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합병에 '시장가격 무용론' 꺼내든 이복현…재계는 난색 [금융당국 포커스]
"상장사 주가 못 믿겠다는 건 국내 증시 신뢰성 스스로 부인한 꼴" 반박
이복현 금감원장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합병안에 대해 “현실적으로 시가가 기업의 공정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놨다. 양사간 합병비율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위해 ‘시가 무용론’까지 꺼내든 모양새다.
이복현 “법대로 시가 산정? 할증·할인도 할 수 있어”
이 원장은 25일 KBS의 시사프로그램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법에 따라 시가(총액)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했으니 괜찮다는 (두산그룹의) 주장이 있지만 시가 합병이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법에 따르면 (시가 기준 기업가치에 대해) 할증·할인도 할 수 있다”며 “주주들의 그런 의견이 있다면 경영진이 주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두산이 합병비율을 재조정하라는 얘기로 풀이된다. 두산은 앞서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간 주식 교환 비율을 1대 0.63주로 정해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 원장은 이날 ‘시가 무용론’을 수차례 펼쳤다. 그는 “앞서 기업이 자율적으로 산정한 가치가 시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나온 차선책이 시가 기준 산정법”이라며 “대부분 국가는 기업간 합병시 공정가치를 산정해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룹 사 합병 과정에서 합병 기업의 공정가치를 평가하도록 하고, 산정 가치에 불만이 있는 이들에 대해선 사법적 구제를 요청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는 제도적 문제의식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금감원은 지난달 두산의 계열사간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 요구를 했다. 이에 대해 두산은 반기보고서에 따른 실적 수치 일부를 단순 갱신해 한 차례 정정신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 원장은 이달 초 “(두산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정정 요구를 하겠다”라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같은 정정 요구가 금감원의 권한 남용이 아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이 원장은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는 기업의 사업재편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를 제대로 작성했는지 점검해야 하는 금감원의 고유 업무 범위 안에서 한 것"이라며 "합병 자체는 최종적으로는 주총에서 결론날 일"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두산이 기존에 제출한 신고서로는 합병의 표면적 목적과 실질적 목적이 무엇인지, 밥캣 자금이 다른 곳에 쓰일 때 재무적 위험은 없는지 등에 대해 투자자들이 충분히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금융감독당국 수장이 두산 계열사간 합병에 대해 두산에너빌리티의 투자 재원 확보 등 두산이 앞서 밝힌 합병 목적과는 다른 ‘실질적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한 셈이다.
재계 “자의적 할증 적용하면 문제 없겠나”
금감원장의 이같은 발언에 재계는 난색이 뚜렷하다. 현행법상 기업이 합병시 몸값 산정을 할 때 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지인 시가 기준 가액 산정을 금융감독당국 수장이 부정한 셈이라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항은 상장사 간 합병의 경우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러 보완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일단 기업은 도입·시행 전인 보완책을 고려할 게 아니라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가액 산정을 해야 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장사의 주가는 수많은 참여자들이 공개시장에서 모여 수요와 공급에 의해 형성한 것이고, 누구나 객관적이고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수치”라며 “금감원장의 발언은 사실상 국내 증시의 객관성과 투명성이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이 주가에다 별도 할증 조치를 임의로 붙이라는 것은 시장 전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대신 일부 주주들의 의견은 반영하라는 넌센스”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감사인 등이 따지는 공정가치 평가에 오히려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더 있다”며 “금감원이 시장 가격의 대안으로 보다 자의적일 수 있는 기준을 강조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시가 기준 가치에 할증을 임의로 적용하면 또다른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원칙상 이론의 여지가 가장 적은 시가 기준을 그대로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라며 “애초에 양사 모든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모두가 만족할 합병비율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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