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교육, 교육 본질을 역행하고 있다"
이재정 전 경기교육감 "교육의 1주체인 학생을 위한 교육 돼야" 강조
이재정 전 경기도교육감이 현재의 경기교육에 대해 ‘교육의 역행’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민선 3∼4기 경기도교육감을 지낸 이 전 교육감(현 대한적십자가 경기도지사 회장)은 지난 24일 삶을 가꾸는 교육자치포럼이 개최한 ‘8월 경기교육포럼’에서 학생인권조례와 경기꿈의학교 및 과학고등학교 신설 추진 등을 거론하며 이 같이 밝혔다.
‘이재정 전 경기도교육감과 함께하는 경기교육의 지나간 길, 나아갈 길’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은 경기교육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한적십자가 경기도지사에서 열린 이번 교육포럼은 사전에 온라인을 통해 접수한 질문에 대해 이 전 교육감이 답변하는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민선 1기 ∼ 4기의 경기교육, 핵심은 ‘혁신’
이 자리에서 이 전 교육감은 먼저 자신의 임기에 대해 "2014년 처음 선거에 나선 당시 첫 방송토론이 있던 날,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8년의 임기동안 가장 고통스럽고, 슬프고, 안타깝고 힘든 일이었다"며 "그와 동시에 ‘어떻게 교육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또 ‘경기교육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며, 민선 1∼2기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부터 자신의 3∼4기에 이르기까지의 경기교육을 ‘혁신’으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 경기교육에서의 혁신의 개념에 대해 ‘학교의 문화와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와 ‘혁신의 개념을 학교에 접목시켜서 변화시키고, 그 과정에 학생과 학부모 및 교사가 모두 공감대를 이루는 문화의 정착’이라고 밝혔다.
이 전 교육감은 "경기교육은 김상곤 전 교육감 때부터 시작된 ‘혁신’을 통해 ‘어떤 학교를 만들까’를 고민했고, 결국 ‘혁신학교’를 통해 교육의 혁신이 실현됐다"며 "또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교육분야에 바라는 것임에도 학교가 제공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학교 밖 학교로 ‘경기꿈의학교’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꿈의학교를 통해 지원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꿈과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지원했고, 결국 임기 말엔 3000곳에 가까운 꿈의학교가 운영됐다"며 "특히 꿈의학교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추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살려 대학에 진학한 후 다시 직접 후배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형태로 발전하며 교육의 혁신을 이끌었는데, 이 같은 꿈의학교가 지금은 사라진데 대해 큰 아쉬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절망’을 줘서는 안돼
현재의 교육과제들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이 전 교육감은 "교육이 역행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교육감은 "경기교육을 먼저 얘기한다면, 임태희 교육감의 취임 이후 2년 동안 앞선 14년에 걸쳐 일관성 있게 추진되던 정책들이 모두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는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놓인 점과 모든 교육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실종된 점 및 과학고등학교의 신설 추진과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의 여전한 운영 등을 제시했다.
그는 "교육은 교육감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교육감은 도민들에게 위임을 받은 자리로, 도민들의 의사를 교육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를 들어 ‘4·16민주시민교육원’의 경우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생명교육을 중심으로 한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장기간의 논의를 거쳐 어렵게 마련된 곳으로, 명칭을 결정하기까지 도교육청과 경기도, 경기도의회, 안산시 및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 종교계 등 7개 기관이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논의와 협의를 거쳤다"며 "그러나 무려 5∼6년에 걸쳐 완성된 ‘4·16민주시민교육원’에 대해 최근 도교육청은 ‘4·16생명안전교육원’으로 명칭 변경을 결정하며 민주시민을 삭제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의기구인 도교육청이 과거의 혁신학교와 꿈의학교 등부터 민주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치와 목표를 어떠한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모두 없애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도교육청이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인재 양성을 목표로 과학고의 추가 설립 계획을 밝힌 데 대해서는 ‘명백한 교육의 역행’이라고 단언했다.
이 전 교육감은 "과학고 1곳을 신설할 때 소요되는 비용은 무려 300억여 원으로 일반고에 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되며, 그렇게 과학고가 만들어지더라도 해당 지역의 아이들이 입학할 수 있는 비율은 전체의 10∼20%에 불과한데다 그마저도 대부분 과도한 경쟁에 지쳐 중도하차한다"고 설명했다.
또 "무엇보다 과학고는 일반고보다 많은 예산의 지원이 필요한데, 해당 예산을 일반학교에 지원하며 학교별로 특색 있는 중점학교를 만들어 모든 일반고를 과학고 수준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교육적으로 옳다"며 "무엇보다 학교는 모든 학생이 행복한 곳이어야지, 소수의 특정 학생과 그 학부모만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은 교육의 역행이자 범죄행위"라고 밝혔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이 전 교육감은 "제 전임이신 김상곤 교육감께서 가장 잘한 일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이라며 "이는 해당 조례가 교사의 권한을 제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대한 것이기 때문으로, 학생을 하나의 사회적 인격체로 보는 시각"이라고 했다.
그는 "학생은 단순히 교육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교사와 학교 및 사회로부터 존중을 받는 대상이 돼야 하며, 그것이 학생의 인권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라며 "그렇다면 학생인권조례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화가 돼야 하는 것으로, 이를 폐지해 학생의 인권을 제약하는 것 역시 범죄"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가장 중요한 교육현안인 ‘대입제도’에 대해서는 ‘대학 평준화’를 제안했다.
이 전 교육감은 "교육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한다"며 "절망을 줘서는 안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진학으로, 그 중에서도 오로지 자녀를 서울대학교에 보내는 것이 목표인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며 "이는 대학교에 격차가 발생하는 것이 근본적 원인으로, 실제 서울대의 경우 부산대보다 4배 많은 정부 지원금을 받는 등 국립대 내에서도 격차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오로지 서울대가 목표인 현실은 과거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교의 흔적으로, 즉 친일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며 "독일 등 외국처럼 모든 학교의 격차를 없애고, 교수가 캠퍼스화 된 각 대학을 옮겨다니며 강의를 하는 형태의 대학 운영이 필요하다. 우리 교육에서 대학의 격차를 없애지 않으면 교육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의 중심은 ‘학생’
이 전 교육감은 ‘경기교육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교육 3주체론’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흔히 학생과 학부모 및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얘기하지만, 이는 가장 잘못된 용어"라며 "교육의 주체는 학생 ‘1주체’로, 학생이 있기에 학교와 교사 및 학부모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육은 학생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핵심이 돼야 한다"며 "과거 교육감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시행했던 ‘9시 등교제’의 경우, 학생들이 처음으로 한 요구이기에 실행된 것으로, 교육정책은 학생에게서 출발해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교육감은 "학생 중심의 교육과 체제로 급격히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열릴 수 없다"고 전했다.
이날 교육포럼을 진행한 박효진 삶을 가꾸는 교육자치포럼 상임대표는 "주민직선 5기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현재의 경기교육을 되짚어 보고, 현재 진행 중인 경기교육의 핵심정책인 IB교육과 공유학교 및 과학고 설립 등과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의 연관성을 찾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민직선 5기 경기교육감 등장 이후 ‘민주’라는 말이 사라진 경기교육 정책의 지향점과 코로나19 이후 무너진 학교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신뢰회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 방안을 찾아보는 충분히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승표 기자(sp4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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