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 번의 장례식… 평화로운 삶을 정밀하게 폭격
2024년 8월15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가 4만 명을 넘어섰다. 이날은 전쟁 314일째였다. 하루 평균 127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 가자지구 전역에서 4만 번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사망자 가운데 적어도 1만6456명은 어린이, 1만1천여 명은 여성이다.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주검을 수습하지 못한 ‘실종자’도 약 1만 명을 헤아린다. 전쟁 전 가자지구의 인구는 220만~230만 명으로 추산됐다. 전쟁 10개월 7일 만에 가자지구 인구 50명 중 1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됐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군당국, 주거용 건물 공습 확인
할라 카타브(36)는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에서 교사로 일했다. 남편 아쉬라프 아타르는 간호사다. 맏아들 후세인은 15살이다. 이후 임신이 어려웠던 그는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시술)을 통해 네쌍둥이를 낳았다. 키난, 함만, 루자인, 시발은 9살이 됐다. 막내딸 와킨은 태어난 지 18개월 된 아기다. 8월18일 새벽 일가족이 잠들어 있던 3층짜리 주거용 건물 2층에 이스라엘군의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할라 카타브와 여섯 자녀 모두 그 자리에서 숨졌다. 아쉬라프 아타르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뉴욕타임스는 같은 동네에 사는 할라 카타브의 동생 아흐마드 카타브의 말을 따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산산이 흩어진 아이들의 조각난 몸뚱이를 수습했다. 왜 누나 집을 폭격했는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3층 건물 외벽은 완전히 파괴됐다. 할라 카타브의 남편은 폭격 당시 충격으로 몸이 건물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는 팔이 부러졌고, 다리엔 화상을 입었다. 딸과 손주를 한꺼번에 잃은 무함마드 카타브는 로이터 통신과 한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아이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아이들이 이스라엘에 위협이라도 됐나? 아이들이 무기라도 소지하고 있었던가?” 무함마드 카타브는 장례를 마친 손주 6명의 주검을 무덤 한곳에 함께 묻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군당국도 8월18일 새벽 데이르알발라 주거용 건물을 공습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세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밀 유도무기를 동원해 테러단체 ‘이슬람지하드’의 고위인사를 공격했다는 게다. 이스라엘군 쪽은 이 고위인사가 “개전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을 직접 지시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이름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가 공습으로 사망했는지 여부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 쪽은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공습을 앞두고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8월16일 일시 대피령을 내렸다”고도 했다.
‘일가족 죽음’이 이례적인 일 아니라면…
아흐마드 카타브가 뉴욕타임스에 전한 내용은 전혀 다르다. “누나 가족이 살던 건물 일대는 지난 10개월여 전쟁 기간에 단 한 차례도 대피령이 내려지지 않은 지역이다. 그래서 가족들 모두 집이 안전하다고 여겼다. (…) 공습 이전에 대피령이 내려지지도 않았고, 사전 경고용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할라 카타브와 여섯 아이가 숨지기 하루 전인 8월17일에도 데이르알발라 인근 자와이다에서 일가족이 공습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미 자와드 에즈라는 이스라엘군과 조율해 가자지구로 고기와 생선을 들여오는 일을 하는 도매업자였다. 가자지구 주민 평균보다 생활이 넉넉했을 터다. 이웃 주민인 아부 아흐메드는 에이피(AP)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숨진 사미 자와드 에즈라에 대해 “평화롭게 살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공습 현장에서 사미 자와드 에즈라와 그의 두 부인, 2살부터 22살까지 자녀 11명, 아이들의 할머니와 친척 3명 등 일가족 1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그의 집과 집 옆에 마련된 창고에는 공습 당시 가족·친지와 피란민 등 40여 명이 생활하고 있었단다. 에이피는 살아남은 친척 말을 따 “검안소에 갔더니 잘려진 팔다리와 머리, 아이들의 사지가 잘려나간 주검이 널려 있더라”고 전했다. 할라 카타브 일가족의 죽음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란 뜻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 쪽은 “최근 몇 주 동안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던 테러범 시설을 공습했다. 공습으로 인해 주변 시설에 머무르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진상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펴낸 최신 상황 보고서를 보면, 가자지구 사망자가 4만 명을 넘어선 8월15일 오후부터 8월18일까지 가자지구에서 모두 134명이 숨지고 342명이 다쳤다. 8월15일 저녁 7시10분께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지역의 타우바 이슬람 사원 부근 주거용 건물에 공습이 퍼부어져 여성 1명을 포함한 주민 7명이 목숨을 잃었다. 8월16일 새벽 2시께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다라즈 지역에서 주거용 건물에 공습이 퍼부어져 주민 5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같은 날 낮 12시20분께 가자지구 남부 라파 동쪽 외곽에서 구호물품을 받으려 기다리던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았다. 현장에서 적어도 8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 5분 남짓 뒤엔 남부 칸유니스 서쪽 바와시 지역에서 피란민이 생활하는 텐트가 공격을 당해 여성 1명과 어린이 3명을 포함해 모두 7명이 목숨을 잃었다. 8월17일과 18일엔 중부 데이르알발라에 공습이 집중됐다. 사미 자와드 에즈라 일가족 18명과 할라 카타브 일가족 7명도 그 와중에 희생됐다. 나흘 동안 134번의 장례식이 더 치러졌다.
재개된 휴전 협상, 이스라엘의 선택은
가자지구 사망자가 4만 명을 넘긴 날 카타르 도하에서 휴전 협상이 재개됐다. 미국과 카타르와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협상단을 파견했다. 이미 여러 차례 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그때마다 이스라엘 쪽은 새로운 조건을 제시해온 터다. 새 협상안에는 이스라엘이 주장한 가자지구 병력 유지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단을 보내지 않은 하마스 쪽은 8월20일 “미국은 이스라엘이 학살을 계속할 시간만 벌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319일째를 맞은 2024년 8월20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4만173명이 숨지고, 9만2857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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