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 현재를 말하다”.. 전미래시제와 어느 이방인의 철학적 조우, 혹은 지나간 내일을 기억함

제주방송 김지훈 2024. 8. 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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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부터 8일 서귀포 예술의 전당 전시실서
아티스트 양아치, 국제학교 청소년 작가들 참여
김가빈 作 ‘21세기 오필리아’(2024)


#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하나의 경계를 마주합니다. 그 경계는 물리적일 수도, 혹은 심리적일 수도, 또 시간적으로 구획될 수 있습니다. 제주는 이런 경계가 극적으로 드러나기에 이성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너무도 필요충분 조건을 다 갖췄습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 부합해 ‘이방인’들은 자신의 존재가 어디에 속하는지, 또 미래 자신들은 어떤 위치에 있을지를 끊임없이 경계에 기대거나 또 대면하며 탐구와 고민을 거듭합니다. 경계와 고립, 그리고 미지의 시간 속에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예술적 언어로 풀어냅니다.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의 입을 잠시 빌어오자면 현대인의 정체성을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것으로 규명한 ‘유목적 사유’와도 유사해, 더 이상 하나의 고정된 자아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디지털 노마드’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 : Alien’은 그래서, 이런 유동적 정체성을 탐구하면서 이방인으로서 경험이 어떻게 새로운 정체성의 미학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지 매우 친절하게 제시합니다.

현대인의 정체성은 더 이상 하나의 고정된 ‘점’의 상태에 머물지 않아,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하는 ‘유목민적 자아’로 정의되고 전시 중심에 그런 이방인으로서의 경험 즉 하나의 장소나 시간에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 존재의 모습을 포착하려는 시도를 담았습니다.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관람객에게 현대 사회의 유동성과 경계 그리고 미래적 정체성을, 묻는 전시입니다.

제주도 예술 단체인 ‘카사아트(Casa Art)’가 개최하는 ‘이방인 : Alien’ 전시가 9월 3일부터 8일까지 서귀포 예술의 전당 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양아치 作 ‘찬란한 순간’(2023)


■ 전미래시제와 예술적 상상력의 결합.. 정체성 “재구성하다”

대한민국 대표 미디어 아티스트인 양아치 작가의 영상 작품과 더불어 미래의 예술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예술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독특하고 몰입감 있는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자리입니다.

전시는 제주에 거주하는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하려 합니다.

서귀포에 거주하는 ‘청소년 예술가 작품 공간’과 ‘마스터스 작품 공간‘, 2개의 주요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각 공간은 이방인으로서 경험과 미래에 대한 상상을 예술적 시각으로 해석해 선보입니다.

앞서 전시는 “제주에서의 정체성과 경험, 그리고 '전미래 시제'를 예술로서 탐구”한다는 전제를 내걸었습니다.
사실 프랑스어의 독특한 시제인 ‘전미래시제 (le futur antérieur)’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준으로, 그 미래에서 더 이전에 발생할 사건을 표현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미 완료된 일’을 표현하면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착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전시는 이런 시제를 중심으로,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예술적 탐구를 제안합니다.
단순한 언어적 구조를 넘어,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전시, 작품을 다시 바라보며 생각을 곱씹게 만듭니다. 시간을 선형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을 탈피해, 마찬가지로 ‘경계’를 넘나드는 사고를 요구합니다.
마치 들뢰즈의 시간 이미지와도 유사해 현재, 과거, 그리고 미래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이동하는 시간의 의미조차 무력화시키는 주관적 서사가 배제된 유동적 구조를 상기시킵니다.

‘전미래시제’ 사고를 전제로, 도래하지 않은 사건을 예측하거나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전시는 2개 공간을 구성해 선보입니다.
 

하다현 作 ‘바비’(2024)


■ 유동적 정체성의 미학.. ‘이방인’이 그리는 미래적 초상

‘청소년 예술가 작품 공간(Young Talent Zone)’은 서귀포 대정읍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니며 미래 예술가를 꿈꾸는 청소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이들은 ‘전미래시제’를 보다 더 직접적으로 반영해 작품에 투영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상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그 정체성이 미래에 어떻게 발현될지를 예술적 언어로 표현합니다.

단순히 현재의 불안과 기대를 담은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미래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려는 시도입니다.

‘마스터스 존(Masterworks Zone)’에선 대한민국 대표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 작가와 ‘카사아트’ 그리고 ‘화이트디어’의 대표 작품들을 전시합니다. 양아치 작가의 영상작품들(‘가파도’, ‘찬란한 순간’)은 제주의 풍경 속에서, 그리고 그 너머의 시공간 속에서 이방인의 경험을 미래적 시점으로 확장하고 우리의 정체성이 어디에서,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제시합니다.

카사아트의 작품은 정체성에 대한 초상화 작업을 통해 이방인의 미래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또한, 화이트디어의 친환경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의 가구들이 전시되어 지속 가능성과 미래의 삶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합니다.

양아치 作 ‘찬란한 순간’(2023)


■ “불확실성, 가능성을 시각화한다는 것”

전시 그리고 작품들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의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지, 미래 관점에서 우리의 현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이런 질문들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며 ‘전미래시제’란 장치가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실 ‘전미래시제’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 미래에서 우리는 이미 어떤 일을 완료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통해, 현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전시는 이런 상황들을 시각화하며, 관람객들에게 미래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 과정에 관람객들은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자신을 정의하면서, 자연스레 정체성의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성격을 체감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카사아트(Casa Art)’는 2022년 7월 설립한 예술 단체로 로컬 기반의 예술 교육, 전시, 교류, 그리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시각예술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역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제고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설립 이후 국내외 예술 교류와 다수의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지역 문화예술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전시기간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주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무료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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