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교토국제고의 감동이 마냥 좋을 수 없는 이유

김종석 2024. 8. 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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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 권위의 제106회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한국계 교토국제고. 일본 고교야구연맹 홈페이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한국인이 세운 일본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는 지난 며칠 동안 국내 방송에서 애국가보다 더 자주 나왔을지 모릅니다. 이 학교가 지난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끝난 제106회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결승에서 교토국제고는 연장 10회 접전 끝에 도쿄 간토 다이이치(關東 第一)고를 2-1로 꺾고 우승했습니다. 경기 종료 후 이긴 팀 선수들이 자기 학교 교가를 부르는 게 대회 전통. 이 경기를 생중계한 NHK에도 선수와 관중석의 이 학교 동문이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장면이 일본 전역은 물론이고 유튜브, 인터넷을 통해 세계 구석구석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한때 박찬호나 류현진이 뛰던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가 마치 한국 팀처럼 국내에서 열띤 응원을 받았듯 교토국제고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교 팀이라도 된 듯 성원이 집중됐습니다.  

재일교포 3세 출신 최윤 OK 금융그룹 회장(대한럭비협회 회장)은 SNS를 통해 “‘0.025%' 확률을 뚫은 기적 같은 우승이다. 재일교포 한 사람으로서 중계를 보는 내내 마음 졸이며 응원했는데, 종료 순간 긴장이 풀려 눈물이 터져 나올 정도로 벅찬 감동이 차올랐습니다”라며 “일본 야구 성지에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지는 기적과 같은 신화를 써주시길 열심히 응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교토국제고 교가가 애국가하고 느낌이 참 비슷해서 듣는 이도 먹먹하다. 고시엔 결승이 일본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일부 일본인들의 섭섭한 반응도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다. 참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라고 평가하더군요.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친일, 반일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진영싸움을 펼치던 정치권도 일제히 한 목소리로 ‘기쁜 소식’ ‘경사’ ‘기적’ 같은 표현까지 동원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더군요.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는 그저 밥숟가락 하나 얹겠다는 제스처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진>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출정식 모습. 교토국제고 홈페이지

이처럼 교토국제고의 여름 고시엔 제패에 열광하고 감동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 학교는 일본의 패망 직후인 1947년 재일교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세운 민족학교 ‘교토조선중’이 뿌리라고 합니다. 온갖 차별과 설움 속에서 명맥을 이어가던 이 학교는 1990년대 들어 입학생이 급감하고 재정난에 시달려 폐교 위기에 몰리자, 한국 외교부, 재일대한민국 민단 등 동포 단체들과 상의해 일본 학교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2003년 일본 정부 인가를 받은 뒤 이듬해부터 일본인에게도 교문을 열었다고 하네요. 현재 재학생 159명 중 70%가 일본인이라고 합니다. 한국 정부는 전체 운영비의 40%에 해당하는 약 16억 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도 30%가량인 약 12억 원을 보태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수업료와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게 학교 관계자 설명입니다. 

야구부 창단은 학교 존립을 위한 고육책이었습니다. 1999년 야구부 창단을 계기로 일본 남학생들의 입학이 늘어나게 됐습니다. 때맞춰 한류 문화도 일본인 학생 증가에 한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재일본 대한체육회를 이끌었던 최상영 영스틸 회장은 “교토국제고가 3년 전 여름 고시엔 4강에 들면서 이젠 지방고교가 아니라 전국구 팀이 됐다. 뛰어난 성적을 내면서 대학이나 프로야구 진출도 늘어나다 보니 좋은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 몰려들고 있다. 교민들에게는 큰 자부심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진> 교토국제고 교표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은 작은 기적이라는 찬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교생이 150명도 안 되는 미니 학교인 데다 학교 운동장이 정규 규격에서 20m나 짧은 70m에 불과해 정상적인 야구 훈련이 힘들어 인근 야구장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일본 고교야구연맹에 따르면 올해 등록된 고교 야구부만 3798교에 이르며 선수만도 1,2,3학년을 합해 12만7031명에 이른다네요. 여름 고시엔은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별 예선을 거쳐 49교가 나오기에 본선 무대를 밟는 것만도 하늘의 별 따기에 비유됩니다.

교토국제고는 77개 학교가 나선 교토 지역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고시엔 티켓을 따냈습니다. 고시엔 구장에서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야구장의 흙을 담아 소중하게 모십니다. 이번에 우승한 교토국제고 선수들도 그렇게 하더군요. 

부러우면 진다고 했던가요. 교토국제고가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지켜본 국내 야구팬들의 심정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 결승전을 가득 메운 관중 수는 3만6000명을 찍었습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는 “국내 고교야구 대회의 경우 보름 정도 일정 총 관중수가 5000명 안팎이다”라고 전했습니다. 1일 평균 관중 수가 300∼400명에 불과한 셈입니다.

1980년대까지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고교 야구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언론사 주최로 대회가 해마다 열리고는 있으나 야구 관계자나 선수 부모를 제외하고는 대회가 열리는지조차도 모를 정도입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된 지 오래죠. 한때 고교야구장에는 암표상까지 기승을 부리기도 했는데. 물론 대회 주최사를 제외한 나머지 미디어의 무관심도 고교야구장의 찬 바람을 부추겼다는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공부하는 운동부를 만들겠다며 도입한 주말리그 제도는 오히려 학업과 운동을 모두 저해하는 ‘나쁜 정책’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출산율 저하 여파로 선수 확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으며 경기력 저하가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물론 90여개 팀에 불과한 한국 고교 야구와 일본을 비교하는 건 그야말로 무리겠지만요. 

성인 야구의 텃밭이 되는 고교 야구의 침체는 한국 야구의 국제경쟁력 약화를 불렀습니다. 비단 야구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 구기 종목은 어느새 대부분 국내용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끝난 파리올림픽에서 한국은 구기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여자 핸드볼팀만이 출전했으나 그마저도 예선탈락에 그쳤습니다. 모든 구기 종목에 출전해 세계 정상의 팀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펼친 일본과는 대조적입니다. 


<사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우승 신화를 쓴 한국야구 대표팀.

도쿄올림픽에서 야구 금메달을 딴 일본은 야구가 다시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하는 2028년 LA올림픽에서 정상을 노리고 있습니다.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금메달이라는 신화를 썼지만, 어느새 ‘아~ 옛날이여’를 부를 허망한 처지가 됐는지 모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는 구기 종목을 비롯한 엘리트 스포츠를 부흥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시스템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육부와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현장의 살아 있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겠지요.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는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 통합 이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산하 단체를 사유화하려 한다거나 선거에서 표와 직결되는 생활체육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더군요.

다시 일본 고교 야구로 돌아가 볼까요. 지난해 여름 고시엔에서는 게이오고가 1916년 첫 우승 이후 무려 107년 만에 다시 우승을 차지하는 역사를 썼습니다. 당시 승리의 주역이었던 한 선수는 “야구부 내에서 학습 모임을 만들었다.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분들과 위인의 성공체험 등에 관한 기사를 읽고 그룹별로 감상이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동료들의 좋은 점, 장점을 찾아 서로에게 전하고 칭찬하는 프로그램도 시행했다. 이를 통해 팀 전체가 긍정적인 기분이 될 수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게이오 야구부 부훈에는 ‘상대의 좋은 플레이를 칭찬하라’고 돼 있다고 하네요. 

지난해 게이오고 3학년 가운데 40명 정도가 일본의 명문 게이오대에 진학했으며 14명이 야구선수로 뛰고 있다고 합니다. 14명 가운데는 법학과와 상학과에 다니는 학생도 있습니다. 중고 시절부터 이어온 학업과 운동의 두 마리 토끼를 대학에서도 계속 따라가야 하는 구조입니다.

일본 쓰쿠바대 교수 출신으로 일본 스포츠 전문가인 홍성찬 서울여대 스포츠운동과학과 교수는 “일본인 학생들이 고시엔 우승을 위해 한국계 학교로 가서 한국 관련 정규수업까지 받아 가며 그 목적을 이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꿈을 이루며 성장한 뒤 그런 성취감과 기쁨을 다음 세대에 돌려주려고 한다는 점에서 선순환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운동 특기생이면 2000년부터 대학의 동일 계열 학과에만 진학할 수 있어 체육 이외의 전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전 세대는 다양한 전공으로 교제의 폭을 넓히며 자기 계발에 공을 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프로농구 SK 전희철 감독(92학번)은 대학 시절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습니다. 전 감독은 “대표팀 합숙 등으로 쉽지는 않았지만, 틈나는 대로 수업에 들어가 친구들을 사귀며 인생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프로 선수 은퇴 후 프런트 근무에도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학생 운동 선수의 학습권 등을 참작할 때 운동부의 학업성취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졌다면 이젠 대학 학과 선택의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로 대학 입학생들도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 야구에서는 3개의 ‘F’를 소중히 한다고 합니다. ‘페어플레이’와 ‘파이트’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프렌드십’이라고 합니다. 이는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떠나 스포츠가 주는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요. 교토국제고가 대한해협 너머에서 보내온 진정한 감동도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토국제고의 우승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다만 교토국제고로 유학을 떠나는 한국 고교 야구 선수가 쏟아지는 일만큼 없었으면 합니다. 한국 학원 스포츠의 정상화에도 교토국제고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요.


<사진>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토국제고. 교토국제고 홈페이지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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