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페’ 와본 사람 손들엇!…힙함이 넘실거린 유성의 여름밤
“어랏. 이렇게 힙하다고?”
‘지자체가 주최하는 축제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며 축제장에 들어선 참이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서 일하는 공무원 친구 얼굴이나 보러 간 것뿐인데, 예상치 못한 ‘힙함’에 당황했다. 지난 24일 토요일, 여름밤의 ‘유림공원’은 재즈선율과 쌉쌀한 맥주향과 젊은 열기로 일렁이고 있었다.
지난 23일~25일까지 열린 ‘유성 재즈&맥주 페스타’(유재페)는 대전에서 유일한 재즈페스티벌이다. 2022년부터 매해 여름 유성구 유림공원(약 5만㎡)에서 열린다. 유림공원이 유성천과 갑천, 큰 차도 사이에 삼각형 모양으로 ‘섬’처럼 자리하고 있어 유재페를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같다고도 한다. 대부분 유료인 다른 음악페스티벌과 달리 유재페는 무료다.
“대전 사람 다 여깄는 거 아녀?”
인파를 뚫고 겨우 만난 친구에게 괜히 투덜대며 말하니, “작년보다 더 많이 왔다”고 했다. 재즈공연을 볼 수 있는 동편뿐 아니라 재즈버스킹·재즈댄스 공연이 펼쳐지고 포토존이 있는 서편(유성라라랜드) 잔디밭에도 빈틈없이 돗자리가 깔려있었다. 경찰 추산으로 첫해인 2022년엔 7천명 , 지난해엔 1만7천명이 왔는데, 올해는 23 ∼24일 이틀 동안만 1만8천여명이 유재페를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제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성인인증 팔찌도 이틀간 1만여개 발급됐다.
무엇보다 20∼30대 청년들이 정말 많았다. 올해 처음 유재페에 와봤다는 지현서(23)씨는 “다른 지자체 축제처럼 ‘노잼’(재미없음)일 거라 생각해 대전에 살아도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지난해 다녀온 친구가 ‘진짜 재밌다’고 해 함께 왔다. 막상 와보니 정말 재밌고, 힙한 분위기라 신난다. ‘노잼 대전’에 이런 축제가 있었다니, 놀랍다”며 웃었다.
지난해 이어 올해 축제장 컨셉도 ‘발리’였다. 열대식물과 라탄 소재 소품, 카바나(수영장·해수욕장·야영장 등 실외에 설치된 천막이 있는 공간) 등을 활용해 휴양지 느낌이 나도록 행사장을 꾸몄다. 동편 입구 간판과 부스, 간이 테이블 등은 폐목재로 만들었다. 축제장 양옆에선 더랜치브루잉·바이젠하우스(대전), 더테이블브루잉(경기 고양), 아트몬스터브루어리(경기 군포), 앰비션브루어리(경기 구리), 고부루(제주 서귀포), 바네하임브루어리(경기 남양주), 화이트크로우브루잉(강원 평창), 안동브루잉(경북 안동), 다이노브루잉(경남 창원) 등 전국의 유명 수제맥주 브루어리 부스와 10대의 푸드트럭이 맥주와 음식을 팔았다. 사람들은 돗자리에 앉거나 돌아다니며 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동편 끝의 무대에선 재즈밴드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올해는 유성재즈악단, 유로피언 알렉스밴드, 래브드집시, 로페스타집시밴드, 스카재즈유닛, 웅산, 정지석 빅밴드, 문재즈밴드, 집사, 카리나 네뷸라, 겟츠, 재즈베리, 박주원밴드, 고상지 등 14개 팀이 유성의 여름밤을 재즈로 물들였다. 수제맥주는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판매하고, 공연은 저녁 6시30분부터 시작해 밤 10시쯤 마무리 됐다.
지난해 이어 두번째로 유재페에 참가한다는 김도훈(47)씨는 “지난해보다 행사장도 더 잘 꾸며져 있고, 참여한 아티스트나 업체도 많고 다양한 것 같다”며 “다른 지역의 음악축제도 가봤지만, 유재페는 라인업도 좋고 섬같은 장소에서 해 축제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재즈 장르만 공연하는 것도 축제를 더 ‘힙’하게 느끼게 한다. 유재페도 자라섬재즈페스티벌처럼 명맥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유성구가 유재페에 쓴 예산은 총 3억원이다. 다른 지자체 축제에 들어가는 돈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저예산 축제’다. 유재페를 담당하는 심유리 유성구 문화예술팀 주무관은 “예산 대부분은 공연자 섭외에 들어갔다. 행사장을 꾸미는 데는 폐목재와 지난해 축제 때 사용한 물품을 최대한 활용했다. 올여름 유독 더워 걱정이 컸는데,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보통 지역 축제는 외지 사람들을 오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유성구는 대전시민부터 즐기고 재충전할 수 있는 축제를 지향하려 한다.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는 데 축제의 역할을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도 재밌지 않은 축제에 누가 오겠는가”라며 “유성구 축제는 많은 예산을 쓰지 않고도, 시민 반응과 평가가 좋은 편이다. 콘텐츠가 좋고 정성을 들이면, 큰돈 안 들여도 얼마든지 좋은 축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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