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아이가 아냐, 바로 당신이야”...빙의된 소녀·퇴마사·TV쇼 제작진, 진짜 악마는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8. 2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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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31]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는 성공한 방송인이었다. 전국적인 명성을 지니고 토크쇼를 진행했다. 부와 명성을 한 번에 거머쥐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실패했다는 기분을 맛봤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그를 보고 ‘1등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했는데, 그의 프로그램은 언제나 2등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인 미국에서 2등 방송의 사회자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평생의 소원이겠지만, 1등으로 시선이 맞춰져 버린 그에겐 밑바닥이나 다름없었다.

출세하고도 패배감에 빠져 있던 그는 인생을 건 도전을 하게 된다. 시청률 청취 집계일인 핼러윈 데이에 신들린 아동을 출연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출세하고도 패배감에 빠져 있던 델로이는 인생을 건 도전을 하게 된다. 시청률 청취 집계일인 핼러윈 데이에 신들린 아동을 출연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올랄라스토리]
‘성공한 남자’들은 왜 무리수를 두는가
‘악마와의 토크쇼’(2024)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많은 것을 갖춘 남자들이 왜 무리수를 두다가 끝내 미끄러지고 마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인간은 현 상태의 유지가 아닌 ‘성장’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좀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일 ‘조금 더 많이’ 갖기를 바라게 되는 게 자연스럽단 이야기다. 그에게도 2등이 목표였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등이 된 순간 그것은 새로운 기준점이 됐고, 1등을 하지 않는 이상 ‘정체’를 넘어 ‘역성장’하고 있다는 좌절감까지 안게 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많은 것을 갖춘 남자들이 왜 무리수를 두다가 끝내 미끄러지고 마는가. [올랄라스토리]
그래서 성실하게 한 계단씩 올라왔던 주인공 잭 델로이(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는 귀신 들린 아동을 등장시켜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된 것이다.

신들린 인간과 토크쇼를 한다는 건 매력적인 방송 아이템이다. 귀신이 빙의한 아이를 통해 신의 존재가 어렴풋이라도 드러난다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반대로 사기라는 점이 드러난다면 신들린 것처럼 연기한 아이와 그의 보호자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다.

그의 ‘올빼미 쇼’에 등장하는 영매. 어딘가 어설픈 능력으로 비웃음을 사지만, 중간에 심각한 모습을 드러낸다. [올랄라스토리]
델로이와 프로그램 제작자는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올빼미 쇼’에 악마에게 빙의된 소녀와 그녀를 보호하는 교수, 초능력자 사냥꾼을 동시에 초청한 이유다. 초능력자 사냥꾼은 영매와 마술사 등이 행하는 신비로운 일 뒤에 숨겨진 사기 행위를 밝혀내는 인물이다.

소녀는 ‘사탄교회 집단 자살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다. 그 어떤 아동보다도 더 섬세하게 보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델로이와 제작진은 생각이 다르다. 생방송 중에 소녀에게 악마가 빙의하는 모습을 기어코 보여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유도한다. 빙의가 진짜든 아니든 소녀가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방송 출연이 소녀에겐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점은 고려되지 않는다. [올랄라스토리]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단락)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순간은 언제였을까
토크쇼가 진행될수록 시청률은 치솟는다. 영매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소녀가 악마의 목소리를 내는 등 일반적인 방송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방송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제작진과 MC는 교수가 만류하는데도 소녀 안의 악마를 더욱 자극하려고 애쓴다.

인간성을 도외시한 실험의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델로이는 깨닫게 된다. 이 쇼는 소녀 안의 악마를 깨워내는 작업일 뿐 아니라 델로이 자기 내면의 악마를 직면하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아동의 권리는 무시한 채 ‘악마와의 토크쇼’를 기획한 그 욕심이 바로 ‘악마성’이라는 것이다.

악마에게 빙의된 소녀의 모습 [올랄라스토리]
소녀 안의 악마가 만든 환상 속에서 그는 이미 사망한 자기 아내를 만난다. 아내는 말기암으로 사경을 헤매던 당시의 모습으로 델로이 앞에 나타나 그의 진실을 일깨워준다.

“자기의 영혼은 저 사람들(시청자)한테 있어. 아직도 그래”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순간은 악마와의 토크쇼를 기획하고, 소녀 안의 귀신을 깨워보겠다고 결심한 때가 아니란 것이다. 사실은 훨씬 예전에 영혼 같은 건 던져버리고 말았다. ‘1등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마음먹었던 그날, 델로이는 이미 악마에게 영혼을 넘긴 것이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는 환상 속에서 델로이의 진실을 들려준다. [올랄라스토리]
소망하던 것을 거머쥘 수 있다면 “당신도 영혼을 팔 건가요?”
‘악마와의 토크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주인공 델로이가 카메라를 보며 자꾸 말을 거는 장면이 그렇다. 현대 극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이 금기시되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토크쇼이자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인물이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걸어도 된다. 이런 장치를 적극적으로 쓰며 스크린 바깥의 관객을 자꾸 영화 속 상황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일례로 자신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와 버렸음을 깨달은 델로이는 카메라를 보며 “당장 TV를 끄라”고 얘기한다. 이건 작품 속 TV 시청자에게 하는 말이자, 바로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된다.

영화는 악마와 거래한 델로이를 통해 관객이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간절히 염원한 ‘그것’을 가질 수 있다면 델로이처럼 영혼까지 걸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우당탕’ 소동극 같은 구성 속에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

‘악마와의 토크쇼’ 포스터 [올랄라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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