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으로 지역의료 붕괴만 빨라져”···비수도권 시민들 발만 동동

김송이 기자 2024. 8. 2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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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의료원이 진료 축소에 들어간 지난 7월12일 서울 성북구 고대안암병원에서 한 환자가 이동용 링거대를 잡은 채 주저 앉아 있다. 한수빈기자

경남 양산시 웅상지역에 사는 진재원씨(45)는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노심초사하며 지낸다. 지난 3월 지역 내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던 웅상중앙병원이 문을 닫은 이후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이 가장 가까운 곳이 됐다. 진씨는 25일 “차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지역의 어르신들이 병원에 가는 방법은 4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뿐”이라며 “어렵게 부산이나 울산에 있는 병원까지 가더라도 응급실 문턱도 못 넘어가고 돌아와야 한다고 걱정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6개월째 이어지면서 비수도권에 사는 시민들은 수도권보다 더 극심한 의료공백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며 내세운 ‘지역의료 강화’가 길어진 의·정 갈등으로 무색해지면서 “정부가 지역의료 붕괴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들은 ‘공공의료 강화’가 빠진 의료개혁은 지역의료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진씨는 10년 전에도 이미 한 차례 종합병원이 폐원해 1년여간 의료 공백을 겪었다고 했다. 해당 병원은 가까스로 다시 인수자를 찾아 문을 열었지만 10년을 채 못 버티고 수익성을 이유로 다시 문을 닫았다. 진씨는 “전국의 지역 소재 민간 병원들은 수익성이 떨어지니 없어지길 반복하고 있다”며 “고령화·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공공이 그 역할을 대신해줘야 하는데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모두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핑계로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의료체계를 지켜오던 공공병원이 사라지면서 의료 인력 유출이 심화된다는 우려도 이어진다. 광주에 사는 16년차 간호사 김승연씨(38)는 지난 10년간 일해온 광주제2시립요양병원에서 지난해 말 일자리를 잃었다. 적자가 크다는 게 이유였다. 코로나19 환자를 받으며 적자가 쌓였지만 운영 정상화를 위한 지원은 없었다. 민간 요양병원의 비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 고령·치매 환자들이 공공병원을 잃은 것은 물론, 해고된 김씨와 그의 동료들도 광주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김씨는 의료 공백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는 “광주 내 종합병원인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기독병원 모두 동쪽에 5분 거리로 몰려있어 다른 구에서 응급사고가 나면 가뜩이나 골든타임 안에 소생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불균형에 대해 이미 5년도 훨씬 전부터 이야기가 나왔고 공공병원의 필요성이 제기돼왔지만 아무런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는 지난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을 찾아 이같은 목소리들이 담긴 ‘지역 의료 공백 해결을 촉구하는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의 요구안’을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현장에 모인 지역 주민과 의료계 종사자 200여명은 “의대 증원 이슈에 지역의료 문제는 실종됐다”며 “지역의료를 위한 유일한 답은 공공의료”라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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