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가방 의혹’ 비공개 대면 조사부터 수사심의위 회부까지…검찰의 한 달의 시간
"수사팀에서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고, 또 처분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께서 수사 경과와 수사 결과를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5월 이원석 검찰총장이 '고가 가방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전담수사팀 구성을 지시하면서 한 말입니다.
지난해 11월 인터넷매체 서울의소리가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고가 가방을 건네 받은 장면을 몰래 촬영한 영상을 공개해 논란이 일자, 이 총장은 수 차례 '성역 없는 수사'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지난 5월 9일 최재영 목사를 고발한 시민단체 관계자 두 명에 대한 소환 조사를 시작으로 최 목사,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를 고발한 백은종 서울의 소리 대표, 김 여사를 수행한 대통령실 조 모 행정관과 유 모 행정관 등을 잇따라 불러 조사한 끝에, 김 여사에게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데 무게를 두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검찰, ‘고가가방 의혹’ 수사 막바지…“청탁금지법 위반 아니다” 무게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13340
'고가 가방 의혹'에 대해 '잠정적 결론'을 내린 검찰은 사건을 매듭 짓기 위해 지난달 20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및 '고가 가방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12시간 가량 김 여사에 대한 비공개 대면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원석 검찰총장이 수사팀이 김 여사에 대한 비공개 대면 조사를 했단 사실을 김 여사 조사 사실을 조사가 끝날 무렵에 사실상 '통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총장 패싱'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간 파열음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22일 오후 대검찰청 정기 주례 보고에서 김 여사에게 혐의점이 없다고 이 총장에게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이 총장이 중앙지검장으로부터 '혐의 없음' 결론이 담긴 보고를 받은 지 하루 만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카드를 꺼내 들면서, '고가 가방 의혹' 사건은 전원 외부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치게 됐습니다.
김 여사에 대한 비공개 대면 조사 이후에도 총장에게 김 여사에 대한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한 전담수사팀.
김 여사 조사 방식과 장소를 둘러싸고, 대검과 중앙지검 간 팽팽한 긴장감에도 전담수사팀이 약 한 달간 어떤 조사를 통해 같은 결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요?
■일련번호에 기포, 박음질 모양…검찰, '김 여사 제출 가방, 영상 속 가방과 일치' 판단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지난달 20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비공개 대면 조사를 진행한 지 약 일주일 후인 같은달 26일 대통령실로부터 고가 가방을 제출받아 '동일성 검증' 절차에 나섰습니다.
수사팀은 가방에 음각으로 새겨진 번호와 알파벳 등으로 구성된 번호 분석을 통해 생산공장과 제조연월일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검찰은 서울의소리가 제출한 원본 영상을 확대해 영상에 등장하는 가방과 대통령실로부터 제출받은 가방을 정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수사팀은 서울의소리가 고가 가방을 구입할 당시 포장 과정에서 버튼과 스티커 사이에 생긴 기포의 숫자와 모양, 스티커가 붙은 형태 등을 비교하는가 하면, 종이 충전재가 구겨진 모양, 가방에 새겨진 박음질 등 다각도 검증을 진행해 '동일한 디올백'이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검찰은 '최 목사가 김 여사에게 진품 가방을 줬다'는 사실관계를 확보해, 해당 행위가 청탁금지법 혐의 등 혐의 유무 적용 여부에 관한 법리 판단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영상 속 에코백과 입고 있는 옷은 내 것"…검찰, 대통령실 행정관 추가 소환조사
검찰은 지난 13일 김 여사를 보좌하는 대통령실 조 모 행정관을 지난 6월 19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지 두 달 만에 재소환했습니다.
김 여사가 검찰에 진술했던 내용의 신빙성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섭니다.
앞서 김 여사는 검찰 조사에서 "국립묘지 안장 청탁은 행정관들로부터 보고받지 못했고 통일TV 송출 재개 청탁은 조 행정관에게 무슨 방송국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을 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검찰은 조 행정관이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 의원 국립묘지 안장과 통일TV 송출 재개 등 최 목사 청탁에 대해 대응한 인물인 만큼, 지난 6월에 진술했던 내용이 유효한 지를 확인했습니다.
검찰은 또한 조 행정관에 대한 1차 조사 이후 확보한 △의류 △에코백 △최 목사와 조 행정관의 통화 녹음 파일 등을 확인하는 절차도 거쳤습니다.
이에 조 행정관은 수사팀에 "서울의 소리가 공개한 영상에 나온 사람은 청탁을 부탁하는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고, 그때 입고 있던 옷과 에코백 역시 내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한 조 행정관은 검찰에 최 목사가 고가 가방을 전달한 2022년 9월 13일 오후 2시 15분쯤 대통령실에서 김 여사 보고 문서 작성을 마친 뒤 관용차를 타고 오후 3시쯤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도착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대통령실에서 코바나컨텐츠 사무실까지 해당 시간 안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최 목사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을 통해 이동 경로 및 시간을 검찰에 설명한 겁니다.
특히 검찰은 최 목사가 민원대기자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파란색 끈이 달린 공무원증을 패용한 것을 토대로 해당 인물이 조 행정관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김 여사에게 전달된 금품은 '감사 표시' '접견 수단'…검찰, 직무관련성 없다고 판단
김 여사와 사건관계인들의 진술, 고가 가방 동일성 검증 등 사실관계 확인을 마친 검찰은 그간 최 목사가 건넨 고가 가방과 샤넬 화장품 등이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이 있는지 검증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한 끝에 윤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 없는 단순 선물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또한 최 목사가 김 여사 측을 통해 청탁한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 사후 국립묘지 안장과 국정자문위원 임명과 관련해선 과련 청탁 내용이 김 여사에게 전달되지 않았거나, 정부 내 해당 직위가 없어 불명확한 요청으로 판단했습니다.
또한 통일TV 송출 재개 관련 민원에 대해선 고가 가방 전달 1년 뒤 이뤄져 '시간적 관련성'이 없던 것으로 봤습니다.
결국 검찰은 최 목사가 김 여사에게 건넨 고가 가방 등의 선물이 '청탁을 위한 대가'가 아닌 '접견을 위한 수단' 또는 '감사의 표시'로 본 만큼,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관련 금품'으로 볼 수 없고, 이에 따라 윤 대통령에게 신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가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경우 배우자 처벌조항은 없지만 공직자가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고가 가방 의혹' 전담수사팀 구성 이후 3개월간 처분에 필요한 사실 관계 및 증거를 확보했던 검찰은 김 여사에게 '혐의 없음'이라는 법리검토를 했고,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22일 수사팀의 결론을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수사 충실히 이뤄졌지만 공정성 제고해 더 이상 논란 남지 않아야"…수사심의위 회부된 '고가 가방 의혹' 사건
이원석 검찰총장은 중앙지검장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지 하루 만인 지난 23일, 직권으로 '고가가방 의혹' 사건을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에 회부했습니다.
수심위는 검찰 수사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의 기소 여부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이지만, 수사팀이 수심위의 결정에 따를 의무는 없습니다.
모두 검찰 외부 전문가들로, 총 250명 안팎으로 구성된 수심위 위원은 위원장인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이 대검에서 추첨 기계를 이용한 '무작위 추첨을 통해' 심의기일에 출석이 가능한 위원 15명을 현안위원으로 선정합니다.
대검찰청은 "검찰총장은 김건희 여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을 알선수재, 변호사법 위반 법리를 포함해 수사심의위에 회부하고, 전원 외부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 신중하게 처분하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수사팀 결론 수용 여부를 두고 이 총장은 김 여사에 대한 비공개 대면 조사를 두고 '공정성' 논란이 일었던 만큼, 관련 논란을 불식하고 수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수심위 소집을 마음먹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제로 대검은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증거 판단과 법리 해석이 충실히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면서도 "수사심의위 절차를 걸쳐 공정성을 제고하고 더 이상의 논란이 남지 않도록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해 외부 민간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쳐 사건을 최종 처분하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 총장이 수사심의위 소집을 결정하면서 김 여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뿐만 아니라 △ 알선수재 △변호사법 위반 혐의도 함께 심의하라고 요청한 배경엔 현행법을 근거로 처분한 수사팀의 법리판단이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을 외부 평가를 통해 받아보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법조계 안팎에선 공직자의 배우자가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경우 배우자 처벌조항은 없는 현행 청탁금지법의 맹점은 차치하고, 최 목사가 전달한 선물을 '직무 관련성'과 연관짓지 않은 점에 대해선 검찰의 '봐주기 수사'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 감사의 표시로 줬다는 거랑 청탁의 수단이 구분이 되면,
수뢰후 부정처사죄는 어떻게 적용되냐"면서 "여태까지 검찰 수사 방식이나 기소 여부 결정기준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지 검찰에서 먼저 돌아봐야 할 때"라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한 교수는 "수심위가 검찰 수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판단이 이뤄지는 만큼, 그간 검찰 수사와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들여다보는 것도 관건"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총장의 수심위 회부를 단행하면서, 관련 절차는 최대한 서둘러 진행될 전망입니다. 이 총장의 임기는 다음 달 15일까지로,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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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hu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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