 '합법적 경쟁자'가 아니라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치란 국민을 위해 서로의 차이를 좁히면서 작은 성공과 실패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차이를 일부러 키우면서 극단화의 과실을 정치인이 누리는 구조가 됐다. 국민이 먼저 분열돼서 정치가 양극화된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비타협적 태도가 온도와 압력을 높이고 있다는 얘기다.

마침 반가운 기회가 찾아왔다. 당권을 다시 거머쥔 야당의 일인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보수 진영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 회담이다. 이 대표의 코로나19 감염으로 애초 25일 열릴 뻔한 회담이 미뤄진 것은 오히려 다행스럽다. 잠시 뒤로 물러나 원경을 살펴볼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여야 대표 회담은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오늘의 쟁점에 함몰될 일이 아니다. 한국 정치의 구조적 교착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 시스템의 복원이 더 중요하다. 쟁점과 현안은 빅딜이 아니라 스몰딜이면 족하다.

지난 총선에서 여야가 내세운 공통 공약이 적게는 30여 개, 많게는 80여 개에 달한다. 지역의료 재정비나 반도체 산업 지원부터 저출생·고령화, 기후 대응, 고금리 완화, GTX 사업 촉진까지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민생법안이 즐비하다. 공통 공약과 관련된 법안부터 집중 심사하기 위해 여야 이행특별위원회를 만들면 어떤가. 연금이나 의료 개혁 등 구조적 이슈에 대해서도 여야 대표가 공론장을 만들기로 합의하면 큰 성과다.

회담까지 시간을 다소 벌면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볼 여지도 생겼다고 본다. 의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공간의 상징성이다. 북유럽 정치는 숙의민주주의라는 말로 압축된다. 그중에서도 스웨덴에는 '하르프순드(Harpsund)'라는 상징적 장소가 있다. 무려 23년간 총리를 지냈지만 은퇴 후 머물 집도 없었다는 정치인 타게 엘란데르는 스톡홀름 서쪽으로 2시간 거리인 이곳에 별장이 있었다. 코르크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운영했던 카를 비칸데르가 유언으로 국가에 기부한 곳이다. 엘란데르는 격주 목요일에 이곳에서 노사 대표와 정치인을 불러 사회적 합의를 진척시켰다. 대화가 막히면 호수에 띄운 나룻배의 노를 함께 저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여야 대표도 여의도를 벗어나 하루를 온전히 함께 지내보면 어떨까 한다. 산업·민생 현장을 같이 둘러보는 일정도 좋다. 회담 장소로는 여수, 거제, 제주 등 멀리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곳도 좋겠다.

삼각형의 한 변이 원의 지름보다 크다면 원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한국 정치가 그런 형국이다. 여와 야라는 꼭짓점을 잇는 지름을 줄여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탄력성을 갖춘 양당 대표에게 발상의 전환을 주문한다.

[신헌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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