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지시에 '홀치기' 특허 포기한 발명가…유족들 23억 받는다

김지수 2024. 8. 2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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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염색 기술 특허권을 빼앗긴 발명가의 유족에게 국가가 7억3000만여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이세라)는 직물 특수염색 기법인 '홀치기'를 발명한 고(故) 신모씨의 자녀 2명에게 국가가 총 7억3000만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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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업자 구제" 지시에 중앙정보부 끌려가
유족, 지난해 과거사 진실규명 결정 후 소송
박정희 전 대통령의 ‘홀치기’ 관련 지시 사항이 담긴 문건. 사진 진실화해위
박정희 정권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염색 기술 특허권을 빼앗긴 발명가의 유족에게 국가가 7억3000만여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이세라)는 직물 특수염색 기법인 ‘홀치기’를 발명한 고(故) 신모씨의 자녀 2명에게 국가가 총 7억3000만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연이자 등을 더하면 국가가 신씨 자녀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총 23억6000만여원이다.

홀치기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직물 특수염색 기법으로, 신씨는 일본에서 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와 1965년 홀치기 염색 특허를 등록했다. 이 기법을 발명한 후 다른 염색 업체들이 특허무효심판을 제기했지만, 신씨는 5년여에 걸친 소송전 끝에 1969년 특허권을 얻어냈다. 

이후 신씨는 홀치기 기법을 모방한 다른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972년 5월 1심 선고에 따라 5억2000만여원을 배상받기로 한 상태였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출업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972년 5월 홀치기 항소심을 준비하던 신씨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남산 분실로 끌려갔다. 구금된 신씨는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고 특허권을 포기한다”는 자필 각서를 쓰도록 강요당했다. 각서를 받은 재판부는 결국 ‘소 취하’를 이유로 소송을 종결했다.

앞서 신씨가 연행되기 하루 전 열린 수출진흥 확대회의에서 홀치기 수출조합 측은 “민사소송 판결 때문에 수출에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고 상공부 장관에게 건의했다. 이를 보고받은 박 전 대통령이 ‘법을 악용하는 업자와 상공부가 똑같이 나쁘다’고 질책했고, 바로 다음 날 신씨는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신씨는 4년 뒤 소 취하서가 신체 자유를 잃고 폭행과 협박에 의해 날인된 것이라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신씨는 2006년 11월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으나 각하됐다. 당시 신씨는 과거사위에 “수사관들이 ‘국가를 위해 홀치기 특허권과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거부하자 며칠간 구타를 이어갔다”는 내용의 서면 진술서를 제출했다.

결국 신씨는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2015년 사망했고, 신씨의 자녀들이 2021년 다시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과거사위는 지난해 해당 사건을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고서라도 수출 증대를 국가 활동의 지상 목표로 인식한 대통령, 상공부 장관, 중앙정보부장 등이 기업 고충을 처리하기 위해 불법 체포, 폭력과 위협, 권리 포기 및 소 취하 강요 등 불법적 수단으로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건’이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이후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불법 체포·감금, 가혹행위에 의한 조사 등 일련의 행위는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어 “신씨가 소 취하서에 날인하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재산적 손해 및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이고 신씨의 가족들도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 명백하다”며 “공무원들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가 자행된 경우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신씨가 1972년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승소해 받기로 한 5억2000만여원과 지연이자,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등을 고려해 총 배상액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지수 온라인 뉴스 기자 jis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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